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최악의 경우 북한을 공격할 작정이었다는 것을 요즘에야 알았다. 그 긴박했던 시기를 아무 걱정 없이 보냈던 미련함이 오늘날 나의 육중한 몸무게에 큰 기여를 했으니 지금 그 대가를 톡톡히 치르는 셈이다.
▼6자회담 속 한국의 자리 ▼
북한의 ‘불바다’ 위협이나 외신을 달구는 ‘북핵 위기’ 같은 문구에 신경 쓰지 않는 건 나만이 아닌 듯하다. 외국인들이 한국에 와 보고 너무나 평온한 분위기에 놀랄 만큼 우리는 북핵 불감증에 걸린 채 살아간다.
대한제국 말과 광복 전후 ‘한반도를 둘러싼 열강의 치열한 각축’의 역사책을 볼 때마다 우리 자랑스러운 선조들은 대체 뭘 하고 있었을까 의아했는데, 이다음에 내 후손들도 궁금해 할 것 같다. 북핵 위기를 둘러싸고 3자회담, 6자회담이 열렸을 때 당신은 관심이나 있었느냐고.
단순무식하게 가정해서, 내 여동생이 폭군 남편과 가난하게 살고 있다고 치자. 동생네가 먹고살게끔 도와주는 게 인지상정이다. 그러면서도 사람은 간사해서 동생이 이혼을 하거나 갑자기 남편한테 변고가 생겨 내 집에 얹히는 건 부담스럽다. 그런데 내가 주는 돈으로 남편이 위험한 사업이나 벌여 온 동네가 들고 일어났다면? 그 남편이 시너통을 들고 나와 실력자가 자기 요구를 안 들어주면 불 지르겠다고 공포에 몰아넣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6자회담을 앞둔 한국의 자세는 남자를 말리기보다, 실력자에게 예측 불가능한 그 남자 말을 들어보라고 옆구리를 찌르는 것 같다. 시너통에 불붙으면 당장 우리집에 불똥이 튈 터이니 어떡하든 달래야 하지 않느냐고, 사업이 암만 위험해도 불바다보다는 낫지 않으냐고 울상 짓는 형국이다. 그런 협박에 한두 번 속았느냐는 실력자한테 한때 한목소리를 내겠다고 약속했지만 그래도 한 치 건너 두 치이고,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게 우리 정부 속내인 듯하다.
지나친 비유인가. 14일 미국 일본 대표와 협의를 마친 뒤 “3국의 강조 부분이 다르다”고 한 이수혁 외교통상부 차관보의 말을 곱씹어 보면 우리는 두 나라와 확실한 공조를 이루지 못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북핵 문제의 평화적 해결을 원치 않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국 이익을 앞세우는 것이 외교 현실이다.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말로는 이 문제를 평화적으로 다루겠다지만, 미국이 북한을 공격하지 않겠다고 문서로 확약할 것이라는 콜린 파월 국무장관의 ‘희망’은 국방부 반대에 부닥쳤다고 AP통신이 전했다. 부시 대통령 및 강경파와 코드를 같이하는 노련한 외교관 존 볼턴 국무부 차관이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흉악한 독재자’로 비난한 시기도 무시할 수 없다. 북한을 정권교체의 대상으로 보는 미국 내 시각은 엄존하며 최근엔 북한의 미사일 장사가 ‘제2의 대량살상무기 확산’이라며 바짝 경계하는 분위기다.
일본과 중국 러시아, 어느 쪽도 북핵을 용인할 수 없으나 북한의 붕괴도, 통일도 원치 않는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일본은 이를 기화로 군사대국화를 서두르고, 중국과 러시아는 주변국 핵 도미노를 막고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키우기 위해 한 배를 탔다. 제 백성이 굶어죽어도 김정일 정권만은 포기 못하는 북한은 불가침조약 외의 해결책은 없다며 완강하다.
▼ 무조건 협력이 옳은가 ▼
8·15 경축사에서 드러난 우리 정부의 입장은 6·15남북공동선언을 이행하고 남북교류협력 사업을 속행하겠다는 것이다. 6자회담을 열흘 남짓 앞둔 시기에, 대통령은 북핵 문제 해결과 관계없이 이미 실패로 판명된 ‘퍼주기 정책’을 반드시 계속하겠다고 밝혔다. 협상엔 전략과 카드가 있어야 하는데 테이블에 앉기도 전에 상대에게 전리품을 안긴 셈이다.
아무리해도 변하지 않는 북한을 어쨌든 돕겠다는 우리 대통령이 민족화해를 우선시한 착한 지도자로 역사에 기록될지, 열강의 각축 속에 묻혔다고 기록될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우리의 국익은 누가 어떻게 지켜줄 것인지 궁금하다. 우리는 북핵과 함께 언제까지 무사태평하게 살 수 있나. 전쟁만 나지 않는다면,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든 우리끼리 ‘긴장관계’만 만들며 살아야 하는가.
김순덕 논설위원 yur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