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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자회담 평가]다자 틀짜기 성공…北 '核 공개선언' 변수

입력 | 2003-08-31 19:30:00


《사상 최초로 시도된 북핵 해결을 위한 베이징(北京) 6자회담이 지난달 29일 막을 내렸다. 당사국인 한국이나 회담을 주도한 중국 및 일본 러시아의 전문가들은 ‘일단 성공’이라고 평가했다. 반면 미국과 북한 전문가는 평가를 유보하거나 깎아내리는 등 해당 국가의 입장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였다.》

▼한국 황병무 국방대학원 교수▼

미국이 유연해졌고, 북한도 다자회담의 틀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회담을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이런 변화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북한을 ‘악의 축’이라고 했다가 김정일 국방위원장을 ‘미스터 김정일’로 부른 것만큼이나 의미 있는 변화다. 미국은 그동안 “북한과 대화는 가능해도, 협상은 없다”는 강경자세를 취했었다. 주변 국가에선 ‘북한의 대폭 양보 없이는 회담 자체가 어려울 것’이라는 시각이 존재했다.

일각에선 이라크전쟁의 후유증에 시달리는 미 공화당 정부가 전술적인 시간벌기 차원에서 부드럽게 나왔다는 분석도 하고 있긴 하다.

‘단계적 병행처리’라는 말도 해석에 따라 미국과 북한이 향후 협상과정에서 다른 목소리를 낼 소지가 있다. 북한은 핵 포기와 미국의 체제보장을 동시에 처리하자고 했고, 미국은 북한의 핵 포기가 우선이라고 말해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한과 미국의 입장이 동시에 표현된 것만으로도 큰 진전으로 해석된다. 미국은 그동안 이런 표현 자체를 있을 수 없는 일로 규정했다.

이런 성과는 중국의 적극적 역할로 인해 가능했다. 중국은 1993년 1차 북핵 위기 때는 당사국이 아니라며 조용한 막후역할로 스스로를 제한했다. 그러나 이번엔 장소제공, 셔틀외교를 통한 사전조정, 회담 도중 호스트 역할을 해냈다. 지금까지는 북핵 문제의 유엔 안보리 상정에 반대하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회담에 불참하는 등 미국 정책과 차이를 드러내왔다.

▼전현준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북한은 원래 북-미간 양자회담에 익숙해 있던 만큼 6자회담의 형식 자체에 불만이 많았던 것 같다.

따라서 2차 회담이 열릴 경우 6자회담의 틀 내에서 북-미간 양자회담에 보다 주력하는 방향으로 나올 가능성이 높다.

북한은 앞으로 북-미간 양자회담을 확실하게 보장받기 위해 6자회담 2차회담 개최 시기를 가급적 늦추는 지연전술을 구사할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향후 의제 문제에 대해서도 북한은 체제 보장과 핵무기 포기를 일괄 타결하는 방식을 선호할 것이다.

미국이 제시한 다단계 로드맵에 응할 경우 최종 합의까지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판단에서다.

북한이 6자회담 직후 회담 자체를 평가절하하는 것은 2차 회담에 앞서 미국 등으로부터 충분한 양보를 얻어내려는 일종의 압박전술이다.

미국의 빌 클린턴 정권 때 시작된 대북 경수로 사업은 현 부시 정권 하에서 계속되기는 힘들 것이다. 북측도 경수로 사업 대신 시베리아 가스전의 지원과 중국의 원유 공급 확대 등 대안을 적극 검토할 것이다.

결국 북한은 클린턴 정부 때 체결된 북-미간 제네바 합의 수정에 동의하고 새로운 합의의 틀을 찾기 시작할 것이다.

미국은 충분한 시간을 두고 북한을 압박하려 하겠지만 북한의 유일한 협상 마지노선은 김정일 정권의 보장에 맞춰져 있다.

미국이 어떤 형태로든지 김정일 정권을 보장하는 안전책을 내놓지 않을 경우 회담 전망이 불투명해질 것이다.

▼미국 케네스 퀴노네스 美국무부 前 북한 담당관▼

베이징 6자회담은 대체로 성공적이었다. 북한 핵 문제는 단기간에 평화적 외교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따라서 사흘 동안의 회담이 분열 양상을 보이면서 결렬되지 않고 회담의 틀을 유지한 것만으로도 성공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하지만 미국과 북한의 교착상태는 당분간 지속될 것이다. 북핵을 둘러싼 긴장이 금세 해결되지는 않을 것이란 뜻이다.

이번 회담의 성과는 당분간 북한과 미국의 긴장 악화를 막았다는 데 있다. 비록 양국의 불신이 해소된 것은 아니지만 성의 있는 외교적 대화를 할 정도의 분위기는 만들어졌다.

북한측은 항상 해오던 방식대로 “(미국이 안전보장을 제공하지 않으면) 핵 보유국임을 선언하고 핵 실험을 하겠다”는 발언을 되풀이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북한이 협상의 자세를 보였다는 것이다. 거꾸로 해석하면 북한은 미국이 공식적으로 안전보장을 하면 핵 프로그램을 폐기할 수 있다고 밝힌 셈이다. 이것은 북한이 핵 폐기에 대해 협상할 용의가 있음을 분명히 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발전이다.

양국의 강경파들이 생산적인 회담 분위기를 방해하려는 시도를 했지만 회담 참가자들이 크게 휘둘리지 않은 점도 평가할 만하다.

양국은 지난해 10월 북-미 교착상태가 시작된 이후 처음으로 대결이 아니라 평화적 외교적 해결이라는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갔다.

▼중국 스인훙(時殷弘) 중국 런민(人民)대 교수▼

당초 기대했던 것 이상의 성과를 거뒀다고 할 수 있다. 공동성명이 나오지 않은 점을 지적하며 부정적인 평가를 하는 시각도 없지 않지만 이는 북한 핵문제의 오랜 역사와 과정, 복잡성을 이해하지 못한 탓이다.

6개 참가국이 원칙적으로 한반도 비핵화에 동의했다는 점은 큰 소득이다. 또 한반도 비핵화 목표는 반드시 평화적 방식을 통해 실현해야 한다는 점에도 인식을 같이했다.

가장 중요한 성과는 이번 회담에서 북핵 위기 해결을 위한 기본적이면서도 구체적인 원칙에 대한 서로의 입장을 개진하고 의견을 주고받았다는 점이다.

북한과 미국의 현격한 입장 차이를 감안한다면 양자가 단계적으로 동시병행 방식에 의해 공정하고 합리적인 전반적 해결 방식을 모색한다는 데 원칙적으로 동의한 것은 핵문제 해결을 위한 실질적인 진전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북-미 양자간의 첨예한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회담이 진행되는 동안 상황을 악화시키는 언행을 하지 않기로 한 것도 주목할 만하다. 양자가 기꺼이 이런 노력을 한다면 후속 회담은 보다 좋은 분위기 속에서 실질적인 문제를 토론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중재 노력도 돋보였다. 외교적 설득을 통해 북한이 다자회담에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고, 회담 과정에서 북-미 양자가 서로의 생각을 확인할 수 있는 시간을 많이 가질 수 있도록 배려함으로써 회담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일본 스즈키 노리유키 라디오 프레스 이사▼

순조로운 출발이다. 각국이 기본 입장을 표명한 것과 함께 6자회담이라는 틀의 유지에 합의함으로써 당초 예상을 웃도는 성과를 올렸다.

의장 총괄 담화 형식이라고 하지만 핵문제의 평화적 해결, 한반도의 비핵화, 북한의 안전보장에 대한 배려, 상황을 더 악화시키는 언동의 자제에 합의했다.

이것으로 다자간 협의의 입구는 정리된 셈이다. 다음 회의부터는 출구까지의 길을 찾는 것이 과제인데 우선 회담의 룰을 만드는 것이 필수조건이다. 이는 회담이 계속되고 있는 기간에는 북한이 핵개발, 특히 플루토늄 추출을 동결하는 것과 미국이 불가침을 약속하는 것을 말한다. 이런 약속 없이 회담을 오래 끌면 북한의 핵개발이 진전돼 긴장이 고조된다.

북한이 한국 대표단에 미국의 진의에 대해 설명을 듣고자 한 장면이 있었는데 이는 6자가 집결한 회의의 이점을 보여준 상징적 에피소드이다. 북-미 양자간 협의였다면 오해를 한 채 끝났을지 모른다.

일본에 있어서도 이번 회담은 유익했다. 3회에 걸쳐 직접 협의를 갖고 북한으로부터 “납치문제를 평양선언에 근거해 해결하고 싶다”는 언질을 얻어냈다.

걱정되는 것은 북한이 “유예기간을 갖기로 했다”며 추후 협의를 계속한다는 합의를 받아들이지 않은 점이다. ‘기브 앤드 테이크’ 준비라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이러한 벼랑끝 외교는 회담 자체를 위험에 빠뜨릴 수도 있다.

▼러시아 유리 바닌 러 동방학연구소 한국·몽골 부장▼

회담은 성공적으로 끝났다. 첫 회담에서부터 가시적인 성과가 나올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당사국이 직접 입장을 밝히고 상대국의 입장을 확인한 것 자체가 북한 핵 사태의 중요한 진전이다.

북핵 사태는 심각하고 복잡한 문제이기 때문에 단계적 점진적으로 해결돼야 하고 극적인 사태전개나 해결은 어렵다. 앞으로의 회담 일정이 아직 불투명하지만 연내에 1, 2회의 추가 회담이 가능하리라고 본다.

러시아로서도 이번 회담은 만족스럽다. 1994년 이른바 1차 북핵 사태 당시엔 전혀 논의 과정에 참여하지 못했지만 이번에는 당사국으로서 제대로 역할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는 회담 진행 과정에서 북한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러시아는 한반도 비핵화에는 미국과 공감하지만 지금까지 북한에 대한 압박에는 반대해왔기 때문에 이런 역할이 가능했다.

그러나 이번 회담을 통해 주변국들의 역할과는 별개로 북한과 미국의 양자대화 필요성이 다시 확인됐다. 북한은 미국이 직접 자신의 안전을 보장하는 것이 사태 해결의 핵심이라고 보고 있다. 주변국들의 ‘대북 불가침 보증’ 등은 2차적인 안전망에 지나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이다.

회담 직후 북한은 혼란스러운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아직까지 핵무기를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대다수 러시아 전문가들의 견해다. 또 북한도 분명히 회담이 계속되기를 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