의상 스님
대구 지하철 방화 참사가 일어난 지 수개월이 흘렀다. 언제나 그렇듯 이 엄청난 참사 역시 우리들 뇌리에서 조금씩 잊혀지고 있는 듯하다. 필자는 며칠 전 그 악몽의 ‘중앙로역’을 찾아가 보았다. 시커멓게 그을린, 처절했던 흔적을 따라 세월은 무심히도 흐르고 있었다.
한국은 그동안 ‘인재(人災)’로 분류되는 대형 참사를 많이 겪어왔다. 이번 참사 또한 구조적인 방재시스템 미비가 원인이 돼 많은 인명 피해를 내는 결과를 빚었다. 뿐만 아니라 기관사와 사령실간의 교신체계가 잘못 됐거나 상황 오판으로 인해 인명 피해를 훨씬 가중시킨 명백한 인재라는 것이 경찰수사에서 드러났다.
사전에 안전조치를 철저하게 했다면, 객차 구조물을 처음부터 불연재로 바꿨더라면, 비상배터리로 출구 안내판이라도 제대로 밝힐 수 있었더라면 이렇듯 한꺼번에 많은 희생자를 내지는 않았을 것이라는 생각에 참으로 안타깝고 부끄러웠다.
이 엄청난 죗값을 다하기 위해 지금 이 땅에 살아남은 우리 모두는 저마다 앞으로 처절한 참회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정말 이번만큼은 세월이 쉬이 흐른다고 해서 ‘또 하나의 사고’로 여기며 쉽게 잊어서는 결코 안 될 것이다.
성수대교가 무너지고 삼풍백화점 건물이 순식간에 내려앉는가 하면, 열차가 탈선하고 항공기가 불타는 등 끝없이 반복되는 대형 참사를 겪었지만 안전의식도, 제도도 제대로 개선되지 않고 있다.
설마 하는 마음에서 시작된 안일한 대응과 엉터리 안전교육 등은 우리의 사랑하는 가족 친지를 죽음의 문턱으로 내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가 돼버렸다. 특히 갈수록 초대형화하고 있는 지하쇼핑몰과 백화점, 터널 등 다중이용시설물은 대형 피해의 가능성이 매우 높다는 점에서 보다 과학적 체계적 합리적으로 대비해야만 할 것이다.
더불어 오랫동안 고쳐지지 않은 우리들 모두의 고질적인 안전 불감증에 대해 국민 스스로 냉정하게 반성했으면 한다. 그간의 큰 슬픔을 딛고 일어서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희망’의 꽃씨를 심어야 한다. 매사에 준비하고 대비하는 마음을 가져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수 있을 것이다.
의상 스님 여래원 주지·대구 달서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