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을 누가 관리할지를 놓고 정부부처간의 힘겨루기가 한창이다. 하지만 이런 힘겨루기가 기금을 제대로 관리하기 위한 방안 찾기보다는 자기 부처의 이해득실만 따지는 것으로 비쳐지고 있다.
발단은 이렇다.
정부는 1일 고건(高建) 국무총리 주재로 세종로 정부중앙청사에서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보건복지부 장관 등이 참석한 가운데 관계장관회의를 가졌다. 이 자리에서 국민연금 기금운용위원회를 어디에 둘 것인가 하는 문제가 다뤄졌다.
김화중(金花中) 복지부 장관은 이날 “국민연금은 가입자들의 입장에서 관리돼야 하며 국민연금 주무 부서인 복지부가 당연히 기금을 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김진표(金振杓) 부총리 겸 재경부 장관과 박봉흠(朴奉欽) 예산처 장관 등은 “100조원이 넘는 국민연금 기금은 국민경제 전체를 염두에 두고 운용해야 하며 효율성면에서 총리실 산하에 둬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회의가 있은 뒤 총리실은 2일 오전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를 총리실 산하에 두기로 했다”고 밝혔고 이 내용이 그대로 언론에 보도됐다. 복지부의 한 간부도 “힘 있는 총리실에서 (기금운용위를) 가져간다는 데야 별수 있느냐…”고 이를 부인하지 않았다. 그런데 하루 뒤 다른 상황이 빚어졌다.
3일 오후 복지부 장관은 다소 격앙된 모습으로 기자간담회를 자청해 “1일 회의에서 마치 기금운용위를 총리실 산하에 두기로 결정한 것처럼 말이 나오는데 이는 잘못됐다”며 “이날은 의견 조율만 한 것이지 결론을 낸 것은 아니었다”고 총리실의 의견을 뒤집었다. 김 장관은 “기금운용위는 꼭 복지부 산하에 두어야 한다”고 강한 어조로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상황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총리실은 하루 뒤인 4일 김 장관의 부인(否認)을 또다시 뒤집었다. 국무조정실 박종구(朴鍾九) 경제조정관은 “기금운용위를 총리실 밑에 두기로 의견을 모았다”고 거듭 천명했다. 물론 김 장관의 전날 발언을 겨냥한 것.
국민연금 기금운용위를 어느 부처에 두는가는 중요한 문제다. 2020년에는 기금 규모가 1000조원이 넘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국민연금을 어떻게 하면 효율적으로 운영해 국민에게 더 많은 몫을 나눠줄 것인지를 고민하는 게 우선이 아닐까. 그런 논의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어 안타깝다.
정부의 관련부처는 이제라도 ‘잿밥’보다는 국민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되는 운용방안을 찾는 모습을 보여주길 기대한다.
김동원 사회2부기자 davis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