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 종전 선언을 한 지 4개월 가까이 지났지만 전쟁을 주도했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레어 영국 총리는 자국 내 여론의 거센 비난을 받고 있다. 이에 따라 승전과 함께 전쟁 지도자로 명성을 날리며 각각 재선과 3선을 노리던 두 지도자의 정치적 미래도 어두워지고 있다.》
▼부시…終戰뒤에도 희생자 속출▼
종전 선언 이후 이라크 주둔 미군 사망자 수가 전쟁 중 사망자 수를 넘어서자 뉴욕 타임스는 27일자 사설에서 “이라크전은 이제 실망의 정점에 이르렀다”고 선언했다.
뉴스위크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49%가 부시 대통령의 재선을 원하지 않는다고 답해 재선을 원하는 쪽(43%)을 처음으로 앞섰다. 이라크전 직후 75%까지 올랐던 정부 정책 지지도는 50%대로 뚝 떨어졌다.
비판 여론을 의식한 부시 대통령은 26일 “물러서지 않겠다”고 공세에 나섰다. 그는 이날 세인트루이스에서 열린 미국 재향군인회 제85차 연차총회 연설에서 “우리는 테러에 대해 계속 공세를 취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이는 이라크뿐 아니라 중동과 아프가니스탄에서 유혈사태가 계속 발생하는 데 따른 여론 악화를 막고 지지를 모으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워싱턴 포스트는 27일 분석했다. 앞서 25일 도널드 럼즈펠드 국방장관과 콘돌리자 라이스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도 테러전의 성과에 대해 ‘인내심’을 호소했다.
그러나 여론은 부시 대통령의 연설에 대해 ‘불충분하다’는 평가다. 민주당 대선후보 밥 그레이엄 플로리다주 상원의원은 “부시 대통령이 선거 캠페인성 수사(修辭)를 버리고 명쾌한 해법과 비전을 제시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여전히 반복되는 실수와 공허한 수사, 사탕발림뿐이었다”고 비난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지는 26일 “부시 대통령은 2004년 대선에서 유권자의 보복에 직면할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블레어, '켈리 청문회' 증인 출석 집권6년만에 최대위기▼
블레어 영국 총리는 무기 전문가 데이비드 켈리 박사 자살사건으로 총리직에 오른 지 6년 만에 최대의 정치적 위기를 맞고 있다.
블레어 총리는 28일 켈리 박사 자살진상규명위원회에 출석해 이라크 핵 보유 관련 정보를 과장했는지에 대해 증언할 예정이다. 그러나 위원회 조사 결과에 상관없이 이미 블레어 정부의 신뢰도가 치명타를 입었으며, 이에 따라 앞으로 각종 정책 수행이 어려워질 것으로 영국 언론은 내다봤다.
일간 텔레그래프지의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58%가 켈리 박사 자살사건으로 블레어 총리를 덜 신뢰하게 됐다고 응답했다. 67%는 이라크 정보와 관련해 정부에 속았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정부 신뢰도가 떨어지면서 블레어 정부가 추진해온 유로화 가입 문제는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텔레그래프는 “유로화 가입에 대한 국민투표는 생각조차 못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제프 훈 국방장관의 거취도 관심사. 영국 정가에서는 정부가 난국을 돌파하기 위해 훈 장관을 희생양으로 삼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위원회 조사가 끝나면 그가 사임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
그러나 총리의 오른팔격인 훈 장관이 사임하면 내각에 타격이 클 것으로 보여 블레어 총리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다. 블레어 총리는 대표적 스타 장관이던 로빈 쿡 전 외무장관과 클레어 쇼트 국제개발장관이 이라크전에 반대하면서 사임해 입지가 흔들린 바 있다.
곽민영기자 havefun@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