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철규(姜哲圭) 공정거래위원장을 평할 때면 으레 ‘소신’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습니다. 시민단체 등에 몸담을 때부터 줄곧 지켜온 ‘경제 철학’ 때문일 것입니다.
개인적으로 그를 겪어본 사람들은 강 위원장을 남의 말을 경청하고 토론을 좋아하는 리더로 꼽습니다. 이 때문인지 공정위 직원들이 강 위원장에게 매기는 점수는 과거의 다른 위원장보다 대체로 후한 편입니다.
이런 그가 19일 기자간담회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공정위가 계좌추적권을 연장키로 하자 재계가 크게 반발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대한 답변이었습니다.
“재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용하겠다. 하지만 어느 경우나 (상대가) 정직해야 하고 신뢰성에 토대를 둬야 한다. 그래야 대화가 된다.”
사실 재계가 공정위의 계좌추적권 연장 방침에 대해 ‘총력 투쟁’ 운운하는 건 지나친 감이 있습니다. 공정위가 1998년부터 3년간 실시한 조사에서 대기업들은 무려 29조4000억원에 이르는 부당내부거래를 해왔던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정도라면 재계 스스로 공정위에 계좌추적권을 갖게 하는 근거를 제공한 셈입니다.
하지만 기업개혁을 진두지휘하는 공정위원장이 재계를 ‘정직하지 못한 집단’으로 치부하는 건 제대로 된 모양새가 아니겠지요. 상대를 도덕적으로 몰아붙인다면 누가 묵묵히 개혁의 칼날을 수용하려 하겠습니까.
더구나 최근 정치권의 대선자금 파문에서도 드러났듯 정치권과 관료사회가 기업들에 타락과 위선을 강요해 왔던 게 한국 경제의 굴절된 과거였습니다. 계좌추적권만 해도 공정위는 당초 내년 2월까지만 보유키로 했다가 5년을 더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이번만큼은 재계가 아닌 공정위가 신뢰를 저버린 셈입니다.
강 위원장이 도덕적으로 불결한 집단으로 치부한 것처럼 느끼게 했던 집단이 부디 재계가 아니길 바랍니다. 우리는 이미 강한 소신을 보유한 권력자가 편견을 가지게 되면 어떻게 되는지를 질리도록 경험했기 때문입니다.
고기정 경제부기자 koh@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