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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요포럼]김병익/盧대통령 '연수'는 끝났다

입력 | 2003-08-24 18:23:00


이제 취임 6개월을 맞은 노무현 대통령은 마땅히 ‘밀월’로 지냈어야 할 반년을 아마도 ‘쓴잔’으로 보냈을 것이다. 지식인들부터 택시운전사까지, 야당은 물론 그를 후보로 내세웠던 여당의 일부까지, 특히 주요 신문들이 50대의 이 신임 대통령에게 비판과 비난, 공격과 야유를 보냈으며 여론조사도 그에게 호의적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그의 당선부터 못마땅해 하던 나의 주변 친구들도 그의 그간의 행적에 대해 불신을 드러내고 있다. ‘악역’으로 나서는 언론의 공세에 소송으로 맞서는 그를 위해, 문득 그리고 짐짓, 내가 ‘선역’을 자청하고 싶어진 것은 고립무원의 외로움에 젖어 있을 그의 처지가 종국에는 우리 자신의 처지로 되돌아올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이다.

▼약점과 강점 한꺼번에 드러나 ▼

대통령 선거에서 내가 지지하지 않은 노무현 후보가 당선되자 나는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그는 기성 정치권의 공해로부터 오염을 가장 적게 받은 정치인이며 그 자신 자유전문인이란 장점을 가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정규대학 출신이 아닌 채 자수성가한 법률가였고 잠시 장관을 지냈을 뿐 국회의원 경력을 가졌다 하더라도 조직 생활을 거의 하지 않은 인물이었다. 그는 이른바 주류에 끼지 못한 주변인적 존재였고 세련되지 못한 야인이었으며 전직 대통령들의 70대를 껑충 뛰어넘어 광복 이후에 출생한 50대 젊은 나이이고 또 성향이 진보적이었다. 그는 어쩌면 기자이며 소설가인 고종석이 한 작중 인물을 통해 말한 대로 “대통령에 당선된 것이 가장 큰 업적”으로 비칠 수 있는 아마추어 리더였다.

그의 이런 자질들은 ‘준비된 대통령’으로 자부한 정치인들에 비해 경험과 경륜이 부족하고 고급 정보를 처리하는 기술이 미숙하며 착잡하게 뒤얽힌 갖가지 충돌과 갈등을 조정, 조율하는 데 불안정하고 정책의 선택과 추진에 확신을 갖추기 어렵다. 그런 약점들에 비해 강점도 기대할 수 있다. 구태의연한 관행을 깨뜨리고 참신한 아이디어와 힘찬 추진력으로 예상 밖의 정책을 밀고 나갈 수 있을 것이며 기득권 세력이 고집하는 부조리를 개혁할 자질들이 그것이다.

40대의 ‘낀 세대’ 사회학자인 송호근이 “월드컵 레드데블스의 주축인 ‘2030세대’는 노무현에게서 관습적 제도적 장애물을 뛰어넘는 의지를 보았을 것이며 기성세대가 장악한 한국 사회의 숨 막히는 껍질을 깨뜨리고 싶은 욕망을 노무현에게 투사했다”(‘한국,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나’)고 그의 당선 배경을 해석한 것은 이래서였을 것이다. 그러니까 노무현 대통령은 가능성은 풍부했지만 준비는 없었고 독특한 자질들이 어떻게 발현될지 예상하기 힘든, 거의 타불라 라사와 같은 상태에서 일국의 통치자라는 막강한 자리에 오른 것이다.

취임 이후의 지난 6개월은 그 자질의 긍정적, 부정적 측면들이 함께 드러난 시기였다. 때로는 과감했지만 더러는 주저했고 어떤 경우에는 당당했지만 혹은 흥분하기도 했으며 어떤 일에는 자신감을 드러냈지만 또 다른 일에는 무력해 보이기도 했고 예측할 수 없는 불안감을 안겨 주는가 하면 자신의 원칙에 의한 일관성을 보여 주기도 했다. 그러는 가운데 그는 미국과 일본을 방문하면서 가팔랐던 대외관을 순화시켰고 노동자들의 과격한 시위에 부닥치면서 진보적 태도를 조금씩 수정했다. 그는 그럼으로써 개인적 성향을 통치자로서의 균형감각과 공정성을 갖춘 공적 능력으로 키웠다. 그는 자신의 백지에 잘못 그은 것을 지우기도 하고 다시 그리기도 하며 옆으로 흘리면서도 빈 컵에 물을 따르고 있는 중인 것이다.

▼盧 스스로의 학습-포용력이 관건 ▼

중요한 것은 그 점이다. 아마 우리가 처음부터 채워져 있는 물잔을 택하고 완성된 그림을 골랐다면 얘기는 달라지지만, 사정이 그렇지 않은 한 우리는 그가 조심스레 물을 따르고 혹은 백지에 멋진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돕고 충고하고 격려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잔을 채우고 그림을 그리는 이는 누구보다 대통령 자신이며 그 성과는 그 자신의 진지한 학습과 신중한 판단, 적대적 공격까지 껴안을 포용의 능력에 달려 있다. 6개월의 연수기간을 지낸 그가 앞으로 어떤 통치자가 될 것인지, 준비된 대통령들이 겪어야 했던 임기 말의 치욕 대신 명예로운 전임자로 공적을 쌓을지는 이제부터 지켜보아야 할 일이다.

김병익 문학평론가·인하대 초빙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