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6월 한 글쓰기 모임의 여름연수회에 연사로 참석한 이오덕씨. -사진제공 한국글쓰기연구회
25일 별세한 이오덕씨는 미리 준비해둔 유언장에서 “죽음을 밖에 알리지 말고 간소하게 장례를 치러 달라”고 가족들에게 당부했다. 임종 직전에도 “장례를 끝내놓고서 ‘즐겁게 갔다’고 사람들에게 알리라”고 다시 한 번 당부할 만큼 허례허식을 멀리했다.
그런 그가 평생에 걸쳐 바로 잡고자 했던 것은 외래어의 부자연스러운 표현에 젖어든 한국인의 언어생활과 현실생활에서 멀어진 채 지나치게 상상력에만 의존하는 아동문학의 허식이었다.
일제 강점이 막바지로 치닫던 1944년 교직에 투신한 그는 5공화국 말기 잘못된 교육행정을 지적하는 글을 썼다가 시달림을 당한 끝에 1986년 정든 학교를 떠나야 했다. 이미 남의 눈치를 보지 않는 소신으로 열여덟 차례나 학교를 옮겨 다니는 고생을 한 뒤였다.
교직을 떠난 후 그는 95년 내놓은 3권짜리 ‘우리글 바로쓰기’ 등 저술과 강연을 통해 바른 우리말 지키기 운동에 몰두했다. 그는 우리말과 글이 일본어와 서양언어의 직역투에 크게 오염돼 있다고 비판했다. 일본어 직역투인 ‘∼적(的)’을 적당한 우리말 표현으로 바꾸고 ‘이미’ 대신 ‘벌써’를, ‘전혀’ 대신 ‘도무지’를 사용할 것을 주장하는 등 실제 삶에 바탕을 둔 우리말 표현을 살려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1971년 동아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아동문학가로 등단한 그는 ‘머리로 쓴 글’과 ‘가슴으로 쓴 글’의 차이를 한결같이 강조했다.
“아동문학작가는 책상머리에서 상상만으로 글을 쓸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자연과 벗하고 일하는 어린이들의 삶을 그려내야 한다”고 강조한 것.
특히 그는 교사생활 중 접한 어린이들의 꾸밈없는 글을 자연스러운 글쓰기의 모범으로 보아 ‘일하는 아이들’ ‘우리집 토끼’ 등 아이들이 쓴 글로 여러 권의 동시집, 동화집을 엮어내기도 했다.
1965년 첫 책을 발간한 이래 고인이 집필 혹은 책임 편집해 내놓은 책은 모두 53권. 90년대 중반부터 신장염으로 투병생활을 해온 그는 99년 충북의 농촌마을로 거처를 옮겨 자연과 함께 하는 삶을 실천해 왔다.
투병 중에도 ‘문학의 길 교육의 길’ ‘어린이책 이야기’를 한꺼번에 출간했으며 2002년 은관문화훈장을 받았다.
유윤종기자 gustav@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