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31일 오후 본사 14층 회의실에서 박범진 전의원, 김근태 임인배의원(왼쪽부터)이 ‘정치인의 자기고백과 정치개혁’을 주제로 좌담회를 갖고 있다. -이훈구기자
《“몇몇 정치인이 참으로 어려운 고백을 했지만 이것을 통과의례로 끝내지 말아야 합니다.”본보가 지난달 20일부터 10회에 걸쳐 연재한 ‘정치인 참회록’을 바탕으로 정치개혁의 새로운 방향모색을 위해 마련한 좌담회에서 민주당 김근태(金槿泰) 의원과 한나라당 임인배(林仁培) 의원, 박범진(朴範珍) 전 의원 등 참석자들은 이같이 입을 모았다. 낡은 정치구조와 관행을 근본적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정치인과 유권자들이 동참해야 한다는 얘기였다. 이 좌담회는 지난달 31일 서울 종로구 세종로 동아일보 14층 회의실에서 3시간 동안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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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원=저도 경선자금을 고백해 본 경험이 있어서 알지만 ‘동업자’인 동료 정치인들은 우리들의 세계를 적나라하게 드러내는 데 흔쾌히 동의하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이 그런 고백을 격려하는 것은 정치가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정치가 신뢰를 얻지 못했기 때문에 사회적 갈등의 조정기능을 상실한 것입니다. 가령 정치자금의 투명성 확보 없이 기업들에 투명성을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박 전 의원=그러나 잘못된 것을 내부 고발하면 배신자 취급하는 게 우리의 정치풍토인지라 저도 과거의 총선자금을 고백하는 데 많이 고민했습니다.
▽임 의원=주민들의 의식도 바뀌어야 합니다. 3류 국민이 3류 정치인을 만드는 법입니다. 돈 드는 정치를 바꾸기 위해서는 국민이 정치에 돈이 안 들게 해줘야 합니다. 고속도로 건설하는 것보다는 내 동네에 신작로 하나 놓아주기를 바라고, 신작로보다는 우리 집에 선물 하나 주기를 더 바라는 풍토에서는 정치인이 아무리 노력해도 허사입니다.
▽박 전 의원=국민보다는 정치권의 책임이 더 크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의 정치부패 근절은 결국 대통령의 의지와 결단에 속하는 문제입니다. 선거 때 권력이 막대한 자금을 조성해서 집행하는 것은 대통령 모르게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대통령이 어떡해서든 원내 제1당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면 무리해서 정치자금을 모을 수밖에 없지요.
▽김 의원=그렇다면 대통령이 어떻게 하면 ‘결심’을 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이 ‘제1당’의 유혹에 빠지지 않으려면 집단으로서의 정치, 즉 패거리 정치 및 보스정치를 완전히 없애야 하지 않겠습니까.
▽박 전 의원=당론이라는 이름아래 당 지도부가 의원들을 통제하려는 것은 ‘당수(黨首) 독재’입니다. 의원들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합니다.
▽임 의원=당수들은 당론과 다른 투표를 하는 사람을 제명하지 않으면 당을 이끌어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김 의원=3김은 물론 한나라당 이회창(李會昌) 전 총재까지 은퇴했는데도 당론의 망령은 의원들을 아직도 지배하고 있습니다. 헌법기관인 국회의원을 당론으로 구속하는 것은 위헌입니다. 재적 과반수나 3분의 2 이상의 찬성을 요하는 사안에 대해 당론을 정할 때는 의원총회에서 표결하는 과정을 거치도록 당론결정 과정을 입법화했으면 합니다.
▽박 전 의원=공감합니다. 민주세력이 집권한 이후에도 과거 군부세력이 의원들을 통제하는 수단으로서의 당론이라는 관행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김 의원=국회에서의 몸싸움은 16대 국회 들어서 좀 줄어든 편이긴 한데요.
▽임 의원=15대 국회 때는 서류가 날아가고 몸싸움도 많이 했어요. 그런데 거기 앞장선 의원들은 16대 총선 때 저질정치인 취급을 당해서 많은 수가 떨어졌어요. 16대 국회에 와서는, 저도 수석부총무를 해봤지만 (몸싸움하러) ‘나가라’고 해도 안나갑니다. 특히 영호남보다 중부권 의원들은 국민의 시선을 많이 의식합니다. 결국 국민이 구태를 국회에서 추방한 거죠. 여기서 희망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김 의원=요즘에는 정치가 유권자의 눈을 끌기 위해 지나치게 쇼비즈니스화 내지는 엔터테인먼트화해 콘텐츠보다는 어떡해서든 튀어 보이려는 언론플레이에 의존하는 경향이 심한 것 같습니다.
▽임 의원=언론이 똑바로 검증해줘야 합니다. 튀는 얘기만 하는 사람보다는 정말 진지하고 건강하게 문제를 개선하려는 사람들을 조명해 주어야 할 책임이 언론에도 있다고 봅니다.
▽김 의원=법안에 가령 ‘임인배법’, ‘박범진법’처럼 영구히 입법활동에 책임과 흔적이 남도록 인센티브제를 도입했으면 좋겠습니다. 자기 이름을 단 법이 역사에 남는다면 명예와 책임감 때문에 혼신의 힘을 다하지 않겠습니까. 의원들이 입법과 예산이라는 본연의 활동에 시간을 내지 못하고 지역구에 매달릴 수밖에 없는 것도 문제입니다.
▽임 의원=지역구민들은 국회의원이 조그만 경조사에도 다 오기를 바랍니다. 지역대표로 서울에 보내놨으면 입법활동 잘하고 국정감사 잘하면 ‘우리 대표 잘한다’고 인정해줘야 하는데 말입니다. 하기야 의원들이 골프치고 싸움이나 하고 흥청거리는 존재로밖에 생각이 안 드니까 경조사에 참석하지 않으면 “코빼기도 안 보인다”고 욕하는 것입니다.
저는 국회에 들어오기 전에는 술을 못했는데 “그래 갖고 국회의원 하겠나”라는 소리를 듣고는 밤마다 집에서 소주를 조금씩 먹기 훈련을 해서 지금은 반병 정도 먹습니다. 지역구에 갔다가 상경하는 기차 안에서는 언제 서울에 도착했는지 모르게 곯아떨어질 정도로 술을 많이 받아먹습니다.
▽박 전 의원=결국 정치개혁이 제대로 이뤄지려면 국민도 참여해야 한다는 거죠.
▽김 의원=우리의 정치시스템과 정치인이 세계속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게 만들려면 국민의 참여가 절대적으로 요구된다는 데 공감합니다. 국민과 더불어 희망과 대안을 만들어가야 합니다.
정리=박성원기자 swpark@donga.com
▼참석자 ▼
◆김근태 민주당의원
△서울대 경제학과졸
△15, 16대 의원
△한반도재단 이사장
◆임인배 한나라당의원
△영남대 법대졸
△15, 16대 의원
△한나라당 수석부총무
◆박범진 전의원
△서울대 정치학과졸
△14, 15대 의원
△국민회의 홍보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