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자료사진
16대 국회 개원 직후인 2000년 7월 25일 김종호(金宗鎬) 당시 국회부의장의 서울 마포구 서교동 자택. 이른 아침부터 한나라당 의원 40여명과 보좌진까지 합쳐 100여명이 ‘인의 장막’을 치고 김 부의장의 자택 부근을 에워싸기 시작했다.
DJP 공동정부가 자민련의 교섭단체 지위를 확보하기 위해 국회법 개정안을 날치기 처리하려는 것을 막기 위한 작전이었다. 목표는 자민련 소속 김 부의장이 사회봉을 잡지 못하게 막는 것이었다.
변호사 출신인 한나라당 오세훈(吳世勳) 의원에게는 이날 ‘작전 참여’가 의원이 된 뒤 사실상 처음 한 공적인 활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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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23일 서울 여의도 국회 의원회관에서 기자를 만나 ‘당론’에 따라 꼭두각시처럼 움직일 수밖에 없었던 ‘정치 초년생’의 비애를 2시간여 동안 털어 놓았다.
“한 편의 ‘코미디’ 같았습니다. 국회의원들이 전경처럼 자택 부근을 철통같이 에워싼 가운데, 김 부의장은 세탁실 뒷문으로 몰래 빠져나와 인근 식당에 숨어들어 ‘빠삐용’처럼 탈출을 준비하더군요.”
그는 “결국 이 봉쇄작전이 성공하는 바람에 민주당 의원들을 4명이나 자민련에 빌려주는 희대의 사건까지 일어났지만 이날 일은 개인적으로는 정말 낯이 뜨거웠다”고 회고했다.
물론 그도 처음에는 ‘당론’을 앞세워 무리한 행동을 강요하는 당 지도부에 저항했다.
“당선 직후인 2000년 4월 ‘무조건 장외투쟁에 따라 나오라’는 당 지도부의 명령을 한 번 거부했습니다. 그랬더니 ‘너만 잘났느냐’는 압박이 들어오더군요. ‘왕따’를 당할 것 같았습니다.”
한 번 발을 들여놓자 장외투쟁에 계속 동원됐다. 서울에서 인천 부산 대구 등을 돌며 김대중(金大中) 정권의 실정을 알리는 대회에 분주히 참가했다.
“출석을 체크하는 당 지도부의 ‘눈빛’이 섬뜩했습니다. ‘눈도장’만 찍고 슬쩍 빠져버리면 된다며 자위도 했으나 마음 한구석의 답답함은 어쩔 수 없더군요.”
오 의원은 “경멸했던 장외투쟁, 특정지역 의존 중심의 정치에 빠져들다 보니 무력감과 자괴감으로 우울증을 앓기도 했다”고 술회했다. 심지어 “오 의원이 실어증(失語症)에 걸렸다”는 소문까지 의원회관 주변에서 나돌 정도였다.
오 의원은 지난해 1월 이회창(李會昌) 당시 한나라당 총재의 방미 수행을 하면서 또 한 번 정치인으로서의 좌절을 맛보았다. 방미가 끝난 직후 민주당측이 “이 의원이 (방미시) 모 의원과 함께 ‘계곡주 향연’ 등 질펀한 술자리를 가졌다”고 공격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은 민주당 이낙연(李洛淵) 대변인이 결국 “사실이 아니다”며 사과의 편지를 보내 없던 일이 됐지만 오 의원에게는 아직도 그때 일이 큰 상처로 남아 있다.
“지난해 초 중3이던 큰딸이 홈페이지에 뜬 근거 없는 비방을 보고 ‘계곡주가 뭐냐’고 묻기에 화들짝 놀랐습니다. 딸애는 큰 충격을 받았고 아버지로서 도저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었습니다. 그런 문제를 사실 확인도 하지 않고 공격 소재로 삼은 민주당이 정말 원망스러웠습니다.” 오 의원이 당론의 높은 벽을 절감한 것은 16대 총선 직후 열린 당 남북관계 특위 첫회 때였다. 오 의원은 “대북 현금지원은 안 되지만 인도적 지원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일반론을 폈다. 하지만 동료 선배의원들은 “물정 모르는 소리하지 말라”고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혼쭐이 난 오 의원은 이후 남북관계에 대해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토로했다.
한때 TV의 인기 진행자로 ‘잘 나가는’ 변호사였던 오 의원은 지난해 여름 변호사 사무실 문도 닫았다. 수임사건이 ‘뚝’ 떨어져 적자가 누적돼 사무실을 유지할 수 없었던 것.
주5일 근무제 관련 정부 입법안을 주도한 그는 최근 국회 환경노동위에서 이 법안이 처리되는 과정을 보며 다시 한번 비애를 맛보아야 했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의 시위가 계속되자 집 부근에도 삼엄한 경찰 경비가 펼쳐졌습니다. 아내와 함께 자택에 배치된 경찰들을 보며 ‘계속 정치를 해야 하나’란 자괴감을 느꼈지요. ‘경제를 살리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의원들의 고뇌는 공허한 메아리였던가요.”
오 의원은 기자와의 인터뷰를 마치며 3년 전 자신의 지역구(서울 강남을) 유권자들 앞에서 던진 공약을 되새겼다. ‘남을 비방하지 않고 내 공약과 다짐을 실천함으로써 지지를 끌어내겠다’는 약속이었다.
정연욱기자 jyw11@donga.com
▼오세훈 의원은…▼
TV 진행자로 두각을 나타내며 ‘스타 변호사’로서 명성을 날린 법조계 출신 정치인(42세). 고려대 법대(79학번)를 나왔다.
2000년 16대 총선을 앞두고 한나라당에 입당해 서울 강남을 지역구에서 당선됐으며 지난해 대통령선거 당시 이회창(李會昌) 후보의 비서실 부실장을 맡았다. 최병렬(崔秉烈) 대표 체제에서도 청년위원장을 맡아 당내 젊은 소장파의 중심으로 부상했다.
정치권 입문 전 환경운동연합 상임집행위원장으로서 환경운동에 참여했고, 숙명여대 겸임교수를 지내기도 했다. 국회에선 줄곧 환경노동위원을 맡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