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가 TV 쇼가 되는 것은 비생산적이다. 카메라는 인간관계를 왜곡한다.”
장피에르 라파랭 프랑스 총리(사진)는 1일 각료들에게 ‘정치 리얼리티’ 쇼에 출연하지 말라고 경고했다.
문제의 쇼는 프랑스 민영 TF1 TV가 ‘36시간’이라는 이름으로 정치인과 일반인이 36시간을 함께 지내는 실제상황을 담아 다음달부터 내보내기로 한 프로그램. 프랑스에서는 보통 사람의 사생활을 있는 그대로 TV 카메라에 담거나 가수 지망생들의 공동생활을 다루는 등 각종 리얼리티 쇼가 인기를 끌고 있다.
TF1 TV는 프랑스 최초의 정치 리얼리티 쇼 제작을 예고한 뒤 첫 번째 출연자로 장관급인 장 프랑수아 코페 정부 대변인의 출연 승낙까지 받았다.
문화는 개방적이지만 정치풍토는 보수적인 프랑스에서 정치인의 리얼리티 쇼 참여는 논란을 일으켰다. 자크 랑 전 교육부 장관은 “과감한 시도이며 새로운 모험”이라고 극찬했으나 프랑수아 올랭드 사회당 당수는 “정치를 저질화함으로써 국민의 정치 혐오를 부추길 것”이라고 반대했다.
결국 총리까지 나서 출연 금지를 지시, 각료들의 출연은 불투명해졌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 제작 자체가 무산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그러나 프로그램 기획자인 뤼트 엘크리에프 PD는 “총리는 자신의 희망을 얘기한 것일 뿐”이라며 “프로그램은 차질 없이 제작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라파랭 총리는 지난주에 아직 방영되지 않은 시범제작 프로그램을 보고 충격을 받은 뒤 출연 금지를 지시했다는 후문이다. 이 프로그램에서 피에르 베디에 법무부 차관은 조산원과 함께 생활하며 2명의 아기를 직접 받았다고 한다.
그러나 파리 정가에서는 라파랭 총리의 출연 금지 지시가 고도의 정치 계산에 따른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1만명이 넘는 폭염 사망자에 대한 책임추궁, 연금 및 교육 개혁에 따른 노동계의 반발 등이 예고된 민감한 시기에 정치 리얼리티 쇼가 내각을 우습게 만들 수도 있기 때문에 ‘금족령’을 내렸다는 것이다.
파리=박제균특파원 ph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