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광수씨가 경기 이천시 신둔면 남정리 한도요의 전통가마 앞에서 자신의 작품을 들어보이고 있다. -이천=이재명기자
22일 오후 경기 이천시 신둔면 남정리 숲 속 외딴집에서 검은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요즘엔 좀처럼 보기 힘든 전통가마 앞에서 흰 수염이 인상적인 한도요(韓陶窯)의 서광수(徐光洙·56)씨가 소나무 장작을 지피며 마지막으로 가마의 온도를 점검하고 있었다.
초등학교를 갓 졸업한 1961년 도예에 입문에 42년간 한 길을 걸어온 서씨는 청자와 백자의 대가였던 고 지순택옹에게 사사한 이천 도예 ‘2세대’의 좌장이다.
6개의 가마에는 백자 달항아리 등 100여점의 작품이 있었다. 이 중 50여점은 9월 1일부터 두 달 동안 열리는 제2회 경기도 도자비엔날레에 출품할 작품.
이천지역에 밀집해 있는 350여개의 도자기 생산업체마다 축제 준비로 분주하다. 그러나 한도요에 대한 관심은 이 지역에서도 남다르다. 서씨는 이 지역뿐만 아니라 전국적으로 전통가마만을 고집하는 거의 유일한 도공이기 때문이다.
“요즘 대부분의 도자기 생산업체가 가스가마를 사용합니다. 온도를 자동으로 조절할 수 있어 모두 똑같은 모양으로 나오는 데다 표면이 깨끗하거든요. 돈벌이를 하려면 가스가마가 제격이지요.”
섭씨 1200도가 넘는 가마 앞에서 땀에 흠뻑 젖은 서씨는 연방 물을 들이켰다. 그가 전통가마를 고수하는 이유는 단순 명쾌했다.
“도공의 혼과 불의 혼이 합해져야 제대로 된 도자기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서씨는 나중에 자신의 이름으로 박물관을 지으면 전시할 작품이라며 ‘백자죽문호’ 한 점을 들어보였다. 하얀 자기에 대나무가 멋들어지게 그려져 있었다. 대나무 사이를 날아가는 두 마리의 새가 인상적이었다.
“새는 내가 그린 게 아닙니다. 원래 대나무만 그렸는데 불의 온도가 높았는지 물감이 흘러내렸지요. 그런데 꺼내 보니 대나무 사이에 새가 날고 있었어요.”
불의 혼을 믿는 서씨는 그래서 아무 문양이 없는 ‘무지백자’를 가장 좋아한다. 어머니의 젖 색깔인 유백색(乳白色)이 나와야 최고로 쳐 준다는 무지백자는 불의 온도가 가장 큰 관건이기 때문이다.
서씨는 지난해 문화관광부 장관 표창을 받았다. 경기도 으뜸이로도 선정됐다. 일본에서만 20여차례의 개인전을 열 정도로 국제적 명성도 대단하다. 그러나 아직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세속에 물든 작가는 흙을 속여도 흙은 나를 속이지 않는다”는 서씨는 24일 오후 가마에서 꺼낸 도자기 가운데 30여점을 깨 다시 흙으로 돌려보냈다.
이천=이재명기자 egij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