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라크전쟁 때보다 종전 이후 더욱 곤욕을 치르고 있는 미국이 ‘나홀로 지배’ 대신 유엔과의 공조를 선택했다.
이는 미국이 사실상 전담해온 거액의 재건비용을 줄이면서 이라크 전후 처리의 주도권은 계속 유지하려는 계산이 깔린 것이다. 갈수록 늘어나는 미군 희생자와 연간 수백억달러의 재건비용이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재선가도에 악재가 되고 있는 점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프랑스 독일 중국 러시아 등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들도 ‘유엔이 나서야 한다’는 미국측 제안에는 원칙적으로 동의하고 있다. 그러나 유엔 통제권의 범위 등 각론에서는 적지 않은 이견을 나타내 난산이 예상된다.
▽결의안 내용=콜린 파월 미 국무장관이 3일(현지시간) 공개한 유엔 안보리 결의안 초안은 이라크 헌정체제 수립을 위한 정치발전 계획과 일정, 그리고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 창설 계획 등이 골자.
또 안보리가 인도적 지원은 물론 이라크 경제 재건과 대표성 있는 정부를 위한 전국 및 지방 기구의 복원과 신설에 긴요한 역할을 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인접국에서 이라크로 테러범들과 무기 및 자금이 들어오는 것을 방지하도록 촉구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파월 장관은 영국 프랑스 독일 러시아 외무장관과 코피 아난 유엔 사무총장에게 잇달아 전화를 걸어 결의안 초안을 설명하는 등 로비에 나섰다.
▽미국의 결의안 제의 배경=대선이 내년 11월로 바짝 다가온 가운데 사담 후세인 추종세력의 저항이 계속되고 미군 사상자가 속출하면서 부시 미 대통령이 ‘제2의 월남전’에 직면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3월 19일 개전 이후 미군 사망자는 286명, 부상자는 1124명에 이르는 등 상황은 악화일로다. 최근엔 거의 매일 사망자가 나오고 하루 평균 부상자도 10명에 달한다.
점령 및 재건 비용도 내년에는 연방예산의 2.7%, 국방비의 15.4%에 해당하는 600억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추정치까지 나오고 있다. 사상 최대의 재정적자에 시달리고 있는 부시 행정부로서는 재선 가도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각국 반응=자크 시라크 프랑스 대통령과 게르하르트 슈뢰더 독일 총리는 4일 정상회담을 갖고 유엔주도하의 이라크 재건이라는 총론에는 공감하면서도 미측 결의안 초안이 기대에 못 미친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세르게이 이바노프 러시아 국방장관도 4일 러시아 군 파견을 시사했다. 그러나 그는 “그 여부는 국제사회의 협력 정도와, 국제법이 이라크에서 얼마나 존중되느냐에 달려 있다”며 단서를 달았다.
다른 반전축 국가들도 극도로 불안해진 이라크 내 정정과 국내 여론 탓에 쉽게 군대 파병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미국이 유엔 다국적군에 참여하는 국가들에 얼마만큼의 ‘반대급부’를 주느냐가 유엔 참여의 성패를 가를 것으로 보인다. 전쟁 전 이라크 석유자원 채굴계약을 맺었던 프랑스 러시아 등은 미국의 ‘독주’를 은연중 비판해왔다.
워싱턴=권순택특파원 maypole@donga.com
박래정기자 ecopark@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