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도선사의 장독대. ‘오래 묵을수록 제 맛이 난다’는 장은 햄버거로 상징되는 ‘패스트푸드’와 대비되는 대표적인 ‘슬로 푸드’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슬로 푸드/카를로 페트리니 엮음 김종덕, 이경남 옮김/439쪽 1만6000원 나무심는사람
◇슬로 푸드 슬로 라이프/김종덕 지음/204쪽 8500원 한문화
1989년 11월 9일, 프랑스 파리의 코믹오페라하우스에서는 ‘슬로 푸드(slow food) 파리 선언’이 채택됐다. ‘슬로 푸드’를 주창하고 전파하려는 각국의 대표들이 모여 발표한 이 선언문을 계기로 슬로 푸드 운동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1996년 슬로 푸드를 다룬 계간지 ‘슬로’가 이탈리아어 영어 독일어 등 3개 국어로 발간되면서 이 운동이 성장하는 기폭제가 됐다. 현재 세계 40개국 7만명의 회원이 ‘슬로 푸드’ 운동에 참여하면서 국제적 운동으로 성장해 가고 있다.
한국에서도 최근 슬로 푸드 운동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슬로 푸드 운동을 소개하는 책 2권이 나란히 출간된 것도 이 같은 관심을 반영한다. 카를로 페트리니가 엮은 ‘슬로 푸드’는 계간지 ‘슬로’에 실렸던 기사들을 모은 책이고, 김종덕의 ‘슬로 푸드 슬로 라이프’는 한국적 슬로 푸드 운동을 모색하는 책이다.
처음 슬로 푸드 운동의 기본 취지는 ‘맛을 표준화하고 전통 음식을 소멸시키는 패스트푸드를 먹지 말고, 식사와 미각의 즐거움을 보존하자’는 데 국한됐다. 그러나 1990년대 세계적으로 불어닥친 광우병 파동과 함께 슬로 푸드 운동은 단지 ‘미각의 문제’에서 벗어나 유기농 문제 등으로 관심의 폭이 넓혀졌다. 나아가 생활 속에서 여유를 찾아 느리게 살기, ‘슬로 라이프(slow life)’ 운동으로까지 이어졌다. 그래서 슬로 푸드 운동은 ‘느림의 상징’인 달팽이를 심벌마크로 하고 있다.
페트리니의 ‘슬로 푸드’는 슬로 푸드에 관한 다양한 지식을 전하는 책이다. 우리가 늘 먹는 음식도 있고, 이제는 ‘멸종 위기’에 처한 음식도 있다.
사실 우리가 음식의 ‘이름’을 안다고 해서 그 음식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것은 아니다. 맥주를 예로 들자. 미국에서 만드는 맥주는 대개 맛이 비슷하다. 버드와이저와 밀러, 쿠어스 같은 거대 기업들이 시장을 점령한 미국에서 다양한 맛의 맥주를 기대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독일로 눈을 돌리면 맥주의 종류만 5000종이 넘는다. 크고 작은 양조장에서 저마다 사람들의 구미에 맞는 맥주를 생산하고 있다. 하지만 이 책은 요즘 들어 큰 양조장이 작은 양조장을 ‘잡아먹으면서’ 독일에서도 맥주의 종류가 줄어들고 있다고 우려한다. 아울러 “아무리 목이 말라도 맥주는 작은 잔에 마셔야 제 맛이 난다”는 팁까지 덧붙인다.
이 밖에도 이 책에선 일본의 다코야키, 멕시코의 타코스 등 세계의 길거리 음식들을 소개하면서 유전자조작으로 탄생한 이른바 ‘프랑켄 푸드’의 문제점을 짚기도 한다. 기사 모둠인 만큼 전체적으로 일관된 주제로 응집돼 있지는 않지만 대신 슬로 푸드의 바다를 종횡무진 넓게 항해할 수 있는 것이 장점.
유럽이나 미국의 슬로 푸드가 낯설다면 ‘슬로 푸드 슬로 라이프’에서 이야기하는 한국의 슬로 푸드를 되돌아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사실 슬로 푸드는 서양보다 한국에서 더 익숙한 음식들이다. 예전부터 된장 청국장 젓갈 등 오랜 시간을 들여야 제맛이 나는 음식들을 먹어왔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는 손님이 주문을 하면 그때부터 비로소 밥을 짓기 시작하는 서울 인사동의 한 음식점을 떠올리면서 슬로 푸드에서 자연스럽게 슬로 라이프로 화제의 영역을 넓혀간다. 그는 아울러 ‘음식쓰레기를 줄이는 먹을거리 재활용’ ‘가족이 함께하는 채소 가꾸기’ 등 환경을 생각하면서 쉽게 실천할 수 있는 슬로 푸드 운동을 제안한다.
매일매일 ‘속도전’처럼 숨 가쁘게 돌아가는 세상. ‘슬로 푸드’와 ‘슬로 푸드 슬로 라이프’는 잠시 숨을 고르고 몸의 양식(糧食)인 음식을 통해 느림의 미학을 체험해 보라고 권유한다.주성원기자 swon@donga.com
▼가공식품 안전하게 먹으려면 ▼
전통적인 방법으로 조리한 ‘슬로 푸드’가 좋은 줄은 알지만 현대인들의 일상에서 가공식품을 전혀 배제하기는 힘들다. 다음은 ‘슬로 푸드 슬로 라이프’에서 소개하는 ‘가공식품 안전하게 먹는 법’.
▽라면=면을 끓여 물을 따라버리고 다시 물을 넣고 끓인다. 물을 두 냄비에 끓인 다음 한쪽에는 수프를, 다른 쪽에는 면만 끓이는 것도 방법.
▽어묵=미지근한 물에 담갔다가 건져내 조리한다. 조리하기 전 미지근한 물에 담그면 방부제가 우러난다.
▽햄, 소시지=끓는 물에 데쳐 사용한다. 햄과 소시지에 들어 있는 발색제, 산화방지제, 부패방지를 위한 화학제 등의 성분을 줄일 수 있다.
▽유부=양념장에 조리하기 전 끓는 물을 부어 씻어낸다.
▽빵=오븐에 다시 굽거나 찌고, 식빵 등은 구워 먹는다. 부피를 늘리기 위해 첨가된 유화제를 제거할 수 있다.
▽콩, 옥수수 통조림=향미를 보존하기 위해 첨가된 발색제와 산화방지제는 수용성이므로 물에 헹구면 씻겨 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