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기
일제강점기 순사의 모습은 공포 그 자체였다. 번쩍번쩍하는 금테 모자를 쓰고, 제복 옆구리에 긴 칼을 찬 위압적인 모습은 반세기 넘는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필자의 기억에 두려움으로 남아 있다. 어린 아이가 큰 소리로 울어대면 어른들은 “저기 순사가 온다”고 말하며 울음을 그치게 만들던 시절이었다. 아무런 잘못도 없이 소처럼 살아가는 순박한 농촌 사람들에게 주재소 순사는 언제나 무섭고도 두려운 경계의 대상이었다.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경찰의 모습은 많이 바뀌었다. 그렇다 해도 어렸을 적 뇌리에 각인된 잔인한 순사의 모습 때문인지 파출소나 경찰관은 친할 수 없는 존재였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최근 필자는 경찰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게 되는 일을 경험했다.
서울 남산 부근의 ‘문학의 집’에서 문학광장 행사를 마치고 퇴계로파출소 앞을 지날 때였다. 파출소 앞 테이블 위에 구두약과 구둣솔이 놓여 있었다. 이상하다 싶어 다시 살펴보니 ‘시민 누구나 사용하세요’ ‘우리 파출소는 시민을 위하여 화장실을 개방하고 있습니다’ 등의 표지판이 붙어 있었다. 마침 화장실을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에 파출소 안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더니, 경찰관 한 분이 친절하게 화장실 위치를 안내해주었다. 과거와는 사뭇 달라진 모습을 보면서 기분이 좋아졌다. 뿌듯한 마음으로 파출소를 나오다 보니 ‘안내 도우미 벨’까지 설치돼 있었다. 파출소 입구에 붙은 ‘함께 하는 치안, 편안한 사회’라는 문구에 한층 믿음이 갔다. 이처럼 ‘퇴계로 파출소’ 관계자들의 친절한 태도를 접하며 파출소가 서민 곁에 한층 가까이 와 있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그 때문인지 퇴계로가 한층 정겹게 느껴지고, 남산은 더욱 푸른 느낌이었다.
어느 틈엔가 우리 경찰은 일제강점기의 무서운 순사에서 서민을 친절하게 배려하는 이웃 같은 존재로 탈바꿈하고 있었다. 전국의 모든 경찰관이 국민을 위한 파수꾼으로 자리매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이재기 ‘한국아동문학연구회’ 인천 지회장
인천 남동구 구월3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