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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테크]부동산 공부 열기…대학강좌마다 전문직 지원자 몰려

입력 | 2003-08-27 16:40:00



회사원 김지영씨(27·여)는 6월 말 서울의 모 대학 부동산대학원 가을학기 모집에 원서를 냈다가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비록 석사과정이지만 김씨는 이 대학원이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교양 강좌쯤으로 생각했으나 50명 모집 정원에 4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몰려들었던 것.

높은 경쟁률뿐만이 아니었다. 입학 지원자의 직업군도 변호사에서부터 증권사 애널리스트, 은행원 등 전문직 일색이었다. 연령도 일반 기업 과장 부장 수준인 30대 후반∼40대 중반이 대부분. 김씨처럼 막연히 부동산에 대해 배우고 싶어 지원한 젊은이는 찾아볼 수 없었다. 김씨는 입학시험 면접을 보면서 다시 한번 낙담을 해야 했다. 영어 시험은 그럭저럭 통과했지만 부동산에 관한 전문 지식과 이력을 물어보는 인터뷰에서는 제대로 대답할 만한 질문이 하나도 없었다. 당연히 낙방.

그는 “부동산에 대해 사회적 관심이 높아 관련 지식을 쌓아볼까 하는 생각에 지원했는데 그토록 부동산 열기가 뜨거운 줄은 몰랐다”면서 “지원자도 고급 전문직이 많아 나 같은 아마추어는 명함도 못 내밀 지경이었다”고 당시 분위기를 전했다.

▽부동산, 직관에서 과학으로=건국대 부동산대학원 장순권 교학과장은 “2∼3년 전부터 부동산을 체계적으로 공부하려는 경향이 두드러지기 시작했다”면서 “매년 150명을 뽑는 입학시험에 수백명의 지원자가 몰려 평균경쟁률이 10 대 1에 달한다”고 설명했다.

부동산을 배우려는 열기는 다른 대학도 마찬가지. 최근 일반인을 대상으로 부동산강좌를 개설한 연세대는 이틀 만에 등록이 마감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부동산 전문가들은 이 같은 부동산 배우기 열기를 부동산 시장의 환경 변화에서 찾고 있다. 도시개발이 왕성했던 과거는 도시 확산 속도가 빨라 부동산을 사서 보유하기만 해도 값이 올랐지만 개발이 더뎌지면서 수요분석과 인구통계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 한다는 것.

부동산을 체계적으로 ‘연구’하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 이들이 부동산을 바라보는 시각은 과거와 전혀 다르다. 이들에게 부동산은 더 이상 경험과 직관, 감(感)의 대상이 아니다. 통계학과 컴퓨터로 무장하고 있는 것.

부동산이 논리와 분석을 요구하는 체계적 학문이라는 것은 이들이 배우는 학과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부동산 계량분석론, 금융론, 투자론, 재무관리론 등 대부분 실증적인 계량 과목이다. 특히 계량분석학은 경제학 전공자도 버거워하는 과목이지만 부동산을 배우려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 관문이다.

강남대 김영곤 교수는 “부동산 시장이 공급자 우선에서 수요자 중심으로 넘어오면서 수요층 분석을 위한 계량화된 기법이 중요해졌다”고 말했다.

▽외환위기가 계기= 부동산의 패러다임이 변하고 있는 것은 외환위기 이후 주먹구구식 투자 관행에 대해 반성이 일어나면서부터. 외환위기로 집값이 폭락하고 부동산 자산가치가 추락하면서 ‘사두면 오른다’는 부동산 불패신화는 허물어졌다. 부동산에 대한 막연한 기대 대신 철저한 가치분석과 사업성 분석이 필요해졌다.

당시 건설업체가 대거 부도를 맞으면서 퇴사한 젊은 직장인들은 이런 변화를 이끌어낸 주역이었다. 이들은 컴퓨터 통계 분석 기법을 활용해 수익 분석이나 사업성 분석틀을 만들었고 여기에 현장의 경험을 가미했다. 외환위기 이후 급격히 늘어난 컨설팅사는 대부분 이렇게 태동했다.

1998년부터 분양가가 자율화된 것도 부동산의 계량화를 앞당겼다. 분양가와 분양성은 반비례한다. 분양가가 높으면 사업이익은 높아지지만 분양률은 떨어진다.

반면 낮은 분양가는 분양은 잘되지만 사업이익이 감소한다. 분양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사업이익을 극대화하는 분양가 산정기법이 중요해진 것.

정보기술(IT)의 급성장도 부동산의 과학화에 큰 도움이 됐다. 리얼리치 부동산연구원 구본창 원장은 “IT의 보편화로 온라인 부동산 시세정보제공업체가 생겨나기 시작했고 비로소 통계 분석을 위한 데이터가 축적되기 시작했다”면서 “신뢰성 있는 데이터가 쌓이면서 정확한 분석이 가능하게 됐다”고 지적했다.

▽미래 집값 예측까지 가능=과학은 현상에 대한 인과적 설명과 함께 이를 토대로 미래를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부동산시세정보업체 부동산뱅크는 개별 아파트들의 1년 후 시세를 예측하는 ‘미래가격예측시스템’을 개발해 상용화에 들어갔다.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통계 데이터를 활용해 미래의 집값을 예측한 것은 이번이 처음. 실제로 이 시스템을 적용해 서울 강남구 대치동 우성2차 32평형을 93년부터 소급해 집값 추이를 확인한 결과 실제 매매가 변동률과 큰 차이가 없었다. 표본 100개 중 93개가 오차 범위 안에 있을 정도로 정확도도 높은 편.

양해근 팀장은 “아직까지 아파트 가격에 영향을 주는 조망권, 학군 등 환경변수와 신도시개발, 교통망 확충 등 정책변수들을 제대로 반영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면서 “충분한 데이터가 축적되면 정확성은 더 높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부동산 패러다임의 변화가 투자자들에게 미치는 영향도 클 것으로 보고 있다. 건국대 부동산학과 조주현 교수는 “향후 투자 패턴은 단기 매매를 통한 시세 차익형 투자에서 부동산 개발과 유지 관리를 통해 개발수익을 올리는 쪽으로 변해갈 것”이라면서 “부동산의 과학적 기법 도입은 이 때문에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