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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40일과 꿈]양진석/作品이냐 商品이냐

입력 | 2003-09-03 18:26:00


나의 주요 관심사는 건축 인테리어 음악 영화 등 주로 문화 관련 분야다. 돌이켜보니 어릴 적 꿈이던 건축가가 됐고, 사업가이면서 음악인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 모든 분야의 공통된 딜레마가 ‘작품성’과 ‘대중성’의 간격 줄이기 혹은 공통분모 찾기다. 작품성을 강조하면 대중이 이해를 못하고, 대중성을 좇다 보면 질 높은 발전을 기대하기 힘들어진다. 내가 여러 분야에 도전하는 이유는 어쩌면 가장 작품성 있는 것이 가장 대중적인 것이 될 날을 꿈꾸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 ‘눈높이 건축’으로 공통분모 모색 ▼

일본에서 박사과정을 마친 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처음 이런 딜레마에 빠졌고 내 사무실을 운영하면서 고민은 더욱 커졌다. 작품성 있는 건축을 할 수 있는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고 건축주는 실용성과 상업성만 강조할 뿐 건축미에는 관심 없는 경우가 허다했다. 좌절하고 한탄했지만 현실을 무시할 수도 없었다.

그러던 중 리모델링 사업을 시작하면서 대중적인 건축에 대한 ‘감’을 잡게 됐다. 리모델링이나 인테리어는 일반인도 관심이 많아 자주 대화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면서 대중이 선호하는 공간, 디자인 등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그 뒤 인테리어는 물론 건축 설계 부문에서도 작품성과 대중성을 접목한 작품들을 선보이게 됐다. 이를 계기로 새로운 영업과 마케팅으로 연결되는 이상적인 사업을 펼칠 수 있었다. 건축설계부터 감리, 인테리어, 리모델링까지 원스톱으로 처리하는 건축전문회사를 운영하게 된 것이다.

나는 건축이 대중화될 때 비로소 좋은 작품이 쏟아지고 나 또한 건축가로 기업인으로 살아남을 수 있다고 판단했다. TV에 출연하고 건축에 대해 쉽게 쓴 책을 출간한 이유도 거기에 있다. 소점포를 리모델링해서 재창업할 수 있게 해주는 MBC TV ‘신장개업’과 어려움에 처한 소외계층의 집을 고쳐주는 ‘러브하우스’라는 프로그램을 개그맨 신동엽씨와 함께 진행하면서 대중을 새롭게 보게 됐다. 소외계층의 주거 환경, 소규모 가게 창업 문제 등을 이야기하면서 건축과 디자인의 중요성을 새삼 느꼈다. 이런 경험들이 다양한 프로젝트에 적용되면서 나는 대중과 고객을 알게 됐다. 아무리 시골에 사는 노인이라도 집에 대한 생각은 나름대로 확고하게 갖고 있었고 미적 감각 또한 전문가들이 무시할 수준이 아니었다. 나로서는 매우 소중한 경험이었다.

최근 나는 새 사업 분야인 가구, 소품 판매업에 진출했다. 외국에서는 건축가들이 가구디자인에 관여하고 건축가의 이름이 새겨진 가구가 대중에 널리 보급돼 있다. 하지만 한국은 아직 초기 단계여서 양적인 성장은 이뤘지만 가구 회사들의 존폐가 영업 전략에 따라 결정돼 왔다.

건축, 인테리어 분야는 의뢰인이 있고 갑과 을의 계약에 의한 비즈니스다. 반면 가구, 소품 분야는 다른 유통 비즈니스처럼 판매를 예상하고 고객의 요구를 미리 파악해 제품을 생산 판매하는 비즈니스다. 고객의 요구를 잘못 판단하면 건축의 경우 수정 및 하자 보증을 통해 애프터서비스가 가능하지만 가구나 소품은 재고로 남아 회사에 치명적 타격을 줄 수 있다. 그러므로 고객의 눈높이에 맞추는 상품기획 및 영업 전략은 매우 중요하다.

▼가구디자인 새분야서도 고민 계속 ▼

하지만 무작정 대중의 취향에 맞춘다고 해서 능사는 아니다. 디자인은 대중을 적절히 리드하고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하므로 전문가들이 많이 고민해야 하는 것이다. 끝없는 대중과의 눈높이 맞추기와 작품성 기르기는 아마도 평생 내가 해야 할 숙제일지도 모르겠다. 이 때문에 오늘도 대중 곁에서 쉼 없이 탐구하는 건축가이자 가구디자이너로, 기업인으로 뛸 생각이다.

▼약력 ▼

△1965년생 △일본 교토(京都)대 건축학과 대학원 박사과정 졸업(1992) △양진석건축연구소㈜, 양진석디자인㈜ 창업(1996) △MBC TV 신동엽의 ‘신장개업’, ‘러브하우스’ 출연(2000) △㈜룸앤데코와 합병(2003) △‘전망 좋은 방 양진석 LIVING’이라는 매장명으로 가구, 소품 판매, 유통업 시작(2003) △‘건축가 양진석의 이야기가 있는 집’ 출간(2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