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身(문신)
錯-섞일 착 忌-꺼릴 기 焚-태울 분
披-헤칠 피 임-옷깃 임 臂-팔뚝 비
한자 ‘文’의 甲骨文(갑골문)을 보면 두 갈래의 선이 서로 교차하고 있는 모습이다. 그래서 文의 원래 뜻은 ‘錯畵’(착화·교차되어 있는 그림, 곧 무늬)다.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글월’이나 ‘文字’, ‘文章’(문장), ‘文筆’(문필)이라는 뜻과는 멀어도 한참 멀다. 이렇게 본뜻과는 전혀 다르게 사용되었으므로 본뜻 ‘무늬’를 뜻하는 ‘紋’(무늬 문)자를 새로 만들어야 했다. 그동안 수차 이야기한 바 있는 假借(가차)현상이다.
한편 身은 배가 불룩한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을 옆에서 본 그림이다. 그것은 임신한 아낙네일 수도 있겠고 아니면 배가 좀 나온 사장님일 수도 있겠다. 따라서 본뜻은 ‘몸’이다. ‘文身’은 몸에 무늬를 그려 넣는 것으로 ‘紋身’인 셈이다. 동남아시아의 오지나 아프리카 또는 아마존 등지의 소수민족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민족마다 독특한 觀念(관념)과 行爲(행위)를 가지고 있다. 文身을 한 몸이 보기에는 화려할지 몰라도 중국이나 우리의 문화 관습에서는 禁忌(금기)시 되었던 것이다. 그것은 그동안 이미 수차 설명한 바 있는, 儒家(유가)의 몸뚱이 중시관념과 무관하지 않다.
부모로부터 물려받은 몸뚱이 죽는 순간까지 한 점 損傷(손상)없이 잘 保全(보전)해야 하는 것이 孝道(효도)의 지름길이라고 철석같이 믿었기 때문에 몸에 상처를 낸다거나 울긋불긋 물감을 칠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었다. 오히려 그것은 옛날 중국에서 刑罰(형벌)로 이용되었을 뿐이었다. 곧 몸에 흠집을 내는 肉刑(육형)이 성행하였으며 이마에 먹을 치는 경(경)이라는 형벌이 그것이다. 秦始皇(진시황)은 焚書坑儒(분서갱유)를 저지르면서 모든 책을 수거해 불태우게 했는데 이 때 책을 바치지 않고 몰래 감춘 자에게는 경을 쳤다.
또한 중국에서는 文身을 披髮左임(피발좌임·머리를 풀어헤치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밈)이나 雕題錯臂(조제착비·이마에 그림을 그리고 팔뚝에 문신을 새김)와 함께 대표적인 오랑캐의 習俗(습속)으로 여겨 천시하였다. 그래서 王子가 王位를 거절하기 위해 오랑캐 땅으로 가 스스로 文身을 함으로써 오랑캐로 자처하는 경우를 史書(사서)에서 볼 수 있다.
文身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외국과는 달리 아직도 우리나라에서는 文身에 대해 그리 관대하지 못하다. 아무리 시대가 바뀌었기로서니 군대의 징집을 면하기 위해 文身을 했다면 너무 하지 않은가.
鄭 錫 元 한양대 안산캠퍼스 교수·중국문화 sw478@yaho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