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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칼럼]안영희/올해도 ‘恨가위’ 맞는 실향민들

입력 | 2003-08-29 17:56:00

안영희


얼마 전 새로 경의선이 연결되고 ‘도라산역(驛)이 신축됐다’는 소식을 접하고, 고향인 황해도 황주에 가는 마음으로 도라산역 일대를 둘러보고 왔다. 임진각역에 도착해 당국의 관할지역인 도라산전망대 출입 절차를 마친 뒤 역사를 빠져나와 도라산 산정(山頂) 전망대에 오르니 북쪽으로 뻗은 기찻길은 휴전선에 가로막혀 철조망 하늘 높이 뜬 구름만 북녘 땅을 넘나들고 있었다. 청명한 날씨에 북녘 산하가 환하게 펼쳐졌다. 그러나 더 이상 갈 수 없는 종착역이라고 생각하니 가슴이 아려 왔다. 전망대에서 멀리 서 있는 송악산을 바라보고 전망대를 내려왔다. 철길을 딛고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가 가져간 소주를 꺼내 한 모금 마시고 나머지를 철길에 부었다. 분단의 아픔과 실향의 서러움이 울컥 밀려왔다.

해마다 추석이나 설 등 명절이 다가오면 실향민의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무너져 내린다. 실향민의 고향은 가족의 사랑과 이웃간의 정든 삶이 깃든 추억 속의 공간이자 재회의 마당이다. 더구나 부모님을 뵙고 조상에게 차례와 성묘를 지내는 등 사람의 기본적인 도리를 못한다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 풀리지 않는 한(恨)이다. 북녘을 향해 망향제(望鄕祭)를 올리며 향수와 이산의 아픔을 달래 보지만,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은 조금도 줄어들지 않는다. ‘지척이 천리’라고 임진강 건너 고향 산천이 빤히 바라다보이는 곳에 서 있으면서도 꿈속에서나 고향에 가볼 수 있는 우리네 심사를 누가 알 것인가.

이제 나이가 들어 세상을 떠나는 실향민도 해마다 늘어나고 있다. 하지만 아직도 수많은 실향민이 고향을 그리워하며 죽기 전에 단 한 번만이라도 고향 땅을 밟고 가족을 찾아볼 수 있기를 눈물로 호소하고 있다. 지금까지 이산가족의 상봉이 서울과 평양에서, 금강산에서 여러 차례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는 하루 속히 상봉 행사의 인원과 횟수를 늘려 연로한 이산가족의 평생 한을 풀어 주었으면 한다. 다시 연결된 경의선을 통해 도라산역에서 개성 평양을 거쳐 신의주까지, 남과 북의 자유로운 왕래가 이뤄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안영희 유네스코 부산협회 국제분과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