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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총리, 푸틴 대통령 뜻 꺾었다

입력 | 2003-08-27 18:55:00


“선거가 눈앞인데 화려한 청사진을 내 보여야지….”(대통령)

“아닙니다. 단기 성장보다는 차분한 구조개혁에 주력해야 합니다.”(총리)

선거를 의식해 국내총생산(GDP)을 2010년까지 지금의 2배로 늘리겠다는 ‘화끈한’ 공약을 내세웠던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뜻이 “당장은 힘들어도 개혁부터 해야 한다”는 미하일 카시야노프 총리의 소신에 꺾였다.

러시아 정부는 26일 다음달 의회에 제출할 내년도 예산안과 중장기 경제프로그램을 확정했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푸틴 대통령이 올해 연두교서에서 내건 ‘GDP 2배 증가’ 약속을 사실상 폐기했다는 점.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는 성장 위주의 정책을 펴 해마다 7% 이상의 경제성장을 계속해야 한다. 러시아 경제는 1999년 이후 매년 5∼10%씩 성장해 왔고 주요 수출품인 석유의 국제가격이 계속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는 등 여건은 나쁘지 않다.

그러나 카시야노프 총리는 무리한 성장을 자제하고 △독점 분야 개혁 △경제개방 확대 △외자유치 확대 △감세(減稅) △물가안정 △중소기업 지원 등 개혁과 내실 다지기에 주력키로 했다.

성장 일변도로 나가기 위해 경제체질 개선을 소홀히 하면 당장의 인플레뿐 아니라 2006년부터는 오히려 성장둔화나 경기후퇴를 겪을 것이라는 소신 때문이었다. 결국 푸틴 대통령의 공약은 목표연도가 2013년경으로 늦춰졌다.

러시아 언론은 “내년 대선 이후 경질 가능성까지 거론되고 있는 총리가 당장의 인기나 자리에 신경 쓰지 않고 차기 내각에 과실을 물려주려는 소신 있는 결정”이라고 찬사를 보냈다.

차르(옛 러시아 황제)에 비유되는 막강한 대통령제에서 더구나 강력한 카리스마를 갖고 있는 푸틴 대통령의 뜻을 거스르기는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12월 총선과 내년 초 대선을 앞둔 크렘린은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최대 경제일간지 코메르산트는 ‘GDP 2배 성장 연기, 성장 대신 개혁 택했다’는 1면 머리기사에서 굳은 표정의 푸틴 대통령 사진을 내보냈다. 반면 이즈베스티야는 자신의 소신을 관철한 후 활짝 웃는 카시야노프 총리의 사진을 실어 대조를 이뤘다.

러시아 정부가 26일 확정한 중장기 경제 성장 목표 주요 지표

 2000년2002년2003년2004년2006년2008년GDP성장(전년대비)(%)10.05.05.93.8∼5.24.5∼5.55.0∼6.5물가상승률 (%)20.215.110∼128∼105∼75∼7외국인직접투자($)44억40억65억71∼78억90∼110억100∼120억수출($)1050억1072억1249억1132∼1250억1120∼1360억1260∼1530억출처:러시아 경제개발통상부

모스크바=김기현특파원 kimkihy@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