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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프로젝트]'자연 박물관' 팔미라섬 보존

입력 | 2003-08-21 19:02:00

바다와 하늘 그리고 산호와 각종 희귀 동식물로 태고의 생명 그대로를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는 ‘인간 출입 금지구역’ 팔미라섬. -사진제공 네이처 컨서번시


“시간을 잃어버린 곳.”

하와이에서 남동쪽 1700km에 위치한 팔미라섬은 인류 역사 속에서 수만년 동안 존재하지 않았던 곳이다.

팔미라섬이 알려진 것은 공식 기록상 1798년. 미국의 항해가 에드먼드 패닝 함장이 발견했다고 돼 있다. 이후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1922년부터는 하와이에 거주하는 풀라드 레오 가문의 사유지다.

1974년 발생한 살인사건을 계기로 팔미라섬은 일반에 알려지게 됐다. 요트를 타고 유람하던 중 우연히 이 섬에 들른 남녀를 때마침 섬에 숨어 있던 마약 밀매상이 신분이 노출될까봐 살해한 것. 이 사건은 1991년 빈센트 버그리오시의 소설과 동명의 TV 드라마 ‘그리고 바다가 말해줄 것이다’로 널리 알려졌다.

▼연재물 목록▼

- 러 상트페테르부르크 '호박房'
- 中 둔황석굴群 보존
- 中 네이멍구 防砂林 조성
- 유네스코 위성감시 시스템
- 아프간 바미안석불 복원
- 캄보디아 앙코르 유적 복원
- '코모도 드래건'-인간 共生길 찾아라
- 러시아 바이칼湖 살리기
- 아마존 치료 프로그램
- 伊 베네치아 섬 복원
- 伊 베네치아섬 복원
- '생태寶庫' 갈라파고스섬 보존
- 古代 알렉산드리아도서관 재건
- 이집트 클레오파트라宮 발굴

섬 전체가 6300㎢의 산호초로 둘러싸인 팔미라섬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이곳을 남태평양의 타히티, 피지, 인도양의 몰디브 같은 리조트로 개발하려는 업계의 구애작전이 본격화됐다. 마이크로소프트사의 빌 게이츠 회장도 팔미라섬을 ‘개인 놀이터’로 삼기 위해 한때 눈독을 들였다. 각종 공장과 미사일 위성 발사기지, 심지어 핵폐기물 저장소로도 고려됐다.

팔미라섬의 주인인 레오 가문은 80여년 동안 줄곧 섬 개발에 반대해 왔지만 결국 업계의 끈질긴 요구에 손을 들고 말았다. 1997년 매각 의사를 밝힌 것.

팔미라섬이 개발업자들의 손에 들어가면 오랜 세월 동안 보존돼온 천혜의 자연이 순식간에 망가질 것은 뻔했다. 팔미라섬은 생태계 다양성 면에서 갈라파고스 군도에 버금가면서도 인간의 손길이 전혀 닿지 않아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생태계가 자연 그대로 번성하고 있는 곳이다.

연 4500㎜에 이르는 풍부한 비는 열대우림뿐 아니라 다양한 생물들에게 최상의 환경을 제공한다. 팔미라섬을 찾거나 서식하는 바닷새는 100만마리에 이른다. 전 세계에 6000마리밖에 없는 털넓적다리도요새는 알래스카에서 뉴질랜드 인근까지 지구의 양 극단을 오가는 긴 여정 가운데 이곳에서 잠시 날개를 접어 쉰다. 여기에 둥지를 틀고 있는 빨간발 부비새는 갈라파고스 군도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많은 수가 목격된다.

팔미라섬은 또 전 세계적 희귀종인 코코넛게의 최대 서식지이며, 멸종 위기에 있는 초록색바다거북과 호크스빌바다거북, 하와이몽크바다표범도 이곳에 살고 있다.

매각 소식을 들은 미국 정부는 다국적 환경보호단체인 ‘네이처 컨서번시’에 긴급 지원을 요청했다. 팔미라섬이 부동산시장에 나온 이상 우선 매입해야 하나 의회 승인 절차 때문에 정부 예산을 따내기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4년여에 걸친 협상 끝에 2000년 네이처 컨서번시는 3000만달러(약 360억원)에 팔미라섬을 매입했다. 부대비용까지 모두 3800만달러가 들어간 이 프로젝트가 성사된 데는 휴렛팩커드의 창업주가 설립한 공익재단 ‘데이비드 앤드 루실 팩커드 재단’의 도움이 가장 컸다. 팩커드 재단은 모두 530만달러를 기부하고 2000만달러를 대출해 줬다. 미 정부 역시 890만달러를 보탰다.

‘개발되는 것을 우선 막고 보자’는 목적에서 시작된 매각이었지만 민간단체가 환경 보호를 위해 특정 지역을 통째로 사들인 것은 초유의 사건이 됐다. 네이처 컨서번시는 이를 계기로 보호가 필요한 지역을 사들여 인간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법을 주요 전략으로 채택했다. 이후 네이처 컨서번시는 텍사스 바카 목장(2002년 1월), 캘리포니아 팔로 코로나 목장(2002년 5월), 하와이 카후쿠 목장(2003년 7월) 등을 사들여 보호하고 있다.

네이처 컨서번시는 팔미라섬을 생태 관광지로 활용하겠다는 계획이다. 살아 있는 생태 교육장이기도 하다. 미 버몬트주 맨체스터빌리지의 팔미라 프로젝트 본부에서 만난 팔미라 프로젝트 팀장 낸시 매키넌 네이처 컨서번시 부회장은 “야생 생태계가 원시 자연 그대로 보존돼 있는 팔미라섬은 최적의 교육 장소”라고 설명한다.

네이처 컨서번시는 팔미라섬이 수용할 수 있는 적정 인구 수를 산출하기 위해 엄격한 생태 관리 및 감시 작업을 3년째 진행하고 있다. 표본생물들을 뽑아 이들의 생태 활동을 지속적으로 관찰해 환경 변화에 따른 이상징후가 없는지 살피는 것이다.

현재 섬에는 두 쌍의 부부 연구원이 상주하면서 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이들이 거주하는 천막 구조물은 자연의 일부가 되어 살아가는 ‘조화로운 삶’의 전형이다. 모든 에너지는 태양과 바람을 통해 자체 발전하고, 식수와 생활용수는 바닷물을 정화해 사용한다. 기계소리마저 ‘공해’로 판단해 모든 시설에는 소음방지장치를 달았다.

팔미라섬에 한꺼번에 머물 수 있는 인원은 최대 35명. 과학자들이나 잠재적 기부자를 제외한 일반인의 방문은 허용되지 않는다. 생태계 감시 결과 팔미라섬의 생태계가 인간의 출입을 견뎌내지 못할 것으로 판단되면 그나마 제한된 사람들의 출입조차 전면 통제할 것이라고 매키넌 부회장은 전했다. 인류 역사를 떠나 있었던 수만년 전으로 섬을 다시 돌려보내는 것이다.


팔미라섬이 최대 서식지인 희귀종 코코넛게(왼쪽)와 이 섬을 장식하고 있는 아름다운 산호. -사진제공 네이처 컨서번시

맨체스터빌리지(미 버몬트주)=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

▼엘니뇨 발생연도 산호 분석해 규명▼

2001년 팔미라섬의 산호를 이용한 주목할 만한 기후변화 연구 결과가 발표되면서 팔미라섬은 환경보호뿐만 아니라 학술적으로도 주목을 받게 됐다.

미국 캘리포니아공대(칼텍) 연구원 킴 코브(사진)가 1997∼98년과 2000년 팔미라섬에서 채취한 산호 150여개를 분석해 엘니뇨 발생 연도를 포함한 기후변화 기록을 1000년 이전까지 거슬러 규명해 내는 개가를 올린 것.

산호는 기후변화에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생물이어서 이를 통해 과거의 기후 추이를 유추해낼 수 있기 때문에 기후학자들은 기상관측이 시작되기 이전의 기후변화 자료로 활용해 왔다. 최근 들어서는 엘니뇨 연구 수단으로 각광을 받고 있다.

엘니뇨는 태평양 적도 인근 해역의 수온이 상승하면서 세계 곳곳에 폭풍 홍수 가뭄 등 기상 이변을 몰고 오는 이상기후 현상. 최근 잦아지고 있는 유럽의 이상 고온 또는 서아시아의 이상 가뭄도 엘니뇨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그러나 엘니뇨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명확하게 규명되지 않았다.

코브씨는 팔미라섬이 외부로부터의 환경 파괴가 거의 없을뿐더러 엘니뇨가 발생하는 태평양 적도 인근에 자리하고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섬 전체가 기후변화 기록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는 박물관인 셈. 팔미라섬의 주인인 네이처 컨서번시와 산호연구에 관심이 많은 사우디아라비아의 프린스 칼리드 빈 술탄 해양재단이 코브씨를 지원했다.

코브씨는 산소동위원소 분석을 통한 연구 결과 팔미라섬의 산호에서 900년 이후부터의 기후변화 기록을 얻어냈다. 엘니뇨 발생연도는 928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조사됐다. 엘니뇨 주기가 2∼7년에 이른다는 가설도 확인할 수 있었다.

엘니뇨가 환경파괴에 따른 지구 온난화로 점차 심해지고 있다는 통설과는 다른 결과가 나왔다. 지난 1000년 동안 엘니뇨의 횟수와 강도가 가장 심했던 때는 1648∼60년으로 나타난 반면 해수 온도의 상승폭은 지난 30년 동안이 가장 큰 것으로 나타난 것.

코브씨는 “많은 학자들은 최근 30년간 엘니뇨가 사상 최악이었으며 이는 온난화 때문이라고 주장해 왔다”며 “하지만 기온이 최근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았던 17세기에 최악의 엘니뇨가 발생한 것으로 나타나면서 엘니뇨와 지구 온난화는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설명했다.

코브씨는 2004년 다시 팔미라섬을 방문해 산호를 통한 기후변화 기록 작업을 계속 해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