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들의 이름을 줄줄 외우는 아이에게 우리나라의 신화나 신화 속 주인공 이름을 물어보면 멀뚱멀뚱 쳐다보다 마는 경우가 있다. 대답을 한다 해도 ‘단군’이나 ‘주몽’ 이야기 같은 건국신화를 알고 있는 것이 전부다. 몇 해 전부터 아이들 사이에 유행처럼 번지고 있는 그리스 로마 신화 열풍이 아직도 가시지 않은 때에 우리 민족의 정서와 문화가 녹아 있는 우리나라의 신화를 정리한 책이 나와 우선 반가운 마음이다.
책의 첫 머리에 신화의 정의를 “세계와 인간, 문화의 기원을 말함으로써, 현재와 같은 세계가 존재하게 된 근거를 제시하고, 사람들에게 살아가는 모델을 제공하는 신성한 이야기”라고 밝혔듯이 처음 부분에서는 세상이 생겨난 이야기인 ‘창세신화’를 그 다음에 사람이 생겨난 이야기를, 마지막에는 다른 책에서는 보기 힘들었던 문화가 만들어진 이야기를 싣고 있다.
단군 신화에 나오는 환웅의 아버지 환인이 이 세상의 모든 것을 만들고, 인간의 조상으로 ‘나반’과 ‘아만’이 나와 이들 자손의 수가 불어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홍인종, 남인종으로 나뉘었다는 이야기는 단군을 최고의 신으로 삼는 천도교의 경전 ‘삼일신고’에 전해지는 이야기다. 우리 민족이 세상을 창시한 환인의 직계손임을 암시하는 이 이야기를 보면, 그동안 그리스 로마 신화만이 유일한 것으로 알고 있던 아이들이 우리 것의 소중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또 옥황상제의 아들 문도령과 자청비 이야기를 보면 농사와 가축을 돌보는 신들이 생겨난 유래뿐만 아니라, 아직도 불교에서 중요한 행사의 하나로 행해지고 있는 백중놀이의 유래와 우리 고유의 혼인 풍속을 알 수 있다.
이처럼 널리 알려져 있던 이야기는 우리가 알지 못하던 앞뒤의 내용을 더 보태고,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이야기들도 출전과 함께 소개하고 있어 기존에 나와 있는 초등학생 대상의 흥미 위주의 글과는 차별을 두었다.
책 표지에는 작은 글씨로 ‘초등학생을 위한, 제대로 읽는 우리신화’라는 부제가 씌어 있다. 그러나 신화에 특별히 관심이 많아 좀 더 깊이 알고 싶어하는 초등학교 고학년이라면 모를까, 이 책의 독자층이 평범한 초등학생이기를 바라는 것은 무리라는 생각이 든다. 이야기마다 출전과 해설을 덧붙인 것은 배움을 즐기는 어린이에게 고마운 일일 수 있으나 ‘생각해 봅시다’에서 아이들에게 주는 생각거리들은 신화의 생명인 ‘상상력’을 오히려 제한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우려 때문이다.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자리에서 느끼는 작은 트집일 수 있고, 노파심일 수도 있지만. 오혜경 주부·서울 금천구 시흥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