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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인 참회록]정치꾼의 회한/유준상 前의원

입력 | 2003-08-29 18:38:00

김미옥기자


“정치꾼은 다음 선거만 생각하고, 정치가는 국민과 국가를 먼저 생각합니다. 돌이켜 본 내 의정활동 15년(4선)의 대부분은 ‘정치꾼’의 삶이었습니다.”

유준상(柳晙相·사진) 전 의원은 28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사에서 기자와 만나 ‘3김 정치의 앞잡이’ 역할을 했던 지난날의 회한을 토로했다. 그는 말미에 “정말 안타까운 것은 국회의사당을 떠난 뒤에야 내가 ‘정치꾼’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라고 후회했다. 그의 참회는 오후 9시부터 다음날 오전 1시반까지 무려 4시간반 동안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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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년 11대 총선 때 나는 전남 보성-고흥에서 호남지역 최연소인 만 39세의 나이로 당선됐다. 초선 때는 국정 현장과 지역구의 밑바닥을 신발이 닳도록 누비고 다녔다. 나의 이런 노력을 주민들이 외면하지 않아 85년 12대 총선에서 재선에 성공했다.

그러나 85년 신민당 김대중(金大中·DJ) 전 대통령 품으로 들어간 뒤부터 내 의정활동은 ‘DJ의, DJ에 의한, DJ만을 위한 것’이었다. 신민당 부총무였지만, 실질적으론 동교동계 총무였다. 동교동계 의원의 대정부질문 순서, 국회 상임위 배정을 도맡아 했다.

87년 대선 때 DJ의 유세위원장을 맡아 나는 대선 기간 내내 ‘DJ를 당선시켜 호남의 한을 풀자’고 외치고, 또 외쳤다. 돌이켜보면 마치 지역주의의 화신인 듯 행동했었다.

88년 13대 총선에서 쉽게 금배지를 달았다. DJ는 ‘충성스러운’ 나에게 ‘국회 경제과학위원장’이란 큰 선물을 내렸다. 46세에 불과했던 나는 온 세상이 눈 아래로 보였다. 여권 실세와 각 당 중진들이 ‘예산 민원’을 위해 아쉬운 소리를 했다. 물론 그 와중에도 DJ를 위해 김해 김씨 문중 예산 확보를 위한 앞잡이 노릇도 충실히 했다.

95년 DJ가 통합민주당을 깨고 새정치국민회의를 창당했을 때, 내 가족과 친구들은 ‘신당에 명분이 없다’며 합류하지 말 것을 권유했다. 그러나 ‘DJ를 따라가면 5선이 된다’는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그런 내가 96년 3월 15대 총선 공천에서 탈락하자, DJ에 대한 충성과 사랑은 순식간에 배신감과 증오로 변했다. ‘줄서고 눈치 보기’에 급급했던 나는 DJ에게 ‘내가 뭘 잘못했나. 지역구 관리를 못했나. 사실 (호남에서) 지역구 관리가 무슨 의미가 있느냐’고 따졌다. 초선 때 밤잠을 아껴가며 지역구를 챙겼던 내가 그렇게 변해 있었던 것이다.

내가 제정신이 아니니까, 내 추종자들도 당시 서울 여의도 63빌딩에서 열린 당 후원회에 뱀을 푸는 등 극한 행동을 벌였다. 지금도 ‘왜 그때 좀 더 이성적으로 행동하지 못했을까’하는 후회를 한다.

공천 탈락으로 세상이 끝난 것 같았다. 그래서 나는 민주당을 탈당하고 DJ와 결별했다.

2000년 16대 총선에서 서울 광진을 지역에 한나라당 후보로 나서자, 민주당에선 ‘호남과 DJ에 대한 배신자’라고 나를 욕하고, 한나라당 지지자들은 ‘유준상을 당선시켜 주면 DJ 곁으로 달아날 것’이라고 의심했다. 낙선할 수밖에 없었다. 3김의 지역주의 정치 덕분에 4선까지 한 나로선 ‘인과응보’란 생각이 들었다. 요즘 젊은 386세대 정치인들의 튀는 행동을 보면 마치 나 자신의 과거를 보는 것 같다. 결코 짧지 않은 의정활동 기간에 남을 헤아릴 줄 모르고 보스에 맹종하는 정치만 해온 게 너무도 부끄럽다.

‘정치는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는 평범한 진리를 깨닫는 데 나는 20년이나 걸렸다.”

부형권기자 bookum90@donga.com

▼유준상 前의원은…▼

전남 보성 출생(60세). 광주고와 고려대 경제학과(61학번)를 나왔다. 64년 고려대 총학생회장 직무대행을 지냈고, 80년 11월 김대중 내란음모사건에 연루됐다는 이유로 당국의 조사를 받기도 했다. 학교 다닐 때 별명은 ‘유 당수’.

11, 12대 총선 때는 민한당, 13대 때는 평민당, 14대 때는 통합민주당 후보로 각각 당선된 4선. 96년 15대 공천에서 탈락한 뒤 일본 와세다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에서 3년, 중국 베이징대에서 6개월간 동북아 경제 문제를 공부했다.

97년 12월 15대 대선 직전 한나라당에 입당해 98년부터 서울 광진을지구당 위원장을 맡고 있다. 16대 총선에서 민주당 추미애 의원에게 1만4369표 차로 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