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일본 씨름(스모)계의 챔피언(요코즈나)은 몽골 출신의 아사쇼류(朝靑龍)라는 청년이다. 그는 체구는 작달막하지만 잽싼 동작과 날카로운 운동신경, 다양한 기술로 200kg이 넘는 스모선수들을 제압해 버렸다. 인기도 제법 높다. ‘코가 높은 백인은 좋아도, 아시아인이라면 별로’라는 일본인들도 아사쇼류는 알아준다.
일본 스모계에는 같은 몽골 출신인 교쿠슈잔(旭鷲山)이라는 선수도 뛰고 있다. 아사쇼류만큼 특출난 존재는 아니나, 제법 상위 랭킹에 드는 선수다.
그런데 몽골에서 온 이 두 선수는 지독히 사이가 나쁘다. 최근에는 스모경기에서 진 아사쇼류가 교쿠슈잔을 향해 삿대질을 하고 행패를 부려 챔피언답지 못하다는 비난을 받았다.
그 다음 경기에서 아사쇼류는 교쿠슈잔의 상투(존마게)를 잡아당겨 반칙패를 당했는데 그 후 목욕탕 앞에서 서로 어깨를 비키지 않아 다투는가 하면, 경기가 끝나고 각자 자동차를 몰고 돌아가다 백미러를 부딪치는 등의 해프닝이 보도돼 웃음거리가 되기도 하였다. 견원지간(犬猿之間)이라는 말이 꼭 들어맞는다.
세상에서 한국 사람과 얼굴 생김새가 가장 비슷한 것이 몽골 사람이다. 광대뼈, 째진 눈, 몸집 등에서 구별이 어렵다. 그래서일까. 동족끼리 싸우는 것도, 외국의 비웃음을 사는 것도, 그래도 악착같이 용서하지 못하고 서로 망신당하고 손해 보면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는 멍청한 ‘기백’도 비슷하다.
나는 이 두 몽골 출신 스모 선수의 망신을 지켜보면서 고국의 싸움질을 떠올리곤 한다. 무엇 때문에 국회의 논객들이 분야를 가리지 않고 그리 끝없이 싸우는지, 과연 그렇게 불구대천의 원수처럼 싸울 일인지 이해하기 어렵다. 어리석은 욕설, 저주, 주먹다짐, 파괴행위, 누워서 침 뱉기의 되풀이가 아닐 수 없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을 정보기술(IT) 선진국이라는 점에서 평가해 준다. 인터넷에서만은 ‘한국이 한수 위’라는 소리도 자주 한다. 아마도 이런 평가는 인터넷 문화의 첨단이라고 할 인터넷언론의 자유게시판은 보지 않고 하는 소리인지 모른다. 일본인들이 한글을 잘 몰라 온통 저주의 욕설로 도배질된 그 욕설판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이 참으로 다행이다.
특히 정치 문제에 관한 의견은 저급하고 추악한 단어, 우리말에서 가장 지독한 욕설만을 고른 것 같다. 의견이 아니고, 돌팔매질이며 칼질이고 방화다. 그런 폭력행위가 인터넷 신문의 모든 의견란에서 예외 없이 되풀이된다.
일본에도 한국을 향한 선망의 눈길이 있다. 즉, 외환위기를 계기로 단행한 금융구조개혁이나 대통령 직선을 통한 지도자 선출 같은 것이 그것이다. 이러한 흐름들이 개혁이 지지부진하고 물갈이가 안 되는 일본 정치에는 신선한 충격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 안을 들여다보면 너무 갈라지고 찢어져 봉합할 길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400여년 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만나고 돌아온 김성일과 황윤길의 엇갈리는 보고 탓에 망국에 이르렀다고 다들 개탄한다. 하지만 지금이 21세기라 해서, 정쟁으로 다시 망국에 이르지 않는다는 보장은 없다.
김진관 제일은행 도쿄지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