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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나바시 요이치 칼럼]일본은 核을 가지면 손해다

입력 | 2003-09-04 18:27:00


중국 베이징에서 열렸던 6자회담에서 북한은 “핵무기를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고 큰소리 쳤다. 진짜 핵보유국임을 핵실험으로 입증할 수도 있다고 겁을 주었다.

“북한이 핵실험을 하도록 놔두면 안 된다. 그것만은 안 된다”고 워싱턴에서 만난 미국 정부 고위관계자는 말했다. 만일 그렇게 되면 미국의 핵억지 정책이 무너지고 미일 동맹관계도 흔들릴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미국은 일본에 ‘핵우산’을 제공해 왔다. 타국이 일본을 핵무기로 공격하면 미국은 핵공격으로 보복한다는 자세를 지켜 온 것이다. 적어도 냉전시대에 이 핵우산은 기능해 왔다.

이번 북한의 핵실험 관련 발언은 공갈로 여기고 싶지만 만에 하나 실제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북한이 파키스탄의 핵보유 노선을 지향해 왔다는 점에서 그리 놀라운 일은 아니다. 심혈을 기울여 핵을 개발해 온 나라가 외교상 거래를 위해 이를 포기한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어려운 일이다.

미국 내에는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일본도 핵을 보유할 것이기에 북한 핵 보유를 막아야 한다는 논의도 있다. 중국에 대북 압력을 넣게 해 6자회담이 열리도록 하기 위해 일본 핵 무장론을 꺼낸 측면도 있다. 가령 존 볼턴 미 국무차관은 6월 말 하원 국제위원회 증언에서 “북한이 핵을 보유하면 일본이 핵무기 능력을 추구하려 할 것”이라고 말했다. 조지 W 부시 정권의 주요인사가 공식석상에서 이런 발언을 한 데 대해 일본은 불쾌감을 표명했다. 당연한 일이다.

북한은 이미 핵 능력을 키워 왔고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심각한 상황이다. 일부러 일본의 ‘가상 핵위협’을 거론할 필요도 없다. 중국도 북한 핵 보유에 대해 충분히 우려를 표명해 왔다는 점에서 중국이나 일본이 미국으로부터 북핵과 관련해 주의를 받을 필요는 없다.

이런 식으로 일본의 핵무장 가능성 운운한다면 일본은 미국의 신용을 받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할 것이고, 중국을 비롯한 인접국들도 미일동맹의 공동화(空洞化)를 의심할 우려가 있다. 이런 것조차 고려하지 않는 무신경에 질릴 정도다.

리처드 아미티지 국무부 부장관과 ‘비보도’를 전제로 대화를 나눴지만 “이것만은 미 정부의 공식견해로 써도 좋다”고 강조하며 한 말이 “미국이 일본에 핵우산을 계속 제공하는 한 일본이 핵무장 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것이었다.

일본 정부는 과거의 피폭 경험, 핵확산방지조약(NPT) 체제의 준수, 원자력기본법과 비핵 3원칙 등의 비핵정책을 들어 일본의 핵무장은 있을 수 없다는 논리를 전개해 왔다.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생각은 ‘핵을 가지면 안 된다’는 이념과 약속이다. 이것도 중요하지만 세계를 향해 설득력을 가지려면 ‘핵을 갖는 것이 (국익에) 전혀 도움이 안 된다’는 이해관계의 논리, 주판의 논리로 설명할 필요가 있다.

일본은 핵을 가지면 손해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다.

첫째, 일본은 핵전쟁에 가장 어울리지 않는 좁은 국토와 인구 밀집이란 지리적 경제적 조건을 갖고 있다. 둘째, 북한 위정자가 비합리적이기 때문에 미국의 억지력이 먹혀들지 않는다면 일본의 억지력도 먹혀들지 않을 것이다. 셋째, 일본이 대항 차원에서 핵무장을 선언하면 일본에 대한 불신감이 뿌리 깊은 동북아 국가들은 북한 핵 문제에서 갑자기 일본 핵 문제로 관심을 돌릴 위험이 있다. 넷째, 북한이 핵보유국이 된다 해도 언젠가 체제가 와해될 것이다. 그 뒤 핵 폐기를 실현하려면 일본이 비핵상태를 유지해야 한다.

미일동맹 아래 미국의 핵우산은 계속 기능할 것이다. 북한이 만일 핵실험을 한다 해도 그것이 핵우산을 부숴버린다고 할 수 없다. 갖게 됐다는 것과 사용할 수 있는 것은 다르다.

당장은 북한 핵 보유를 막지 않으면 안 된다. 동시에 일본의 비핵 노선이 유지되어야 한반도의 비핵화도 성립된다는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후나바시 요이치 일본 아사히신문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