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비자금의 정치권 유입 사건을 계기로 도마에 오르고 있는 2000년 총선 당시 민주당의 후보들은 중앙당에서 공식 비공식 총선지원금을 얼마나 받아 어디에 썼을까. 당 핵심관계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당시 공식 지원금과 별도로 지원된 ‘은밀한’ 자금 루트 및 사용처를 점검해보았다.》
▼뒷돈 어느정도 였나 ▼
민주당 후보들이 2000년 총선을 앞둔 1월 1일부터 그해 5월 3일까지의 지구당 수입 지출 명세를 선관위에 신고한 바에 따르면 중앙당이 225개 지역구에 내려 보낸 지원금은 모두 338억4000만원으로 후보 1인당 평균 1억5000만원이었다.
2억원 이상의 ‘고액 지원금’을 받은 후보는 91명에 이르렀고, 그 대상은 주로 박빙의 접전을 치른 수도권 후보들과 영남 지역의 ‘꿈나무’들이었다.
그러나 이는 공식 예금계좌를 통해 지원된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어서 실세 라인 등을 통해 비공식 지원된 실제 총선지원금 규모까지 포함하면 지원총액은 이보다 훨씬 많을 것이라고 당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수도권의 한 격전 지역에서 조직을 총괄했던 A씨는 “선거 때 중앙당에서 공식적으로 내려온 돈은 후보기탁금 2000만원과 정당활동비 1억∼2억원 정도였고 기탁금은 수표로, 정당활동비는 통장으로 내려왔다. 그러나 나머지 (비공식)지원금은 모두 현찰로 왔다”고 말했다.
현찰 전달 방식에 관해 그는 “하루는 기업인이 ‘중앙에서 보내서 왔다’며 현금 1억원이 담긴 여행가방을 후보에게 전달하더라. 돈 제공자를 곧장 지구당으로 연결해주는 방식이었다”고 귀띔했다. 그는 또 “선거 막판에 ‘실탄’이 떨어졌을 때 후보 또는 후보의 핵심측근이 직접 모처로 차를 몰고 가서 역시 1억원 정도씩의 현금을 받아와 후보 집으로 가져가기도 했다”며 “지원된 중앙당 지원금의 총규모는 최소 7억원에서 10억원 정도였다”고 덧붙였다.
서울지역에 출마했던 민주당의 한 영입인사는 “선거기간 전에 2억원씩 2차례, 선거기간 중에 5000만원씩 2차례 등 모두 5억원의 비공식 지원금을 받았다. 당내 실세 인사들이 제공했으며 출처가 비공식적이니만큼 회계장부에는 기재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어디에 주로 사용했나 ▼
당 관계자들에 따르면 중앙에서 지원된 총선자금은 주로 ‘조직 가동’ 비용에 집중 투하됐다.
수도권의 한 지구당에 파견됐던 중앙당 관계자는 “정당연설회가 한번 열릴 경우 청중동원비는 평균 5000만원이다. 동협의회장 10여명에게 1인당 100만원, 투표구책 40여명에겐 50만원씩, 지구당 중간 간부 100여명에겐 20만원씩 지원됐다”고 말했다. 선거기간 중 정당연설회 2회, 합동유세 2회, 지구당 개편대회 1회에 들어간 동원비만 ‘가볍게’ 2억5000만원 정도 들더라는 것. 그는 또 “정당연설회나 합동연설회에 참석하면 3만원씩 준다”며 “돈은 유세가 끝나고 지구당에 돌아와서 어두컴컴하게 커튼을 쳐놓고 준다. 유권자가 지구당 사무실에 와봐야 확실하게 우리 표가 된다”고 덧붙였다.
그는 이어 “청중동원비보다 큰 돈은 조직관리비다. 공조직 관리에만도 4억5000만원이 들어가고 향우회 등 사조직에 투입된 돈도 만만치 않다”며 “실제 선거에 들어간 돈은 모두 10억원가량 될 것이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각 지역에서는 법정선거비용을 넘는 실질 선거자금을 대부분 정당활동비 명목으로 사용하거나 아예 회계장부에는 빼먹는 일도 비일비재했다는 것.
당시 선대위의 한 고위관계자는 “중앙당의 지원금을 받을 때부터 선거비 초과지출에 걸리지 않도록 선거비용 명목이 아닌 정당활동비 신고용으로 마련한 계좌에 입금시키는 예가 많았다. 그런데도 선관위 실사(實査) 에서 ‘정당활동비’ 항목 중 ‘선거비용’으로 분류당해 법정선거비용 초과로 고발당하는 사례가 속출했다”고 말했다.
이 때문에 “중앙당이 똑바로 요령을 가르쳐주지 않았다”고 불만을 토로하는 의원들이 많자 윤철상(尹鐵相) 당시 제2사무부총장은 2000년 8월25일 의원총회에서 “돈을 내려 보내면서 ‘법정 선거비용으로 얼마를 쓰고, 정당활동비로 얼마를 쓰라’고까지 교육했다. ‘법정한도를 넘길 수도 있으니 반드시 2분의 1만 신고하라’고 공개적으로 다 교육했다”며 반박하기도 했다.
▼노무현후보 얼마 썼나 ▼
2000년 총선 당시 부산 북-강서을에 출마했다 쓴잔을 마신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은 그 해 초부터 5개월 동안 모두 3억1900여만원의 정당활동비를 지출했다고 선관위에 신고했다. 이와 별도로 공식선거운동기간에 선거비용 명목으로 사용했다고 신고한 9180만원까지 합치면 4억여원을 선거관련 자금으로 집행한 셈이 된다.
그러나 노 대통령이 2001년 기자들과 만나 “(이번 총선에서는) 돈을 원도 한도 없이 써봤다”고 말한 점을 들어 한나라당 관계자들은 “실제 지출된 선거 자금은 훨씬 더 많을 것”이라고 말하고 있다. 민주당의 한 재선의원도 “노 후보의 ‘전략적 가치’ 때문에 노 후보가 미처 파악하지 못한 중앙의 지원금도 적지 않게 부산에 투하됐을 수 있다. 권노갑씨가 조달한 외부 자금도 섞여 있지 말라는 법이 없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노 대통령의 한 핵심측근은 “노 대통령이 원도 없이 돈을 써봤다는 것은 그전에는 2000만∼3000만원 쓰던 것을 8000만∼9000만원 정도 썼다는 뜻이다. 선거법상 지출한도를 다 써봤다는 얘기일 것이다”고 해명했다.
이에 대해 호남지역의 한 민주당 의원은 “원도 없이 써봤다는 것이 고작 법정한도액만큼 썼다는 소리라면 누가 곧이곧대로 믿겠느냐”며 “적절한 시점에 노 대통령이 정치자금의 근본적 개혁을 위해 먼저 자신의 선거자금 내용부터 ‘고백’하고 나선다면 어찌해야 할지 고민이다”고 털어놓았다.
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이승헌기자 ddr@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