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사 부설 21세기평화재단·평화연구소와 미국의 국제한국학회(ICKS)가 공동으로 주최한 한미동맹 5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 참석자들이 22일 미국 워싱턴 근교 셰러턴내셔널호텔 행사장에서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 대사의 기조 연설을 경청하고 있다.
《동아일보사 부설 21세기평화재단·평화연구소와 미국의 국제한국학회(ICKS)가 공동으로 주최한 한미동맹 50주년 기념 국제학술회의가 22일부터 24일(현지시간)까지 사흘간 미국 워싱턴 근교 셰러턴내셔널호텔에서 열렸다. ‘한미동맹 반세기:유지와 변화’를 주제로 한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와 재미 한국인 학자 등 30여명이 외교안보 경제 사회 등 5개 분과로 나눠 주제발표와 토론을 벌였다. 베이징(北京) 6자회담을 앞두고 열린 이번 회의에서 참석자들은 6자회담에 대한 전망과 함께 해법을 제시하고 한국 정부에 대한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기조연설▼
▽도널드 그레그 전 주한 미대사=한미동맹은 현재 심각한 긴장관계에 놓여 있다. 한국은 시시각각 변모하고 있으며 한국 젊은 세대들의 기억 속에는 6·25전쟁의 악몽이 존재하지 않는다. 미 행정부는 이러한 변화에 적응하지 못하고 있으며 행정부 내에서 대북정책에 대한 심각한 의견 분열 양상을 드러내고 있다.
바람직한 한미동맹을 위해 미국은 첫째, 한반도 관련 모든 의제들에 대해 한목소리를 내야 한다. 둘째, 미국과는 달리 한반도 주변국가들은 북한을 단순히 대량살상무기를 확산시키는 위협적인 국가로만 보지 않는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셋째, 북한에 대한 무력 사용 및 관련 의제들을 모두 한국정부와 상의해 나가야 한다. 한국정부도 미국과의 동맹을 당연히 주어진 것으로 안이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또 주한미군 재편이 한국과의 동맹을 약화시키려는 의도라고 오해해서도 안 된다.
▽김학준(金學俊) 동아일보 사장=한미동맹은 국제냉전구도 속에서 북한이 공동의 적이라는 인식아래 출발했고 유지됐다. 그런데 냉전이 끝난 이후 남한사회에는 북한이 공동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남한의 협력자일 수 있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동맹의 기반이 약화됐다. 북한을 선제공격할 수 있다는 조지 W부시 행정부의 강경책은 그러한 인식을 공유한 세력들의 저항을 불러일으켰다. 북한은 이 상황을 한미 이간에 활용했다. 쌍방으로부터 이러한 요인들이 겹치면서 한미동맹은 심각한 위기에 접어들었는데 이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두 나라는 동맹의 건강성을 복원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 남한에서는 과격한 폭력적 반미운동을 자제해야 하고 부시 행정부는 한반도 문제를 반드시 평화적으로 해결하겠다는 점을 한국을 비롯한 관련국들의 정부와 합의해야 한다.
▼외교 안보 분야▼
‘한미동맹의 전략적 외교적 의미’를 주제로 열린 제1, 2분과에서 참석자들은 한미관계와 관련해 우려할 정도의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고 진단하고 상호 이해와 교류를 통한 관계 회복을 촉구했다. 사회는 김일평(金一平) 코네티컷대 명예교수와 제인 제시크 유니언칼리지 교수가 맡았다.
주제 발표에 나선 래리 닉시 미 의회조사국(CRS) 연구원은 “미국의 주한미군 재편 조치는 군사, 정치적 측면에서 합리적이다”고 주장했다.
닉시 연구원은 “그러나 계획을 발표하는 과정에서 일부 미 국방부 인사들의 처신은 마치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지난해 한국에서 일어난 반미시위와 김대중(金大中) 전 정부의 햇볕정책에 대한 반감 및 이에 대한 응징 차원에서 주한미군을 재편하는 듯한 인상을 줬다”고 비판했다.
빅터 차 조지타운대 교수는 “베이징(北京) 6자회담에서 한국은 10여년 만에 처음으로 한반도 비핵화 문제에 관한 국제회담의 정식 참가국이 됐지만 보다 중요한 국제사회의 움직임에서는 제외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차 교수는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에 따라 올 가을 태평양과 대서양에서 대량살상무기 수송 등을 추적하고 이를 중단시키는 훈련을 할 예정이지만 한국은 이런 움직임에서 제외돼 있다”고 덧붙였다.
그는 “노무현(盧武鉉) 정부도 이런 움직임에 동참할 경우 북한을 자극해 북한과의 화해정책에 금이 갈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며 “그러나 한국 정부는 북한과의 대화와 PSI 동참이라는 두 가지가 양립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지하고, PSI 회원국이 되는 방안도 강구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길영환(吉榮煥) 아이오와대 교수는 “베이징 6자회담은 앞으로 한미관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라며 “한미 양국의 대북정책은 국내 정세(2004년 4월 한국 총선과 2004년 11월 미 대선)에 따라 중대한 영향을 받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토머스 로빈슨 아시아리서치엔터프라이즈 소장은 북핵 문제에 대한 중국의 입장을 분석하면서 “중국은 북한의 정권 유지를 지지하면서 동시에 한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중국은 한국 일본 대만의 핵무기 개발을 막으면서 한미일 등과 밀접한 경제 교류도 지속해야 한다는 입장”이라며 “중국 정부는 이러한 여러 목표 가운데 우선순위를 어떻게 결정하고 어떤 정책을 통해 목표를 실현시켜야 할 것인지를 놓고 깊은 딜레마에 빠져 있다”고 진단했다.
김홍락(金鴻洛) 웨스트버지니아대 교수는 “북핵 문제와 관련해 일본은 미국과 긴밀하게 협조해 어떤 일이 있어도 북한의 핵무기 개발을 막을 것이며 이를 위해 경제제재도 불사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김 교수는 “북한의 예측불가능한 행동은 일본 내 대북 강경파들에게 힘을 실어주고 있으며, 북한이 핵을 포기하기 전까지 북-일 외교 정상화는 이뤄지지 않을 것”이라면서 “일본은 외교관계 정상화 이전까지 북한에 대한 경제지원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페기 메이어 사이먼 프레이저대 교수는 “지금까지 러시아는 북한 및 다른 불량국가들과 유화적인 관계를 유지하면서 동시에 미 행정부와도 돈독한 관계를 추구해 왔다”면서 “하지만 6자회담에서 러시아는 매우 어색한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며 보다 분명한 태도를 취하도록 요구받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경제 분야▼
한미동맹 관계를 경제적 측면에서 접근한 제3, 4분과에서 참석자들은 두 나라의 물적, 인적 자원이 떼려야 뗄 수 없을 정도로 밀접하게 연결돼 있다고 지적했다. 미국으로의 한국 두뇌 유출, 대북 식량지원 문제 등에 대해서도 논의했다. 피터 벡 미 한국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과 이항열(李恒悅) 셰퍼드대 교수가 각각 사회를 맡았다.
김선웅(金善雄) 위스콘신대 교수는 “한국의 교육환경, 불안정한 노동시장 때문에 인재들이 대거 미국으로 옮겨 두뇌유출 현상이 우려된다”고 진단했다. 김 교수는 “한미동맹 관계가 더 악화되면 미국의 투자가 점차 줄어들어 일자리 창출이 어려워지고 두뇌유출 현상은 심화될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한미동맹 관계가 악화될 경우 가장 피해를 보는 계층은 미국에 대해 비난의 목소리를 높인 한국의 젊은 세대가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김미경(金美景) 주한 미 대사관 전문위원은 최근 4년간 지역 농민과 시민단체의 활발한 참여 속에 북한에 감귤 등을 효율적으로 지원해온 제주도의 사례를 소개해 관심을 끌었다.
김 위원은 “미국정부도 대북 식량배급의 투명성을 높이고 식량 지원의 실질적인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미국 농민들과 지역 시민단체의 참여를 확대하고 식량지원에 대해 정치적인 의미를 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조영백 세인트존스대 교수는 “한 민족, 한 핏줄이라는 이념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잘못된 방향으로 변질돼서는 안 된다”며 “북한의 현 정권은 주민의 삶을 비참하게 만들었으며, 이 때문에 수많은 사람이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다.
백순(白栒) 미 노동부 노동통계국 선임 이코노미스트는 “한국의 경제성장에 크게 기여한 노동인력은 미국에서 과학기술, 경영 등의 교육을 받고 고국으로 돌아간 인재들이었다”며 “협력투자와 기술교류 등이 활발히 이뤄지는 국제사회에서 이들의 역할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며 한국의 경제발전을 위해 더 많은 인적교류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김연석(金煉錫) 킨대 교수는 “한미 경제동맹을 강화하기 위해 양국은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면서 “FTA가 체결되면 한미간 무역마찰이 줄어들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워싱턴=김정안기자 credo@donga.com
▼재미한인의 역할▼
‘한미동맹과 재미한인의 역할’을 주제로 열린 제5분과 참석자들은 재미한인들이 한반도 문제와 한미교류에 더욱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회는 워싱턴 소재 동서연구소 김휘국(金輝國) 소장이 맡았다.
발비나 황 헤리티지재단 아시아학센터 정책분석가는 “미국 정계에서 한인들의 위상은 아직 매우 미미하며 미 행정부의 한국 관련 정책에 대해 별다른 목소리를 내지 못해왔다”고 지적했다.
그는 “소수민족인 데다 언어장벽과 익숙하지 않은 정치 경험 등으로 인해 정치 참여를 꺼려왔기 때문”이라고 원인을 분석했다.
그는 “재미한인들은 여론과 표를 의식하는 백악관과 의회 등을 통해 한반도 관련 주제에 대해 지속적으로 의사 표명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윤식(朴允植) 조지워싱턴대 교수는 “한인 이민 1세대의 대다수는 언어장벽 등으로 인해 단순 소매업에 종사해 왔으며 한미관계에 별다른 영향력을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박 교수는 “최근 재미한인 2세들을 중심으로 기술 중심의 벤처, 금융서비스, 무역업 등 보다 도전적이고 창조적인 사업에 진출하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며 “이들이 앞으로 한미 경제교류의 가교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