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트렌드 생활정보 International edition 매체

[독자칼럼]최원두/흥겨움 사라진 화개장터

입력 | 2003-08-28 18:07:00

최원두


경기도 Y중학교 교사로 근무 중인 셋째 딸이 여름방학을 맞아 집에 왔었다. 대학 시절 취업 준비하느라 제대로 된 여행 한번 못해본 딸과 함께 고향에 있는 관광 유원지들을 둘러보았다. 여기저기를 진지하게 관찰하는 딸의 모습이 대견스러웠고, 우리 부녀는 오랜만에 허심탄회한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집으로 돌아오면서 딸은 “순천이 아닌 인근 시군 중에 특이한 곳을 더 가보고 싶다”고 했다. 생각 끝에 전남 구례와 경남 하동의 경계에서 한마을을 이루고 살면서 ‘화합’의 대명사처럼 돼 있는 화개장터를 구경하기로 했다.

하동군청에 전화를 걸어 화개장이 언제 열리는지 문의해 보니 매달 1일과 6일이라고 했다. 마침 날짜가 맞아 구례를 경유해 맑디맑은 섬진강변의 화개장터에 도착했다. 필자는 딸아이와 함께 가수 조영남씨의 히트곡 ‘화개장터’를 함께 부르며 한껏 기대가 부풀었다. 하지만 이상했다. 분명 장날은 장날인데 썰렁한 게 아닌가. 화개장터 상인들에게 물어보니 “장날은 맞는데 특별한 행사 같은 것은 없고 매번 이렇게 조용하다”고 했다.

우리 부녀는 실망스러웠다. 시골에서 장날이면 싸구려 옷을 비롯해 비린내 나는 바닷고기와 품바 엿장수, 시골 할머니가 가지고 나온 야채와 과일 등이 풍성했다. 더구나 화개장날이라면 양 도민들이 어우러져 구수한 사투리를 나누며 막걸리도 한 잔씩 주거니 받거니 할 것으로 기대했던 게 사실이다.

그러나 장터 어디를 둘러봐도 장날 기분은 들지 않았다. 상가에는 온통 관광 상품만 진열돼 있었고, 장날이면 흔히 볼 수 있는 팥죽 한 그릇 사먹을 곳도 없었다. 다행스러운 일은 낫이며 호미, 괭이, 문고리를 만드는 대장간이 남아 있다는 점이다. 우리는 호미와 낫 한 자루씩을 사고, 쇠를 녹여 호미를 만드는 대장간 아저씨의 손놀림을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이제라도 화개장이 시골 장날의 기능을 제대로 갖췄으면 한다. 조상의 얼이 담긴 전통 ‘화개장날’로 계승 발전시켜 그곳을 찾는 모든 사람들이 조영남씨의 노래비 앞에서 화개장터를 함께 부를 수 있는 국민의 장터로 거듭났으면 한다.

최원두 전남 순천시 서면 동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