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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네리뷰]잔혹 공포영화 ‘피’만 있고 ‘소름’은 없다

입력 | 2003-08-21 18:19:00

근친상간을 통해 태어난 돌연변이 식인 살인마들이 가시철망을 들고 인간을 추적하는 영화 ‘데드 캠프’(왼쪽). 변태성욕 살인마가 면도날, 도끼, 전기톱을 휘두르는 피칠갑의 영화 ‘엑스텐션’. 사진제공 무비랩·래핑보아



잔인하다고 해서 다 무서운 건 아니다. 22일과 29일 각각 개봉하는 할리우드 영화 ‘데드 캠프’와 프랑스 영화 ‘엑스텐션’은 확실한 난도질(슬래셔) 영화지만 살인마의 전지전능함과 개성이 떨어진다.

영화 ‘데드 캠프’(감독 롭 슈미트)의 살인마는 인간의 근친상간으로 태어난 돌연변이들이다. 그 정체는 오프닝 크레딧과 더불어 초장부터 공개되고, 영화 시작 32분만에 얼굴까지 드러낸다. 베일에 가려진 살인마가 주는 긴장과 공포에 무임승차하기를 사절한 이 영화는 결국 얼마나 참신한 도구와 테크닉으로 난도질하느냐로 승부를 걸 수밖에 없다.

의대 졸업생인 크리스는 산속 도로로 잘못 들어 운전해 가던 중 캠핑카를 들이받는다. 크리스와 캠핑카의 대학생들은 지원 요청을 위해 숲 속을 헤매다 오두막을 발견한다. 오두막에선 인육 냄새가 진동하고 기괴한 사냥도구들이 발견된다.

‘데드 캠프’에서 살인마들이 애용하는 가시철망은 신선하다. 그러나 침대생활을 하고, LP레코드를 들으며, 인간의 치아를 콜렉션하고, 인육을 부위별로 분류해 냉장고에 저장할 정도로 문화적 감성과 지능을 가진 식인괴물들이 뾰족한 전술이나 팀워크 없이 우르르 몰려다니며 크리스 일행을 뒤쫓는 모습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그런 맥락에서 흥미롭게도 ‘잔혹의 역전(逆轉)’ 현상이 이 영화에서는 발견된다. 일행을 하나 둘 잃어가며 천신만고 끝에 살아남은 남녀 주인공이 살인마들 못지않게 잔혹하고 현란한 기술로 살인마들의 숨통을 끊어 놓는 막판 장면은 과연 살인을 선호하는 쪽이 괴물인지, 아니면 인간인지 알쏭달쏭하게 만든다. 원제 ‘Wrong Turn’. 18세 이상 관람가.

한편 ‘엑스텐션(Xtension)’에 등장하는 변태성욕 살인마는 스타성이 부족하다. 살인마는 무력한 피해자들을 단번에 해치우지 못하고 재차 삼차 공격한다. 면도칼을 든 채 계단을 오르며 씩씩거리는 뚱보 살인마의 숨소리는 ‘일상 속 공포’를 만들어 내기보다는 직무(?) 수행에 게을러 보이는 느낌을 준다.

여대생인 알렉스와 메리는 시험공부를 위해 한적한 알렉스의 시골집을 찾는다. 그날 밤 알렉스의 집을 찾은 살인마는 이유 없이 가족을 살해하고 알렉스를 납치해 사라진다. 알렉스에게 레즈비언적 관심을 갖고 있던 메리는 알렉스를 구하기 위해 뒤를 쫓는다.

영화 막판의 반전은 충격적이다. “누구도 우리 사이를 갈라놓을 순 없어”하고 주문(呪文)을 외듯 중얼거리는 메리의 모습이 담긴 시작부는 극적 반전을 암시하고 있었던 셈. 그러나 주도면밀하지 못한 복선 탓에 반전은 뒤통수를 때리기보다는 작위적이다. 라스트 10분간은 전기톱까지 등장, 질릴 만큼 낭자한 피를 볼 수 있다. 그러나 면도날, 엽총, 도끼, 전기톱 등으로 도구를 분주히 바꾸는 이 뚱보의 모습은 다채롭기보다는 왠지 경황없어 보인다.

살인마에 쫓기던 메리가 숨 막히는 긴장 속에 욕실의 흰 커튼을 걷어 젖히는 장면은 이 영화의 신예 감독 알렉산드르 아야가 다중인격 살인마를 다룬 심리 스릴러 ‘사이코’의 감독 히치콕에게 표시하는 경외감인 듯. 18세 이상 관람가.

이승재기자 sjd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