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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포석 人事의 세계]기업⑩-여성의 지위 부상

입력 | 2003-08-19 17:16:00


UBS증권 서울지점의 최연소 임원인 이희승 이사(31·여)는 3년 전까지만 해도 리서치팀에서 애널리스트 보조 업무를 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평소 관심이 많던 소비재 종목 분석에서 탁월한 능력을 인정받으면서 2001년 3월 정식 애널리스트로 승진했다. 이후 차장과 부장을 거쳐 올해 초 이사로 승진했다.

외국대학 경영학석사(MBA)도 아니고 국내에서 태어나 대학을 마친 이 이사가 입사 4년 만에 임원으로 고속 승진한 것은 ‘능력으로만 사람을 평가하는’ 조직문화의 덕이다.


이 회사 김혜경 부장은 “능력으로만 직원을 뽑고 평가하다 보니 ‘여자가 압도하는 사무실’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여성인력이 많다”고 말했다. 현재 UBS증권의 모든 직급과 부서에서 여자가 절반을 차지한다.

▽여성인력 확보전=서울 강남구 역삼동 삼성SDS 본사에는 엄마가 젖을 짜서 보관할 수 있는 유축실이 갖춰져 있다. 이는 그동안 여성인력 비율이 증가하면서 ‘엄마 직원’들도 크게 증가했기 때문. 이와 함께 ‘엄마 직원’들이 아이와 함께 출근하며 맡겼다가 퇴근할 때 데려가는 탁아소도 운영되고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잘나가는 선진국 사례’로만 소개되던 풍경들이다.

다국적 제약회사인 한국MSD. 전체 임원 12명 가운데 여성이 4명이다. 과장급 이상에서는 여성 비율이 40%에 이른다. ‘남성들만의 영역’으로 간주되는 영업직도 50%가 여성이다. ‘여인천하’라는 말이 무색하지 않다.

구본무(具本茂) LG 회장은 지난해 7월 서울 여의도 LG트윈타워에서 신입여사원 17명과 오찬을 함께하는 등 여성인력 활용을 직접 독려하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LG 전체 여성인력은 2년 전인 2000년 말에 비해 40% 늘었다.

삼성도 여성인력을 최대한 활용해야 한다는 이건희(李健熙) 회장의 지론에 따라 여성인력의 채용과 육성을 확대하고 있다. 7월 말 기준으로 삼성에 재직 중인 대졸 여성인력은 8200여명으로 이 가운데 과장급 이상 간부가 980여명에 이른다.

▽‘여풍(女風)’이 부는 이유=우선 기업들의 ‘수요’가 크게 늘었다. 정보기술(IT)붐으로 지난 10년 사이 소프트웨어 개발 등 여성 특유의 감성과 창의력을 필요로 하는 직종이 크게 늘어났기 때문. 통상 여성인력이 전체의 10%에도 미치지 않는 일반 제조업체와 달리 LG CNS, 삼성SDS, 포스데이타 등 시스템 통합업체(SI)들은 여성 비율이 20%에 육박한다. 이 밖에 갈수록 마케팅 기법이 정교해지고 있는 금융업종, 유통업계 등도 섬세한 성격의 여성들의 진출이 활발한 업종으로 꼽힌다.

시장이 선호하는 분야에 대한 여성인력 ‘공급’도 크게 늘었다. 과거 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금녀(禁女)’ 학과였던 경영학과나 공과대에 진학하는 여성 비율이 폭발적으로 증가했다. 이미 전국의 공대에서 여학생의 비율이 20%를 넘었다. 공대를 졸업한 여성이 늘면서 조선 철강 등 그동안 여성을 찾아보기 힘들던 업종에서도 여성 엔지니어들이 급증하는 추세다.

이와 함께 외환위기 이후 고용의 안정성이 크게 떨어지면서 ‘부부가 함께 일하지 않으면 노후를 안심할 수 없는’ 사회적인 분위기도 여성들을 직장으로 향하게 했다.

▽10년 뒤엔 혁명적인 변화가 온다=채용정보업체인 인크루트가 올해 5월 105개 대기업을 대상으로 여성인력 현황을 조사한 결과 여성 임원이 있는 기업은 17개사로 전체의 16%에 불과했다. 이는 여성들의 기업진출이 본격화된 지가 얼마 안돼 현재로선 여성임원의 후보자원 자체가 적기 때문.

그렇지만 김애량(金愛良) 여성부 여성정책실장은 “앞으로 10년이 지나면 국내 기업의 인력 지도에 혁명적인 변화가 몰아닥칠 것”이라고 예상한다.

이광석(李光錫) 인크루트 대표는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출산율 저하 현상을 여성의 사회진출 확대와 연계해 풀이하기도 했다. 아직 직장탁아소가 보편화되지 않은 상황에서 상당수 직장 여성들이 커리어 관리를 위해 출산을 기피하면서 출산율이 떨어졌다는 것이 그의 설명.

삼성경제연구소 강우란(姜又蘭) 수석연구원은 “그동안 성차별이 문제가 됐다면 앞으로는 여성인력 저(低)활용 문제가 이슈가 될 것”이라며 “여성인력을 얼마나 잘 활용하느냐에 따라 기업의 성패, 나아가 국가의 미래가 갈릴 것”이라고 말했다.

공종식기자 kong@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