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시드니의 마리오 리타노(42). 이탈리아 출신의 이민 2세대로 생선 도매업자인 리타노씨는 올봄 새 집을 매입했다. 시드니 부촌 중 하나인 고든지구의 대지 1600m²(약 485평)에 지은 지 1년 3개월 된 2층 개인주택이다. 구입가가 120만 호주달러였는데 일부 수리를 하고 나니 벌써 180만달러를 호가한다. 수익률 50%의 수지맞는 재테크다.
흥미로운 점은 소유주 이름이 ‘마리오 리타노’가 아니라 ‘리타노 패밀리 노미니(nominee)’이다. 두 동생과 함께 공동으로 투자했기 때문이다. 현재 이들이 보유중인 주택은 모두 5 채.
리타노 형제들의 ‘집에 대한 집착’은 시드니에서는 색다른 현상이 아니다. 요즘 호주에서는 형제 또는 동창, 이웃 주민들이 공동으로 부동산 투자를 하는 것이 붐이다. 이른바 ‘부동산 트러스트’다. 한국에서는 아직 생소한 개념의 부동산 투자를 위한 소규모 ‘신탁회사’다. 쉽게 말해 아는 사람끼리 돈을 모아 부동산에 투자하는 일종의 ‘출자형 유한회사’인 셈이다. 당장의 수익보다는 은퇴 뒤 노후 생활자금을 마련하기 위한 장기투자에 목적이 있다.
이처럼 호주에서는 90년대 이후 초저금리 시대가 계속되면서 재산 증식과 노후를 대비한 부동산 투자가 열풍이다.
리츠(REITs)나 자산담보부채권(ABS)처럼 금융상품과 연계된 우회적 투자도 활발하지만 실물에 대한 직접 투자도 인기다. 금리는 계속 떨어지기만 하는데 집값은 수직에 가까울 정도의 가파른 상승률을 나타내고 있기 때문이다.
예컨대 시드니의 단독주택 가격의 연평균 상승률은 89년 4%에 지나지 않았으나 올 7월 말 현재 20%를 웃돌고 있다. 반면 금리는 집값 상승률과 가위 형태를 그리며 89년 17%대에서 7월 말 5%대로 떨어졌다.
호주무역대표부(AUSTRADE)에서 근무하다 6년 전 은퇴한 멜버른의 찰리 후앙(56)은 올해 초 아내와 함께 두 달 반 동안 인도양의 섬을 대상으로 ‘이색 섬 찾기’ 여행을 했다. 9월에는 남태평양 섬 일주에 나설 계획이다. 작년 말에는 부모의 이민기를 책으로 내기 위해 선대의 고향인 중국 쓰촨성 일대를 중심으로 한 달 가까이 현장 답사를 했다. 물론 자비(自費)로.
많지 않은 연금으로 생활도 넉넉지 않을 터인데 후앙의 이런 다소 ‘사치스럽다’고 할 정도의 경비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답은 간단하다. 은퇴에 대비해 구입한 시내 퀸스 상가 내 푸드 백화점(food court)의 베트남식당(14평 규모)이 비밀의 열쇠다. 4주에 7600호주달러(약 585만원)의 임대료가 나오며 화재 보험료 및 세금 등을 제외해도 평균 4900달러(약 377만원)를 손에 쥔다. 또 월세를 준 침실 3개, 거실 1개의 주택(후앙씨는 1가구 2주택 소유자)에서도 2주 단위로 270달러(약 20만원), 4주 단위로 환산할 때 540달러(약 40만원)의 고정적 수입을 확보하고 있다. “일찍 준비한 덕분에 여유 있는 노후 생활을 보내고 있다.” 후앙씨의 느긋한 모습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많은 호주인은 주요 투자 대상으로 부동산만한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있다.
시드니 최대 부동산 개발회사 중 하나인 퀀텀그룹.
최저 투자액 1만호주달러에 6년 뒤부터 9.15%의 고정 수익률 보장을 내세우며 ‘노후 보장에는 최고’라는 슬로건으로 개인투자자들을 모집하고 있었다. 퀀텀사는 투자자들의 투자금액을 주권(株券)처럼 ‘단위(unit)’로 계산한 뒤 이를 토대로 트러스트 회사를 만든다. 예컨대 1만달러를 1유닛으로 하기로 했다면 10만달러를 투자한 사람은 10유닛을 보유하게 된다. 이 돈으로 건설된 대형 쇼핑몰 등은 퀀텀 그룹의 자회사가 직접 운영 관리하며 투자자들은 매년 배당 형태로 수익금을 받는다. 배당금에는 세금이 거의 붙지 않기 때문에 이런 종류의 트러스트 투자는 최적의 절세 부동산 상품으로 꼽히고 있다.
웨인 댈리 퀀텀그룹 증권사업부문 대표는 “최근 ‘퀀텀 신디케이트 9호’ ‘퀀텀 트러스트 9호’ ‘퀀텀 모기지 트러스트-K 클래스 유닛’ 등의 상품을 내놓았는데 이들 각자가 별도의 회사가 된다. 세 상품, 엄격히 말하면 세 회사에 투자자가 몰려들어 상품 발매 3주 만에 마감이 됐다”고 전했다.
투자 대상도 다양해지고 있다.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 등 대도시에서는 상가와 사무실 등이, 도시를 벗어나서는 목장(소, 양)과 포도농장 등이 인기다. 경관이 빼어나지만 아직 개발이 덜 됐다 싶으면 ‘묻지 마’식의 땅 사재기가 일어나곤 한다.
멜버른에서 변호사로 활동 중인 제리 컥(37)은 고등학교(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 아퀴나스 칼리지) 동창 7명과 300에이커(약 36만평)의 미개간지를 공동 매입했다. 투자지역은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의 주도인 퍼스 남쪽 200여km 떨어진 마거릿강 하구 부근. 바다를 향해 내리꽂듯 깎아지른 기암괴석, 흰 구름 아래로 펠리컨이 유유히 날갯짓을 하는 유클리트 숲, 구릉이 나타날 때마다 띄엄띄엄 나 있는 포도밭, 바닷물에 낚시 바늘을 던지면 곧바로 걸려 나오는 연어, 바다 곳곳에 검게 펼쳐져 있는 전복밭.
컥과 친구들은 이런 자연적 환경으로 이 일대가 머지않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주의 대표적 리조트지구로 개발될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 확신은 곧 현실로 나타났다. “막연히 기대했던 희망 사항이 올 초부터 서서히 눈앞에 나타나기 시작했습니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부호들이 별장을 짓기 시작하면서부터 개발 붐이 일기 시작했습니다.” 개발 효과의 영향으로 땅값이 오르리라는 예상이다.
이런 적극적 투자 이외도 노년맞이용 소극적 투자도 활발하다.
호주 굴지의 종합건설사인 머백. 머백사는 신도시 건설 및 대형 건물 건축 등으로도 이름이 높지만 소형 주택 건설 사업본부도 높은 경쟁력을 자랑한다. 고급스러운 은퇴자 마을 건설과 분양이 이 분야 주력 상품이다. 머백사는 대도시 주변으로 여건 좋은 지역을 골라 40∼50가구의 단아하고 고급스러운 주택을 건설해 예비 은퇴자들에게 분양하고 있다. 분양가는 30만∼40만 호주달러. 손이 덜 가도록 거추장스러운 시설물을 최소화하고 동선도 줄였다.
얼마 전 분양한 북(北) 투라무라 지역 은퇴자 마을(40가구)은 밀려드는 신청자들로 담당직원들의 업무가 마비될 정도였다. 이 마을의 주택 1채를 분양을 받은 브리즈번의 증권사 중견 간부인 제이슨 길햄(42)은 “미래를 위해 은퇴자용 주택을 구입했다”며 “우선 부모님이 사용토록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고객은 실수요자도 있지만 이처럼 ‘미래 대비형’이 대부분이다.
호주인들의 부동산 투자 열풍은 언제까지 계속될까.
공인회계사인 스티븐 임(한국명 임성권)씨는 “현 하워드 정부의 기본 경제정책 중 하나가 부동산 경기 부양을 통한 경기 활성화인 데다, 역시 포트폴리오 수단으로는 ‘부동산밖에 없다’는 인식이 넓게 확산돼 있어 당분간 부동산투자 붐은 계속될 것 같다”고 전망했다.
중견 부동산 컨설팅 업체인 이스트우드 리얼티의 제이슨 고(한국명 고직순) 대표는 “노후생활을 더 이상 연금에 의존할 수 없다는 사실이 현실로 나타나고 있어 장기 투자 대상으로 부동산이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말했다.
시드니·멜버른·브리즈번=반병희기자 bbhe424@donga.com
▼美 주택저당채권 인기 ▼
미국 시애틀에 사는 A씨(59)는 최근 약 10만달러의 금융자산 가운데 5만달러를 주택저당채권(MBS)에 투자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A)가 “국채에 버금가는 안전성을 갖춘 데다 국채보다 1% 이상 이자가 높다”고 추천하기 때문.
미국 은퇴자에게 MBS는 주요 투자 대안이다.
MBS란 개인이 집을 사기 위해 은행에서 빌린 대출금을 담보로 GNMA 등 ‘모기지 유동화 회사’가 발행한 채권.
BOA의 개인고객투자부문 에드워드 라스코브스키 부사장은 “MBS를 발행한 기관이 원리금 상환을 보장하기 때문에 발행기관이 파산하지 않는 한 안전하다”며 “위험은 낮고 수익은 높은 상품”이라고 말했다.
개인이 MBS에 투자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 금융기관을 통해 MBS를 직접 사거나 투신사의 MBS펀드에 가입하는 것.
단, 이자율이 크게 떨어지면 채권의 만기까지 투자할 수 없다는 단점이 있다.
채권딜러회사 라이언 벡의 마틴 웰즈뮬러는 “이자율이 떨어지면 대출자들이 높은 이자율로 받았던 대출을 갚아 버리고 새로 대출을 받는다”며 “MBS회사도 높은 금리로 발행된 MBS를 만기 이전에 사들일 수 있는 권리(call option)를 갖는다”고 말했다. 투자자는 새로운 투자 대상을 찾아야 하는 것.
이 때문에 간접투자가 더 보편화됐다.
살로먼스미스바니투신운용의 ‘미국 정부채권펀드’는 작년 말 현재 MBS에 86.4%, 국채에 1.8%를 투자하고 있다. 5월 말 현재 ‘최근 1년 수익률’이 7.78%로 직접 투자에 비해 손색이 없다.
시애틀=이나연기자 laros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