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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EACE 21]그래도 6자회담 밖에 없다

입력 | 2003-08-31 20:53:00


북한의 핵개발은 진전됨에 반해 한미동맹은 갈등을 빚어냄에 대해 불안해하는 많은 독자들은 본보가 상황을 정확히 진단해주고 현실적인 다양한 해법들을 제시해줄 것을 자주 요청해왔다. 이에 부응해, 본사는 2월부터 8월까지 6개월 동안 샌프란시스코 도쿄 서울 워싱턴에서 차례로 국제학술회의를 열고 관련국들의 석학들과 외교관들로부터 지혜를 얻고자 했다. 마침 남북한과 미-중-러-일의 제1차 6자회담이 끝나기도 한 이 시점에서, 네 차례의 국제학술회의에서 토론된 내용들을 종합하기로 한다.

첫째, 2월 하순만 해도 북한의 핵개발은 낮은 수준이어서 경계는 하되 과장을 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개진됐다. 그러한 입장의 연구자들은 북한의 핵개발에 관한 정보가 미국의 보수강경세력에 의해 의도적으로 부풀려졌거나 심지어 조작됐다고까지 단정했다. 그러나 반년이 지나는 사이 그러한 목소리는 아주 약해졌으며 경계심은 훨씬 커졌다.

구체적으로, 8월 말의 시점에서, 북한이 적어도 핵폭탄 2기를 이미 확보하고 있다고 믿거나 그러한 믿음에 공감하는 연구자들의 수가 대다수를 차지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상당수는 앞으로 반년 안에 북한이 파키스탄이 개발한 방식으로 지하핵실험을 마칠 것이라는 분석에 동의했다.

그러면 그 핵폭탄은 곧바로 실전에 쓰일 수 있을까? 몇몇 핵과학자들은 부정적으로 대답했다. 북한이 이미 핵폭탄을 갖고 있다고 해도 그것은 대단히 조야(粗野)하고 커서 미사일에 장착시키기 어려울 것이라는 진단이었다. 특히 그것이 지난해 가을 이후 북한 스스로에 의해 밖으로 알려진 농축우라늄(HEU) 방식에 의한 것이라면 더더욱 그러할 것이라는 의견이었다.

이러한 분석, 진단, 의견의 함의(含意)는 무엇인가? 그것은, 단순화시켜 말한다면, 협상을 성사시킬 수 있는 시간은 비록 제한되어 있다고 해도 여전히 남아있다는 뜻이다. 그것은 희망적인 메시지임에 틀림없다.

둘째, 그렇다면 협상은 성사될 수 있을까? 북한 핵위기는 외교를 통해 평화적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이 물음에 대해서는 지난 반년 사이에 낙관적인 관찰자들보다 덜 낙관적인 또는 비관적인 관찰자들이 훨씬 더 많이 늘어났다. 덜 낙관적인 관찰자들은 △북한은 자신의 요구조건들이 거의 완전히 충족되지 않으면 결코 핵개발을 중단하지 않을 것이며 △미국의 대북 강경론자들 역시 북한의 핵개발시설들에 대한 선제공격이라는 선택의 유혹에서 쉽게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라는 점을 지적했다.

그렇다고 해서 평화적 해결의 가능성에 대한 희망이 아주 없다는 것은 아니었다. 희망을 갖게 만드는 요인들 가운데 우선 지적할 수 있는 것은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자신의 남은 임기 안에는 북한에 대해 과격한 방법을 쓰기 어려워졌다는 현실이다. 그리고 똑같이 중요한 것은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의 핵개발에 대해 지난 시기에 비해서 훨씬 더 강도 높게 제동을 걸고 있는 현실이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이 점에 대해 입장을 분명히 하고 있지만 특히 후진타오(胡錦濤) 주석 아래서의 중국공산당의 새 지도부는 더더욱 그러하다. 현재 두 나라와의 관계를 돈독히 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는 북한의 김정일 국방위원장으로서 그들의 압력에 끝까지 저항하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도 제시됐다.

이 대목에서 중요하게 상기돼야 할 사실은 중국의 학자들이 특히 최근에 와서 “우리는 김정일과 김정일정권을 신뢰하지 않는다. 우리의 상층지도부가 북한정권에 대한 불신과 심지어 경멸을 표시하고 있다는 것은 중국 안에서는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라고 공공연하게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 거기서 한걸음 더 나아가 어떤 중국의 학자는 “북한에서 지도층 교체(leadership change)가 일어나야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될 수 있다”고 발언했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가 정권 교체(regime change)를 말해온 것과 일맥상통하는 것이었다. 중국의 연구자들로부터의 이러한 발언들은 후진타오체제가 출범한 이후 중국의 대북정책이 바뀌는 것이 아니냐는 새로운 화두를 만들어냈다.

현재의 시점에서 볼 때, 북한의 핵위기로 말미암은 한반도의 위기상황은 안타깝게도 지속될 것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6자회담에 여전히 기대를 걸지 않을 수 없다. 비록 우여곡절이 있다고 해도, 그래서 짜증스럽다고 해도, 이 회담을 보다 더 생산적인 방향으로 발전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할 것이다.

여기서 헨리 키신저 전 미 국무장관이 정치학교수 시절에 썼던 경구를 떠올리게 된다. 국제적 안보상황은 불가피하게 불안정하기 마련이며, 따라서 각국은 ‘불안정의 불가피성’을 일정한 범위 안에서 받아들인 채 서로 상생공존할 수 있는 틀을 만들어 그 속에서 살아가야 하는데도 모두 자신만의 완전한 안전보장을 추구하게 되면 결국 위기가 확대되어 전쟁이 일어나게 된다는 취지다. 그러므로 그는 ‘불안정의 불가피성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무능력(the inability to accept the inevitability of the insecurity)’을 위기의 핵심으로 파악하면서, 각국은 자신만의 ‘완전한 안전’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을 재고할 것을 권고했다.

이 권고를 따른다면, 북한은 자신만의 ‘완전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핵으로 무장하겠다는 발상을, 미국은 자신만의 ‘완전한 안전’을 확보하기 위해 북한의 핵시설에 대한 선제공격도 마다하지 않겠다는 발상을 재고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완전한 안전’의 추구가 오히려 불안전과 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는 역설을 되새기면서 6자회담이 다시 열려 평화적 해법을 마련하게 되기를 기대한다.

김학준 본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