끊임없이 시류에 ‘반역’하는 이슈를 던지고 있는 이 시대의 논객 복거일. 교보문고 외국도서 매장에서 책을 고르는 복거일씨. -권주훈기자
소설가로 세상에 이름을 냈으며 두 권의 시집을 상재한 시인이면서 좌파적 시각에 맞서 경제 사회 평론가로 활동하는 논객 복거일(卜鉅一·57). 그는 자유주의, 영어 공용화, 나아가 최근 친일파 논쟁에 이르기까지 끊임없이 시류에 ‘반역’하는 이슈를 던지고 있는 이 시대의 이단아이기도 하다.
그의 글은 사실, 좀 어렵다. 어떤 비평가의 말처럼 ‘근본적인 해체를 하듯 파고드는 집요한 논리’는 여러 번 곱씹지 않고서는 따라잡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그의 겉모습은 전사(戰士)라기보다 촌부(村夫)에 가깝다. 반백의 머리카락, 헐렁한 남방과 바지에 운동화…. 구수한 충청도 말씨는 절로 친근감을 느끼게 하고 크고 두꺼운 안경 너머로 아주 가끔씩만 상대에게 시선을 던지는 모습은 무척 낯을 가리는 사람이라는 인상을 준다.
최근 ‘죽은 자들을 위한 변호’(너른들판)라는 제목 아래 ‘이 땅에 진정한 친일파는 없다’며 다시 민감한 이슈를 들고 나온 그를 만났다.
책에 대한 반응을 묻는 질문에 그는 “짚을 것을 제대로 짚었다는 칭찬도 있었고 말도 안 된다는 비난도 있었다”고 답한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조선인들의 삶의 질이 크게 향상되었다는 내용에 대해 반발이 심했다고 한다.
그는 이번 책이 “친일파 옹호가 아니라 친일 문제에 대한 논의 방식을 좀 더 합리적으로 접근해 보자는 생각에서 출발한 것”이라며 “60여 년이나 지난 과거지사가 왜 한국 사회에서 아직도 문제가 되는지에 주목해 주었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이와 관련해 그는 친일파 처단을 외치는 사람들이 겉으로는 정의를 부르짖지만 밑바닥에는 ‘증오’가 깔려 있는 것이 문제라고 주장한다.
“사회적 증오는 궁극적으로 반체제로 확산되기 때문에 위험하다. 재벌에 대한 두려움과 증오가 크면 시장경제 체제에 대한 증오로 확산될 수 있듯이 친일파에 대한 증오도 커지면 체제와 정권의 정당성을 훼손할 수 있다. 지금 이 시대,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증오의 물살’을 낮추는 일이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이 ‘작가’라는 사실에 주목해 달라고 했다.
“이번에 글을 쓰면서, 힘든 처지에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했던 사람들에게 일종의 책무를 느꼈다. 예를 들어 을사오적 중 한 사람으로 꼽히는 박제순이 보여준 저항과 당당함은 감동적이다. 당시 외부대신이던 그는 조선 정치가들 가운데 가장 훌륭하고 유능한 사람이었다. 죽은 이들은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얻지 못한 채 후대 사람들로부터 ‘선고’를 받는다. 모든 사람을 한 사람의 인간으로 다루는 작가는 버림 받은 자들에 관해 세상이 듣기 싫어하는 얘기들도 들려 줘야 한다. 욕을 먹어도 하는 수 없다. 그것이 소설가의 책무이며 역사적 진실과는 다른 예술적 진실이다.”
그는 자신이 태어날 때부터 아웃사이더였으며, 범주류였지만 주류에 들어가서도 비판을 하는 바람에 노론은 못되고 소론이 됐다며 웃었다.
학교 다닐 때도 ‘선생님 말이 맞나, 안 맞나’에만 관심을 갖느라 필기를 해 본 적이 없어 미움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그런 버릇 때문에 사회생활을 하면서도 여러 번 직장을 옮겼다. 서울대 상대를 졸업한 뒤 은행, 제조업체, 국책연구소 등 4차례나 회사를 옮긴 그는 모 대기업 연수 첫날 “대졸 여사원과 고졸 남사원의 임금이 왜 똑같으냐”고 항의하다 제 발로 걸어 나왔다.
이런 역류(逆流)의 기질은 그의 고백대로 타고난 것인지 모른다. 6·25전쟁 와중에 영어를 잘 해 미군과 인연을 맺었던 아버지 덕택에 기지촌을 돌아다니며 성장했다는 그는 “어릴 적 우리를 굶어 죽지 않게 하는 것이 미국이라는 걸 체험하면서 친미주의자가 됐다”고 고백한다. 비주류의 체험을 통해 주류를 인정하고 주류 안에서 다시 비판을 가하는 그의 지적(知的) 여정을 굳이 범주화하자면 우파나 보수라기보다 합리주의나 현실주의, 자유주의에 더 가까운 듯하다.
이렇게 모색에 모색을 거듭하는 그의 지적 성실성은 매춘, 마약, 군대 문제 등에 관한 그의 주장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매춘은 결혼을 위협하기보다 보완하는 기구이고, 마약중독은 병이 아니라 체질과 성격에서 나온 증상이기 때문에 차별적 규제가 바람직하며, 군대도 징병제에서 모병제로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 그런 예들이다. 이런 주장은 때로 과격해 보이지만, 도덕이나 가치의 잣대를 들이대기에 앞서 건강한 논의의 장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어 보인다.
넉넉하지 않은 전업 작가의 길을 걸어온 지 20여년. 취침과 기상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는 그는 세상 사람들의 관심사를 알기 위해 일간지들을 샅샅이 읽고 텔레비전 드라마까지 열심히 본다고 한다. 그는 워낙 혼자 노는 데 익숙해져서 ‘외로움’은 편하지만, 아직 쓰고 싶은 것들이 너무 많은데 이제 얼마나 더 쓸 수 있을지를 걱정해야 하는 50대 후반이 때로 쓸쓸하다고 말했다.
허문명기자 angelhuh@donga.com
▼복거일은…▼
―1946년 충남 아산 생
―1963년 대전상업고등학교 졸업
―1967년 서울대 상대 졸업
이후 83년까지 중소기업은행, 한국기계연구원 등 근무
―1987년 소설 ‘비명(碑銘)을 찾아서-京城, 쇼와 62년’으로 등단. 그 뒤 ‘높은 땅 낮은 이야기’(1988년), ‘오장원의 가을’(1988년), ‘역사속의 나그네’(전 3권·1991년), ‘파란 달 아래’(1992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 죽음 앞에서’(1996년), ‘소수를 위한 변명’(1997년),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1998년) 등 다수의 소설과 시집, 사회평론집 등을 펴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