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지역에서 산지 습지가 잇따라 발견되면서 습지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한층 높아졌다. 산지 습지는 풍화작용과 홍수 등에 의해 생성되고 그 밑바닥에는 미세한 수로가 많아 항상 일정량의 수분 또는 물이 고여 있다. 샘의 물은 늪의 물골을 따라 낮은 지역으로 흘러가기 때문에 늪이 끝나는 지점에서 바로 계곡이 시작되기도 한다.
그동안 필자를 비롯한 습지보전 운동가들은 경남 양산시의 천성산 자락과 신불산, 산청군 둔철산 등의 습지를 조사했다. 천성산의 경우 화엄늪, 밀밭늪을 비롯해 20여개의 늪이 산재해 있다. 천성산 고층 습지의 생태계는 특이한 지형뿐 아니라 특수한 환경에 적응한 다양한 생물들이 살고 있어 보호 가치가 높은 지역이다. 보호 야생식물인 솔나리와 특정 야생식물인 설앵초, 끈끈이주걱, 미치광이풀 등이 있고 멸종 위기인 삵과 황조롱이, 참매 같은 천연기념물도 계속 발견되고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경남 지역의 산지 습지들은 각종 개발사업에 따라 사라질 위기에 놓여 있다. 얼마 전 신불산 자락인 양산시 원동면 일대에서 10곳의 습지가 발견됐다. 이 지역은 2005년 상반기 준공 예정인 골프장 부지다. 6000평 규모의 습지는 환경부 지정 멸종위기 및 보호 야생동식물도 다수 발견되는 등 국내에서 원형이 가장 잘 보전됐다는 평가를 받는 곳이다. 그러나 골프장 공사가 계속될 경우 습지가 서서히 말라 희귀 동식물은 자취를 감출 가능성이 크다.
이와 관련해 지역 시민, 환경단체들은 골프장 공사를 중단시키기 위해 공사중지 가처분 신청을 낸 데 이어 공익소송도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다소 늦은 감이 있지만 환경부 연구진과 지역 환경단체 관계자를 참여시킨 가운데 생태계 조사도 진행될 계획이라고 한다.
신불산뿐 아니라 경남도가 직접 골프장 건설을 계획한 둔철산의 습지도 엄격한 보호대책이 마련돼야 한다. 둔철 습지는 꼬마잠자리의 최대 서식지로 평가된다.
습지보전을 위한 국제협약인 ‘람사협약’에 따라 마산창원 환경연합은 1997년 대암산 용늪을, 이듬해엔 오랫동안 주민들을 설득하며 보전운동을 벌여온 창녕군 우포늪을 각각 ‘람사습지’로 등록한 바 있다. 그러나 이 2개 습지가 국제적인 자연유산으로 등록된 지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습지보전 정책은 별로 달라진 것이 없다.
더욱 한심한 것은 양산 지역의 산지 습지가 경부고속철도의 통과 구간으로 계획되면서 심각한 위기에 처해 있다는 사실이다. 환경부에서 보전지역으로 지정한 곳을, 정부의 다른 부처인 건설교통부는 파괴하겠다는 발상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경남도는 2008년 국제습지보전회의인 ‘람사회의’의 개최 의사를 정부에 밝혀 둔 상태다. 국제적으로 보호되고 있는 우포늪과 많은 산지 습지, 남해안의 갯벌 등이 산재한 경남에서 람사회의를 유치하자는 환경단체의 요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우선 환경부와 지방정부는 새로 발견되는 귀중한 자연유산인 산지 습지는 물론, 이미 확인된 습지를 보전하는 데 발 벗고 나서야 한다. 이 귀중한 자연유산을 보호 복원하는 노력을 도외시하고서야 무슨 면목으로 세계인들을 불러들일 것인가.
이인식 경남환경운동연합 상임의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