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경제연구원을 이끄는 주역들이 월요 주례회의를 마치고 한자리에 모였다. 왼쪽 뒤부터 시계방향으로 추일성 기획관리실장, 최병현 이지평 홍정기 이춘근 김기승 신민영 박팔현 조용수 연구위원, 홍덕표 선임연구위원, 김주형 상무, 이윤호 원장, 오문석 상무, 이승일 선임연구위원. 원대연기자
《올 4월 23일 ‘책의 날’을 맞아 청와대는 노무현(盧武鉉) 대통령이 정독하고 있는 몇 권의 책을 소개했다. 그중 하나가 LG경제연구원이 3월에 내놓은 ‘한국 경제 이렇게 바꾸자’라는 제목의 단행본이었다. 이 책은 성장 한계에 직면한 한국 경제를 한 단계 끌어 올리려면 ‘혁신 주도형 경제’로 전환해야 한다는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올해 초 새 정부가 출범하자 국책 및 민간 경제연구소들은 앞 다퉈 정책 제언을 담은 책자를 발간했다. 하지만 유독 LG의 책자가 노 대통령의 눈길을 잡은 이유는 무엇일까. 한마디로 LG의 ‘한 발 앞선 정확한 진단’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평이다.
LG는 올 4월에 이미 ‘올해 성장률 3%대 추락’을 공식 전망했다. 당시 다른 연구소들은 대부분 4∼5%대 전망에 머물고 있을 때였다. 외환위기가 발생하기 직전인 1997년 7월에도 LG는 ‘한국의 위기 가능성 진단’ 보고서에서 “외채로 인해 외환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했었다. 2001년 초에는 ‘가계 부실화 진단과 파급효과 분석’ 보고서에서 소비를 억지로 부추겨서 경기를 부양하면 가계부실과 신용불량 등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오문석(吳文碩) 상무는 “국책 연구소는 이런 저런 이유로 쉽게 얘기하기 어렵지만 민간 연구소는 상대적으로 부담이 없기 때문에 자유롭게 말할 수 있었다”며 겸손해했다.》
▽미래를 준비한다=LG경제연구원이 컨설팅 사업을 시작한 것은 1989년. ‘토종’ 컨설팅 펌이 거의 없던 시절이다. 남보다 먼저 시작한 덕분에 LG경제연구원은 현재 ‘컨설팅 사관학교’로 불리기도 한다. 국내 주요 컨설팅회사에는 LG 출신의 시니어급 컨설턴트들이 포진, 국내 컨설팅 업계를 이끌고 있다.
이승일(李承一) 경영컨설팅2센터장은 “일부 컨설팅 펌처럼 외국 사례를 그대로 베껴다 국내 현실에 맞추는 게 아니라 독창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설명했다.
LG는 94년 고객만족 경영과 리엔지니어링, 벤치마킹 등의 기법을 담은 ‘21세기 신경영 조류’라는 책자를 발간해 경영자들에게 큰 호응을 얻었다. 이 책이 소개한 경영기법들은 당시 세계 경영 현장과 학계에서 각광받는 최신 기법이었다.
이후에도 국내 기업들의 경영 혁신 노력을 평가한 ‘한국기업의 경영 현주소’와 초우량 기업들의 숨겨진 경영 혁신 비법을 소개한 ‘월드 베스트 프랙티스 33’을 연이어 내놓았다. 이 책자들은 당시 국내 기업들의 경영 혁신 교과서로 쓰였다고 연구소는 소개했다.
올해 3월 1일 재계 서열 2위인 LG그룹은 국내 최초의 지주회사인 ㈜LG를 출범시켰다. 이 과정에서 LG경제연구원은 그룹 구조조정본부와 손발을 맞춰 자회사의 역량 조사, 지주회사 체제의 방향성 제시 등 주요 과제를 완벽하게 소화해냈다. LG그룹의 변신에 결정적 기여를 한 셈이다.
LG의 지주회사 변신 6개월에 대한 해외의 반응도 긍정적이다. 영국의 파이낸셜 타임스는 LG그룹의 변화를 ‘한국 기업 구조조정의 모범 사례’라고 평가했다. 최근에는 베트남의 고위 경제 관료들이 서울 여의도에 있는 LG트윈타워를 방문해 베트남 국유기업의 개혁 방향에 대해 한 수 가르침을 청하기도 했다.
LG가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한 것은 한국 기업사의 한 획을 긋는 사건이라는 게 재계의 평이다. 한국 기업의 고질적인 문제점 가운데 하나인 재벌의 문어발식 소유지배 구조를 탈피하는 출발점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삼성은 콜라, LG는 녹차=LG경제연구원은 삼성경제연구소와 함께 민간 경제연구소의 양대 산맥으로 꼽힌다. 이 때문에 좋으나 싫으나 두 연구소는 곧잘 비교를 당한다.
LG의 연구원들은 “삼성경제연구소와 비교할 때 LG의 경쟁력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받으면 “삼성은 ‘콜라’이고 LG는 ‘녹차’다”라고 답한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히트작인 ‘CEO 인포메이션’은 상당히 대중적이면서 그때그때 이슈가 되는 내용을 빠르게 지적하는 장점이 있다. 타이거 우즈가 혜성같이 등장하면 그의 골프 스타일을 경영 기법으로 연결시킨다. 박세리가 우승했을 때는 스포츠마케팅에 대한 보고서를 즉각 내놓았다. 독자들이 갈증을 느끼면 즉시 시원한 콜라를 내놓는 식이다.
이에 비해 LG의 대표작인 ‘주간경제’는 일반인들이 읽기엔 다소 어렵다. 쉽게 접근할 만한 내용도 간혹 끼어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난해하다는 평이다. 사소해 보이는 분석에도 거의 통계 분석 등 계량적 방법론을 쓴다. 마시는 순간에는 잘 모르지만 하나하나 쌓이면 몸에 이로운 녹차라는 게 LG측의 주장이다.
▽연구원을 이끄는 사람들=LG경제연구원을 이끌고 있는 이윤호(李允鎬) 원장은 제13회 행정고시를 수석으로 합격한 뒤 경제기획원에서 근무했다. 이 원장은 미국 위스콘신-매디슨대에서 경제학 박사를 딴 뒤 87년 LG경제연구원에 이사로 영입됐다. 93년 원장을 맡아 지금까지 10년째 장수하고 있어 ‘직업이 원장’이라는 소리를 듣고 있다. 김진표(金振杓) 재정경제부 장관과 박봉흠(朴奉欽) 기획예산처 장관이 행시 동기.
이 원장은 “민간 경제연구소는 기업에 실제 도움이 되는 실질적인 전략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는 지론을 갖고 있다. 민간 경제연구소로는 드물게 컨설팅 분야를 강화한 일도 그의 지론에서 나왔다. 이 원장의 연구소 운영원칙은 이론과 실무, 경제와 경영, 연구와 컨설팅 등의 조화다.
김주형(金柱亨) 상무는 금융부문을 총괄하고 있고, 오문석 상무는 일반 경제 연구를 맡고 있다.
조용수(趙庸秀) 경제분석팀장은 거시경제 동향 분석과 전망, 국가 발전 전략 연구를 책임지고 있다.
LG주간경제 편집위원을 맡고 있는 김기승(金基承) 연구위원은 대외 거래와 노동시장에 정통한 실물경제통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LG주간경제' 파워 ▼
LG경제연구원이 매주 펴내는 ‘LG주간경제’는 역사와 내공이 만만찮다.
우선 국내 출판계에 변변한 경제주간지 하나 없던 시절인 1989년 6월 첫 호를 냈다는 점이 그렇다. 내로라하는 국내 시사·경제주간지들보다 역사가 더 오래됐다.
최근호인 742호까지 14년간 명절 때 합본을 내는 것을 빼고는 단 한 번도 쉰 적이 없다. 다양한 분야의 연구원들이 경제와 경영 현장의 흐름을 깊이 있게 분석한 기사가 매주 6편씩 들어간다. 더욱이 연구원들에게 ‘기사 쓰는’ 일은 가욋일이다.
제작 과정은 일반 언론사처럼 일사불란하다. 매주 한 차례 편집회의를 거쳐 기사를 기획하고 분담한다. 큰 기획기사는 미리 순번이 정해져 있는 경우가 많지만 간혹 예상치 못한 ‘사건’이 발생하면 하루 이틀에 마감해야 하는 경우도 있다. 기사가 다 모이면 며칠 만에 편집과 디자인, 제작 과정을 거쳐 책으로 나온다.
창간 이후 그동안 제작 방식이나 내용에 많은 변화가 있었다. 초창기에는 타자기로 찍은 원고를 직원이 직접 인쇄소에 들고 갔다. 현장에서 손으로 기사를 수정해서 넘기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요즘은 원고를 모아 인터넷으로 보낸다.
내용도 초기에는 신문에 실린 경제기사를 소개하고 해설하는 수준에 그쳤지만 요즘은 그런 기사는 찾아볼 수 없다. 일반 잡지사로 치면 편집장격인 ‘편집위원’을 거친 연구원만 해도 10여명에 이를 정도로 관록이 붙었다.
김기승 편집위원은 “LG주간경제의 지향점은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라고 설명했다. 아카데미즘과 저널리즘의 중간 수준으로 깊이를 잃지 않으면서 독자에게 재미를 주고 싶다는 것이다.
‘깊이와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기 때문에 LG주간경제의 기사들은 신문기자들은 물론 대학 교수들도 단골로 인용한다. 한 번은 모 대학이 LG의 허락도 없이 관련 기사들을 경제 관련 교과서에 무단으로 전재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인터넷에 전문이 게재되면서 부수는 절반 수준으로 줄었지만 독자의 반응은 더욱 뜨거워졌다.
얼마 전 주식 배당에 관한 기사를 실었을 때는 “지주회사 체제로 변신한 LG그룹을 측면에서 지원하는 기사가 아니냐”는 독자들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그만큼 영향력 있는 매체로 성장했다는 증거다.
홍석민기자 sm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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