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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욱 칼럼]KBS, 역사를 바로 보라

입력 | 2003-08-27 18:11:00


16일 방영된 KBS 1TV의 특별기획 ‘일제하 민족언론을 해부한다’는 사뭇 충격적이었다. 공영방송 KBS가 이토록 역사를 왜곡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에 경악을 금할 수 없었다. 그 프로그램은 일제 총독통치가 동아, 조선을 강제 폐간시킨 것을 정당화했기 때문이다.

그 프로는 1940년 당시 동아, 조선 등 민족지의 강제 폐간을 1942년 일본에서의 신문용지 부족에 의한 신문정비와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 양 꾸며 놓아 동아, 조선의 폐간 진상을 철저히 외면했다. 그뿐만 아니라 동아, 조선이 이에 고분고분 응한 것처럼 묘사한 것은 역사를 송두리째 왜곡한 것이다.

▼日帝 신문폐간 진상 철저히 외면 ▼

일본은 1942년 아사히, 마이니치, 요미우리 등 큰 신문들만 남겨두고 주가이쇼교신문과 고교신문을 합병해 니혼게이자이신문을 만들고 지방의 군소 신문들을 통폐합했다. 신문용지 부족이 극심했기 때문에 그런 신문정비가 불가피했던 것이다.

그런데 동아, 조선이 강제 폐간된 1940년은 전쟁 발발 2년 전이어서 용지 부족이 심하지 않았다. 일본에서는 용지배급 같은 것이 없었고 한국에서만 민족지 탄압용으로 배급 통제를 강행했다. 동아, 조선을 강제 폐간하고 한국어 신문이라고는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만 남겨 놓은 것을 일본에서의 신문정비와 비슷하게 본 KBS의 시각은 이만저만한 역사왜곡이 아니다.

KBS의 프로그램이 역사를 정당하게 묘사하지 않았다고 보는 또 다른 이유는 동아, 조선의 폐간 진상을 철두철미하게 외면한 데에 있다. 민족언론 탄압이 1938년부터 검토됐다는 것만은 정확하다. 백관수 동아일보 사장이 총독부 경무국장의 폐간 요구를 거부한 1938년부터 폐간 압박이 본격화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KBS의 내용과 달리 신문용지 배급은 일본보다 한국에서 2년 먼저 강행됐고, 1940년에 접어들어 총독부는 아예 동아, 조선에 용지 배급을 중단했다. 그런 가운데 신문을 계속 찍으려니 암시장에서 용지를 구입하지 않을 수 없었고, 그것이 빌미가 돼 동아의 김승문 영업국장 등 사원들이 경제사범으로 구속되는 등 폐간 탄압은 막바지로 치달았다. 그런 속에서도 동아, 조선이 신문을 계속 찍어내니 경무국은 동아의 중요 주주들을 이현령비현령식으로 종로경찰서에 가두고 그곳에서 강제로 주주총회를 열게 해 폐간결의안에 찬성할 것을 강요했다. 마침내 동아일보는 창간 20년을 일기로 발행을 중지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KBS는 동아가 안간힘을 다하다 쓰러진 처참한 모습을 외면한 채 2년 뒤 이뤄진 신문용지 부족에 따른 일본의 신문정비에 비겨 편집했다. 이는 총독통치의 잔학상을 오히려 미화한 것 아닌가.

그리고 그 프로는 동아, 조선의 폐간사 내용이 담담한 데 놀란 척하면서 진짜 민족지라면 억울한 최후를 슬퍼해야 했을 텐데 그렇지 못함을 냉소조로 묘사했다. 도대체 동아일보가 폐간되던 그날, 그 임종을 지켜보면서 울지 않은 동아일보 사원이 단 한 명이라도 있을 수 있단 말인가. 나는 지금도 당시 폐간사를 통해 울면서도 눈물 흘릴 자유까지 빼앗긴 시대와, 그래서 보이지 않는 눈물과 들리지 않는 통곡을 들을 수 있다.

▼ ‘불가피한 타협’만 확대해 보도 ▼

물론 민족지도 기업이다. 수지채산을 맞추지 못하면 쓰러져 민족의 소리를 대변하지 못했을 것 아닌가. 따라서 압수, 판매금지, 정간 등을 피하거나 최소화하려 노력하지 않을 수 없었다. 총독통치와 정면 대결한다는 것은 무모하므로 면종복배하면서 게릴라식으로라도 투쟁할 수밖에 없었던 게 사실이다.

따라서 일왕의 사진을 크게 싣지 않을 수 없었고, 전쟁 기사에서 일본군을 ‘아군’이라 칭하라는 총독부의 끈질긴 요구를 꺾지 못해 ‘황군’으로 타협하는 등 수모를 당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민족의 소리를 모기소리만큼이라도 대변하고자 할진대 불가피한 타협이었으며 부득이한 수모가 아닐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민족지들의 그러한 흠들을 가감 없이 지적하는 것마저 마다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지만 그러한 흠들을 견강부회하여 민족지를 친일지로 매도하는 것은 선의에 의한 것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

이동욱 언론인·전 동아일보 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