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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포커스]'사모펀드 투자방식' 싸게 사서 비싸게 되판다

입력 | 2003-08-17 18:10:00


《외환은행 인수협상을 벌이는 론스타 펀드, 하나로통신 인수에 나선 AIG-뉴브리지캐피탈 컨소시엄, 한미은행 대주주인 JP모건-칼라일 컨소시엄, 해태제과를 인수한 UBS캐피탈…. 이들의 공통점은 바로 미국식 사모(私募)투자펀드(Private Equity Fund)라는 점이다. 외환위기 이후 한국이 금융·기업구조조정에 주력하면서 외국의 사모투자펀드가 98년부터 한국에 물밀 듯이 밀려들어왔다. 이들은 자금난을 겪고 있지만 회생가능성이 높은 대기업과 금융기관을 차례로 인수한 뒤 되팔아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한국시장에 들어와 이제 경제계의 ‘큰손’으로 자리 잡으며 큰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 한 번에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씩 투자하며 한국의 인수합병(M&A) 시장을 주도하지만 이들의 인수전략과 운영방식, 수익률 등은 베일에 가려져 있다.》

▽사모투자펀드란=미국에서 시작됐다. 낮은 투자수익률, 기업회계부정, 과도한 경영진 월급과 펀드운용 수수료 등에 직면한 거액자산가들은 자신들의 돈을 안전하게 굴릴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일반투자신탁상품에 돈을 맡기느니 아예 자신들끼리 펀드를 만들고 전문가를 외부에서 영입해 운용한 것이 사모투자펀드의 시작이다.

세계적으로 가장 지명도가 높고 영향력이 큰 펀드는 바로 칼라일 그룹. 87년 데이비드 루빈스타인이 동료 2명과 함께 설립했다. 초기에는 사무실 임대료를 제대로 내지 못할 정도였으나 주로 방위산업체와 기간산업체에 투자해 막대한 이익을 얻었다.

현재 세계 20여개 펀드를 통해 160억달러의 자산을 굴리고 있다.

조지 부시 전 미국 대통령, 존 메이저 전 영국 총리, 피델 라모스 전 필리핀 대통령 등 전직 고위층 인사를 고문으로 영입해 ‘장막 뒤 거래(Behind-the-Scene)’를 한다는 비판도 적지 않았다.

이 밖에도 KKR 워버그 핀커스 등 여러 펀드가 활동하고 있다. 미국과 유럽뿐만 아니라 아시아 등 신흥시장에도 큰돈을 투자하고 있다. 투자수익률은 연 30% 이상을 목표로 하기 때문에 협상과정에서 인수가격을 낮추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한다.

▽한국 내 투자방식은 어떻게=사모투자펀드는 대부분 자본투자를 통해 경영권을 확보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다. 뉴브리지캐피탈의 제일은행, 칼라일의 한미은행, H&Q컨소시엄의 옛 쌍용증권 인수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2단계로 외부에서 전문경영인을 영입해 인수한 기업을 우량기업으로 탈바꿈시키는 구조조정을 진행한다. 기존 경영진은 대부분 퇴진시키고 자신들이 확보하고 있는 인재풀에서 경영진을 선정하고 스톡옵션(주식매입선택권)을 준다. 재무구조 개선만을 원하는 기존 경영진과 손을 잡고 단순히 자본투자만 하는 경우도 있지만 흔하지는 않다.

세 번째는 투자원금 회수. 이는 주로 주식시장에 상장시킨 뒤 시장에서 지분을 팔거나 다른 기업에 M&A를 통해 넘기는 방식을 주로 사용한다.

골드만삭스가 국민은행 지분을 해외주식예탁증서(DR) 형태로 판 것이나 워버그 핀커스가 옛 씨네마서비스(현 플레너스) 지분을 증시에서 매각한 것이 대표적 사례다.

시장상황이 더 좋지 않으면 투자기업이 현금을 차입하고 이를 주주에게 배당하는 방식으로 원금을 회수하기도 한다. 이 방식은 현금창출능력이 아주 뛰어난 기업에 한정된다.

▽사모투자펀드를 움직이는 사람=주로 외국계 증권사의 투자은행과 컨설팅 분야에서 일했던 전문가들로 구성된다. 서울지사는 대부분 5∼10명의 소수인원이 근무하며 홍콩지사와 긴밀히 협의하는 체제를 갖추고 있다.

투자펀드는 ‘일시적으로 재무구조는 취약하지만 회생가능성이 높은 기업을 골라 되파는 사업’이다. 따라서 이런 기업을 고르고(컨설턴트 출신) M&A 협상에 정통한(투자은행 출신)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칼라일 아시아의 김병주 회장은 골드만삭스와 옛 살로먼스미스바니(SSB)에서 M&A를 전공했다. 최근에는 기업M&A를 맡았던 변호사들이 부상하고 있다.

워버그 핀커스의 황성진 대표와 뉴브리지캐피탈의 박병무 대표는 법무법인 김&장 출신으로 변호사 시절 M&A를 전공했다.


김두영기자 nirvana1@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