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지하철 펜실베이니아역에서 블루스를 부르는 71세의 플로이드 리가 20일 서울지하철 을지로입구역에서 자신이 만든 곡 'Nobody cares about me'를 열창하고 있다. 이종승기자 unsesang@donga.com
《20일 오후 5시 서울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 인근 백화점에 쇼핑 나오거나 조금 일찍 퇴근길에 오른 사람들은 갑자기 터져 나온 전자 바이올린 소리에 발길을 멈췄다.
그들의 귀와 눈을 끌어당긴 것은 한 무리의 외국인 연주자들. 까만 가죽바지를 입은 바이올린 연주자가 선율을 흩뿌리는 동안 백발의 흑인과 색소폰을 든 동양인, 백인 드러머 등은 무대 뒤에서 음악에 몸을 맡기고 있다. 삼삼오오 모여든 관객들이 어느덧 100명가까이 된다. 어디서 본 듯한 풍경이다. 지하철과 연주자들…. 그렇다. 뉴욕의 명물인 지하철 연주자들이 한국에 온 것이다. 다양한 장르의 5개 연주팀이 이달 말까지 서울의 지하철과 거리에서 ‘뉴욕’을 재현한다.》
● 지하철 악사된 줄리아드 출신 바이올리니스트
뉴욕 지하철 연주자들의 스펙트럼은 다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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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 바이올린을 연주하는 로렌조 라 로크(43)는 뉴욕에서 태어나서 자란 뉴욕 토박이다. 5세부터 바이올린 연주를 시작했으며 8세 때는 줄리아드 음악원에 들어갔다. 14세때 음악원을 졸업한 뒤 뉴폴대에서는 작곡을, 우드스톡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에서는 재즈를 배웠다. 15세 때는 뉴욕 심포니와 함께 카네기홀에서 공연했으며 스무살 때부터 클럽에서 밴드생활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클래식 음악과 재즈를 함께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재즈가 나를 불렀다. 자유와 비형식을 추구하는 재즈의 정신이 나를 사로잡았다.”
화려한 경력을 가진 그가 굳이 지하철 악사가 된 계기다. 물론 상업적인 이유도 있다. 그가 ‘나의 애인’이라고 부르는, 5줄의 전자 바이올린으로 지하철에서 공연하면서 지난해 벌어들인 액수는 25만달러, 대부분 자신의 음악을 녹음한 CD를 팔아서였다. CD가 장당 10달러였으니 2만5000개가 팔린 셈이다.
뚱뚱한 몸을 흔들어대며 허스키한 목소리로 블루스를 부르는 플로이드 리(71)는 블루스의 본고장 미시시피가 고향이다. 평생 건물의 문을 지키는 도어맨으로 살아온 그는 뉴욕에 정착한 1973년부터 지하철 공연을 시작했다. 낮에는 문지기로, 밤에는 악사로 30년을 살아왔다.
“나는 뉴욕 지하철을 사랑한다. 왜냐하면 그 속에서는 나 자신이 ‘보스’이기 때문이다. 언제 떠날지, 언제 연주를 시작할지는 오로지 내가 결정한다.”
그는 워낙 오랫동안 지하철 공연을 해온 터라 뉴욕의 지하철공사격인 MTA(Metropolitan Transportation Authority)의 오디션을 받지 않고도 버젓이 자신이 선호하는 역인 펜실베이니아 역에서 공연한다. MTA 오디션에 심사위원으로 참가하기도 한다.
그는 한국 공연 계획이 확정된 뒤 인터넷을 뒤져 서울 지하철 지도를 찾아냈다. 이 배경화면에다 여자친구 클라라(51)와 자신의 얼굴을 넣고 ‘미시시피 델타 블루스 밴드, Korean Tour 2003’을 새긴 포스터를 제작해 갖고 왔다. 클라라는 그와 함께 노래한다.
한국에 오기로 돼있던 콜롬비아 출신 훌리오 디아스(74)는 막판에 계획이 뒤집어졌다. 마네킹과 함께 댄스 퍼포먼스를 벌이는 독특한 공연 덕분에 늘 많은 관객을 몰고 다니는 뉴욕 명물이다. 불법 체류자인 그는 한 번 미국을 떠나면 재입국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서울 공연을 포기했다.
뉴욕 지하철 연주자들은 미국 시민권자라고 하더라도 MTA의 오디션을 통과했느냐를 기준으로 공인된 연주자와 비공인 연주자가 나뉘기도 한다. 이번에 서울에 온 연주자 5개팀 중 한 팀은 비공인 연주자다. 비공인 연주자는 때로 지하철 공연 때 경찰의 제재를 받는다.
●삶이 어우러지는 곳
이들은 왜 하필 공연장소로 지하철을 고집해 온 것일까. 게다가 뉴욕의 지하철은 냄새나고 지저분하기까지 한데…. 모두들 공통적으로 ‘사람 냄새가 나는 곳’이라고 대답했다. 물론 세금을 떼이지 않고 돈을 벌 수 있다는 장점도 크다.
많은 뉴요커들은 지하철역에서 한번쯤은 발걸음을 멈춘 채 음악에 귀를 기울인다. 대부분은 곧 스쳐 지나가고 말지만, 음악이 마음에 들면 CD를 사는 행인들도 적지 않다. 일부는 연주자들과 e메일로 연락을 주고받거나 연주 장소를 옮겨도 기어이 찾아내 음악을 듣는다. 말하자면 ‘언더그라운드 오빠 부대’가 자연스럽게 형성되는 것이다.
자신이 직접 조립한 드럼과 심벌즈, 탬버린 등을 두드리는 마크 니코시아(28)는 기차가 드나드는 플랫폼에서 연주하기를 좋아한다. 아홉 살 때부터 연극무대에 서 온 그는 최근 2년 동안 음악에만 미쳐 있었다.
“나는 사람에 중독됐다. 그래서 뉴욕 지하철이 좋다. 일에 바쁜 그 수많은 사람들이 걷다가 멈춰서 내 음악을 듣고 좋아해 주면 그 이상 바랄 게 없다.”
니코시아는 어느 날 “고맙다”며 말을 건 한 남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그 남자는 “오늘 하루가 엉망이었는데 당신의 연주를 듣고 기분이 상쾌해졌다”고 말했다.
색소폰과 베이스기타 등으로 재즈를 연주하는 야즈밴드의 리더 야즈(40)는 한 한국인 여성 팬을 잊지 못한다. 그녀는 6개월 동안 미국에 체류하면서 날마다 그의 연주를 들으러 찾아왔다. 야즈는 서울에 오기 직전 그녀에게 e메일로 이번 공연계획을 알렸다. 그녀는 20일 공연을 보러 왔다.
야즈는 “클럽에서 연주하면 한정된 공간에 음악에 관심 있는 한정된 사람만 모인다. 그러나 지하철에서는 남녀노소 할 것 없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한 순간에 멈추게 하는 힘이 있다”고 말했다.로렌조는 “나는 오케스트라의 일부분인 바이올리니스트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내가 주인공인 무대에 서서 경제력이 없는 아이나 노인에게도 내 음악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는 거의 실비로 2주일 동안 한국에서 공연한다. 이 기간 뉴욕 지하철에서 벌 수 있는 막대한 수입을 포기하고 달려온 것도 한국 사람에게 자신의 음악을 알리고 싶어서다.
플로이드는 자신의 블루스 음악을 골똘히 듣던 한 꼬마의 똘망똘망한 눈동자를 아직도 기억한다. 연주가 끝나자 꼬마는 달려와 그를 껴안았다. 그의 ‘특별한 팬’ 가운데는 영화배우 모건 프리먼도 있다.
대부분 클럽에서의 연주를 겸하고 있는 이들이 지하철을 떠나지 못하는 이유는 관객과 직접 교류하는 그 생동감에 마약처럼 끌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들은 이 같은 생생함을 한국인들과 나누기 위해 20일에 이어 27, 28일에도 지하철에서 공연한다.
●뉴욕지하철 연주자란
뉴욕에서 지하철을 타 본 관광객들은 그 지저분함에 눈살을 찌푸린다. 그러나 뉴요커에게 지하철은 단순한 교통수단이 아니라 문화를 소비하는 장소다. 바로 수백명의 지하철 악사들 때문이다.
뉴욕 지하철에는 150여명의 ‘공인된’ 연주자들과 수백명의 ‘비공인’ 연주자들이 있다. 지하철이 생기던 1904년부터 거리의 악사들이 하나 둘 모여들었다. 1985년 그 인원이 폭발적으로 늘어나자 MTA는 오디션을 통과한 연주자들에게 연주 장소와 시간을 지정하기 시작했다. 오디션을 통과하지 못한 연주자들은 때로 경찰에 의해 공연을 방해받는다.
연주자들은 기차가 드나드는 플랫폼이나 통로, 지하 광장에서 젊은이들이 많이 오가는 밤 시간에 주로 자신이 작곡한 음악을 연주한다. 악기에 따라 소리의 울림이 달라지기 때문에 연주자마다 선호하는 역이 있다.
기타와 브라질 탬버린 등으로 삼바와 레게 등을 연주하는 돈 후아레스(46)는 타임스퀘어, 유니언스퀘어, 프린스 역을 좋아한다. 블루스의 플로이드는 펜실베이니아 역을 최고의 연주 장소로 꼽는다. 마크는 천장이 높아 소리의 울림이 큰 유니언스퀘어를 떠나지 않고 야즈밴드는 대리석으로 장식된 그랜드 센트럴 역에서만 신이 난다.
지하철 연주는 뉴욕만의 전유물은 아니다. 캐나다 몬트리올에서는 올해 초 해체되긴 했지만 무려 1000여회나 공연한 ‘노숙자 합창단’이 있었다. 프랑스 파리 지하철 당국도 테스트를 거친 뒤 악사들에게 공연장소를 배정해준다. 서울에서도 동대문운동장역 등 무대가 갖춰진 곳에서 일부 문화공연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 관제 행사 수준이다.
뉴욕시민들은 지하철 공연을 무료로 즐긴다.
그러나 음악 수준 만큼은 결코 싸구려가 아니다. 재즈, 록, 삼바, 보사노바, 색소폰, 블루스, 힙합 등 거의 모든 장르의 음악이 다양한 악기에 의해 연주되고 변주된다. 미국에서의 삶처럼.
하임숙 artemes@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