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0년 11월 기후변화협약 국제회의가 열린 네덜란드 헤이그 의사당 건물 앞에서 환경운동단체 회원들이 지구온난화를 방치할 경우 이곳까지 물에 잠길 수 있다는 것을 경고하는 상징적 행위로 모래주머니를 쌓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사진
지구환경이 악화일로를 걷고 있다는 어두운 전망은 환경학계의 정설이자 일반인의 상식. 이 같은 상식을 뒤엎는 책 ‘회의적 환경주의자’(에코리브르)가 최근 번역 소개돼 국내 환경 담론에 뜨거운 공방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미국 워싱턴포스트지가 “1962년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 이래 가장 의미 있는 연구”라고 평가한 이 책의 저자는 덴마크 국립환경연구소 소장이자 덴마크 오르후스대 정치학과 통계학 담당 교수인 비외른 롬보르다.
▽책 내용=통계학자인 롬보르는 유엔과 유엔 부속기구, 세계은행 등 전 세계의 통계자료를 근거로 “환경단체와 과학자들이 제기하는 환경 위기는 과장됐으며 인류의 환경은 경제가 발달함에 따라 오히려 개선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책은 대기오염, 수질오염, 쓰레기, 환경호르몬, 산성비, 생물 종 다양성, 지구 온난화 등 거의 모든 환경현안을 다루고 있다.
우선 앞으로 한 세대 안에 생물 종의 절반쯤을 잃을 것이라는 환경론자들의 주장에 대해 롬보르 교수는 “지난 50년간 멸종률은 0.7%에 불과했다”고 반박한다. 농업이 시작된 후 세계 삼림의 3분의 2가 줄었다고 하지만 실제로는 20%가 사라졌을 뿐이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이 수치는 변동이 없었다는 것. 열대우림은 매년 0.46%씩 사라지지만 이는 상업적 조림으로 상쇄 가능한 정도라고 롬보르 교수는 지적한다.
저자는 무엇보다도 잘못된 통계에 근거한 환경정책이 예산의 효율적 배분을 가로막고 있다고 문제를 제기한다. 예를 들어 미국에서 농약 때문에 암에 걸려 사망한 사람은 전체 암 사망자의 1% 정도. 농약 사용을 금지한다면 1년에 약 20명이 죽음을 피할 수 있지만 거기에 필요한 비용은 연간 최소 200억달러이며 가난한 사람들은 비싼 무농약 과일과 야채를 사먹지 못해 연간 2만6000명이 추가로 암에 걸려 죽는다는 것이 롬보르 교수의 계산법이다.
저자는 지구 온난화를 막기 위해 교토의정서를 수행하는 데 드는 1년 비용으로 개발도상국 전체에 깨끗한 물과 위생시설을 제공하면 200만명의 목숨을 살리고 5억명의 질병을 예방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외국 반응=2001년 5월 이 책이 영국 케임브리지대 출판부에서 나오자 과학자들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네이처’ 등 저명한 과학저널들을 통해 롬보르 교수의 주장을 반박하고 나섰다. 미국 스탠퍼드대 생물학과 스티븐 슈나이더 교수는 2002년 1월 미 과학 전문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에 기고한 논문에서 “롬보르 교수가 자신의 낙관적 전망을 지지하는 수치만 인용하고 있고 환경과 관련된 전문적인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해 해석상의 오류를 범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세계자원기구의 알렌 해몬드 박사는 2002년 1월 영국의 이코노미스트지에 기고한 글에서 “롬보르 교수의 낙관적 견해는 옳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선진국에만 해당하는 논리”라고 지적했다.
▽국내 반응=이 책의 공동역자인 홍욱희 세민연구소장(환경학박사·새만금사업 민간공동위원회 위원)은 “그간 시민단체는 환경문제를 생태의 관점, 즉 자연을 위해서만 환경이 존재해야 하는 것처럼 생각해 왔는데 이제는 환경을 인간의 관점에서도 바라봐야 한다”고 말했다. 국토연구원 국토계획 환경연구실 김선희 박사(환경공학)도 “환경운동단체들이 무조건 과학기술을 환경오염의 주범이라고 모는 비과학성을 되돌아보게 하는 저작”이라고 평가했다.
한편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의 윤서성 원장은 “롬보르 교수의 낙관론은 환경정책이 선진화된 덴마크에서는 통할지 몰라도 우리나라에서는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고 말했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