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꽉 막혀 차가 꼼짝도 못한다. 무거운 침묵이 짓누른다. 그런데도 다들 잘 참고 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차 한 대가 갓길을 질주하면서부터 상황은 급변한다. 비상등을 깜박이며 여기저기에서 차들이 대열을 벗어나기 시작한다. 민주시민으로서의 자존심도 중요하고 교양인으로서의 자제력도 필요하다. 그러나 정직하게 살다가 나만 손해를 본다면, 그것은 견딜 수 없는 일이다. ‘모두가 도둑’이라면, 특히 권력자가 그렇다면, 누가 법과 질서를 지키려 하겠는가.
▼앞뒤 재지 않는 원칙’ 아쉬워 ▼
많은 사람들이 ‘바보 노무현’을 좋아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가 거듭 ‘사지(死地) 출마’를 고집한 진짜 이유는 알 길이 없다. 지역감정의 벽을 넘어 참된 정치개혁의 밀알이 되기 위해 십자가를 졌다는 것은 정치적 수사(修辭)에 불과하고, 사실은 치밀하고 원대한 계산 아래 그런 ‘바보 행각’을 연출했을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원칙과 정도를 위해 몸을 던지는 사람도 있다는 기록을 남긴 것 자체만으로도 그 의미가 결코 작지 않다. 그만큼 우리 사회는 지금 어지럽고 혼탁한 것이다. 지난 대선 때 그를 지지했건 안 했건, 지금 현재 그를 좋아하건 안 하건, 바보도, 아니 바보이기 때문에 성공할 수 있다는 신화를 새로 창조했다는 사실만큼은 소중히 평가해주어야 한다.
더구나 그는 소위 말하는 ‘비주류’ 출신이다. 빈한한 가정에서 태어나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대통령 내외의 최종 학력을 두고 묘하게 웃음 짓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그들은 환경이 여의치 못해 평생을 무대 뒤의 그늘에서 살아가는 이 땅의 수많은 사람들을 기억해야 한다. 사람이면 다 똑같은 사람이지, 화려한 조명 받는 사람과 엑스트라로 자족해야 할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니다. ‘비주류 대통령’의 등장은 이런 왜곡된 사회구조에 통쾌한 일격을 날리고 있다. ‘돈 있고 사람 있느냐, 나도 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큰소리 한번 칠 수 있게 되었다. 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가.
따지고 보면 그는 그 누구도 갖지 못한 정치적 자산을 가지고 있다. 우리 사회가 법과 원칙에 따라 움직이도록 개혁하자는 데에 이의를 달 사람이 몇이나 될까.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이 대접받는 사회를 만들어 보자는 데에 반대할 사람이 몇이나 될까. 온 국민을 ‘노사모’ 회원으로 만들 수도 있을 정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노무현 대통령의 지지도가 낙제점을 맴돌고 있다. 우리 사회의 지형을 통째로 바꿔 놓을 수도 있는 천재일우(千載一遇)의 기회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하는 말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각성해야 한다. 또 그 주변 사람들은 책임을 통감해야 한다. 바보가 왜 바보인가. 앞뒤 재지 않고 바른 길을 가기 때문에 바보인 것이다. 바보라는 이유에서 대통령이 되었으면 바보답게 처신을 해야 한다. 개혁을 하자면서 칼끝을 남에게만 겨누면 그것은 바보가 하는 일이 아니다. 내가 먼저 채찍을 맞아야 바보다운 것이다. 그래야 ‘정의란 강자(强者)의 이익’이라는 잘못된 인식을 바꿀 수 있다. 국민소득 2만달러, 중요한 것이다. 그러나 법과 질서가 무너지고 사회의 기강이 흐트러진 곳에서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지금 ‘바보 노무현’은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안타까운 것이다.
▼정치적 자산 大義위해 사용해야 ▼
우리 국민의 절대 다수는 사회의 뒤안길에서 한숨을 쉬고 있다. 이들이 얼굴 펴고 살아갈 수 있게 해주어야 한다. ‘비주류 대통령’이 그런 일을 시작도 못하고 있다. 지금껏 한 일이 무엇인가. 역사를 바로 세우고 싶은가? 현재를 잘 다듬어 역사를 앞으로 밀고 나가는 것 이상으로 과거를 바로잡는 길이 또 있을까? 비주류의 손을 들어주느라 주류를 주저앉히는 데에 골몰하다 보면 모두가 패자가 되고 만다.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며 미래지향적인 정책을 펴야 모두가 승자가 된다.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구닥다리 패거리 싸움에 정신을 잃고 있는가.
그래서 하는 말이다. 이 시대가 그를 대통령으로 만들었던 의미를 깨달아야 한다. 대의(大義)를 위해 자신을 죽이는 거듭남이 있어야 한다. 무엇보다 역사 앞에 겸손해야 한다. 진짜 바보가 되려고 이러는 것인가.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