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57년 주둔사에서 주한미군의 거취가 요즘처럼 사회적 이슈로 부각된 적은 없다. 그 이유는 크게 볼 때 두 가지의 달라진 현실 때문이다. 하나는 한국 정치사회에서의 세대구조의 변화이고, 다른 하나는 탈냉전이 몰고 온 세계 체제의 변화다.
한국에서는 전쟁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가 사회의 중심 세력으로 떠오르고 있다. 이들은 6·25전쟁 당시 미군과 함께 피를 흘리며 전쟁에 직접 참여했던 아버지 세대와는 크게 달라진 환경에서 태어나 성장했다. 386세대를 포함한 이들 전후세대는 우리나라가 권위주의 군사정권의 암흑기를 겪게 된 배경에 미국의 지원과 주한미군의 후원이 있었다고 믿는다. 그래서 주한미군에 비판적인 견해를 갖고 있으며, 이는 오늘날 반미감정의 대중화라는 사회 문화적 현상을 일으키는 중심 요인이 되고 있다.
냉전 시기 주한미군의 핵심 기능은 사회주의권 봉쇄와 대북 억지였다. 그러나 90년대 이후 중국과 러시아를 포함한 동북아의 구조적 탈냉전은 사회주의 봉쇄정책을 무의미하게 만들었다. 물론 주한미군이 제공하는 평상시 대북 억지력과 전시 인계철선(tripwire)의 안보우산은 여전히 대한민국 안보 이익의 중추적 요소로 남겠지만 그 기능이 점차 변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미국 안보문제 전문가들의 얘기를 들어보면 클린턴 행정부가 아시아 주둔 미군을 10만명 수준으로 동결시킨 93년 ‘군사전략보고서’ 이후 주한미군의 기능은 사회주의 봉쇄에서 중국 봉쇄로 전환됐다. 주한미군에 ‘중국 봉쇄’ 기능도 부여한다는 미국 쪽의 이런 구상은 머지않아 한국 국민의 정서적 장벽과 충돌하게 될 것이다.
남북간 군사적 신뢰 조치가 심화 확대된다는 전제하에서 보자면, 한국 사람들은 미국과의 이데올로기적 연대의식보다는 북한과의 민족적 유대의식을 우선시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되면 주한미군이 자칫 ‘외세 개입’이라는 부정적 상징물로 간주될 수 있다.
주한미군의 기능 일부가 중국의 팽창에 대한 전략적 억지력으로 전환된다는 것도 한국 사람들에게는 냉전시대 사회주의 봉쇄정책과는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이데올로기 장벽이 걷힌 지금 한국인들은 미국보다는 문화적 지리적 역사적으로 가까운 중국에 훨씬 더 정서적 친밀감을 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러나 주한미군 문제는 여론과 국민정서에 따라 좌우되는 현실 정치의 차원보다는 국가안보, 국가 이익의 관점에서 냉정하게 전략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주한미군은 한반도와 동북아에서 전쟁을 억지하고 세력균형의 조정자로서 현실적으로 필요한 존재다. 국가안보 문제를 흥분된 상황에서 감정의 대상으로 접근할 때마다 국익은 소진되고 국민은 피폐했던 과거사를 되새겨야 한다.
물론 미국도 한국 사회의 새로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냉전체제의 해체와 함께 친미 감정을 가졌던 한국의 전쟁 세대가 주변 세대로 밀리고 있다는 점, 그리고 민주주의의 심화 확대에 따라 주한미군에 대한 한국인들의 시각과 의식이 현격하게 변화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이제 한미관계에도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한 상황이다.
장성민 미 듀크대 국제문제연구소 객원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