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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용기타]'베네치아의 기억'…베네치아는 사랑을 꿈꾼다

입력 | 2003-09-05 17:24:00

상공에서 내려다 본 베네치아. 진흙과 개펄 위에 지어진 도시 베네치아는 12세기부터 18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양식의 건축물들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어 지금도 빼어난 관광 명소로 각광받고 있다.사진제공 한길사


◇베네치아의 기억/고봉만 외 9명 지음/335쪽 1만5000원 한길사

《19세기 프랑스 여류 작가 조르주 상드는 연하의 연인인 시인 뮈세와 베네치아에서 격정적인 사랑을 나눴다. 같은 시기 독일 철학자 쇼펜하우어는 한동안 베네치아에 머물며 현지 여인과 자유분방한 나날을 보냈다. 당시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베네치아에서 한 백작 부인과 연애 중이었는데 혹시라도 애인을 바이런에게 빼앗길까 두려워했던 쇼펜하우어의 질투심 때문에 대 지성간의 만남은 성사되지 못했다. 이 책은 물 위의 도시 베네치아를 ‘뮤즈의 맏아들’들이 줄지어 순례했던 사랑과 예술의 도시로 기억한다. 비잔틴,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의 공존은 ‘다양성을 향한 열린 감성’에 창조적인 영감을 제공했다. 역사 문학 건축 영화 등 각 분야 전문가 10명이 세계적 예술가들의 베네치아 인상기와 그들의 작품을 통해 번영과 쇠락을 거듭한 베네치아의 기억을 더듬는다. 그 결과물은 정교한 시각자료가 곁들여진 베네치아 예술품의 앤솔러지이자 여행자들을 위한 고급스러운 가이드북으로 나왔다.》

● 리알토 다리, 셰익스피어의 ‘베니스의 상인’

물 위의 도시는 인간의 지성을 실험하려는 오만함에서 세워진 것이 아니다. 6세기 이민족에 쫓긴 롬바르디아의 피란민들이 생사를 걸고 일군 대역사다. 베네치아는 지정학적 여건을 충분히 활용해 적극 해상으로 진출한 끝에 지중해 무역권을 장악하고 13세기부터 화려한 번영의 시기를 맞았다.

오리엔트풍의 화려하고 환상적인 풍광을 자랑하는 산마르코 대성당.사진제공 한길사

셰익스피어는 희곡 ‘베니스의 상인’을 통해 번영의 중심지 리알토 다리를 배경으로 웅장한 상업도시 베네치아의 활력을 전달했다.

“(고리대금업자) 샤일록의 상업지상적 정신, 해외원정 무역을 하는 대상인 안토니오의 의리, 고도의 문화정신을 선보이는 여판사 포셔의 재기발랄함 속에서 베네치아의 잠재된 힘은 발견된다.”(신정옥 영문학 박사)

베네치아의 아카데미아 미술관은 피렌체의 우피치 미술관과 함께 르네상스 미술의 2대 보고(寶庫)로 꼽힌다. 아카데미아 미술관의 소장품 가운데 가장 도발적인 작품은 16세기 미술가 베로네세의 ‘레위가의 만찬’. 원래 제목은 ‘최후의 만찬’이었는데 성스러운 만찬에 이쑤시개를 물고 있거나 코피를 흘리는 하인에다 개까지 한 마리 그려놓은 ‘죄’로 우여곡절 끝에 제목이 바뀐 것이다. 막강한 경제력에서 나오는 겁 없는 상상력과 자유로운 감각을 보여주는 예다.

● 산마르코 광장,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

바다를 통해 번영의 황홀함을 맛보았던 베네치아는 바다를 통해 쇠락의 나락도 경험했다. 16세기 말 터키와의 전쟁에서 패해 지중해의 요충지들을 하나 둘 내주면서 경제적으로 내리막길을 걷게 된다.

베네치아의 어둠은 20세기 독일 작가 토마스 만의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에서 잘 드러난다. 만은 산마르코 광장의 카페 플로리안에서 소설을 구상했다. 주인공 아센바흐는 글쓰기의 어려움에 탈진해 독일 뮌헨을 떠나 베네치아 여행길에 오른다. 그는 이곳에서 폴란드 귀족 출신인 미소년 타치오를 만나 매혹당하고 콜레라가 돈다는 소문에도 불구하고 타치오에 대한 미련 때문에 그를 따라다니다 콜레라에 걸려 죽는다. 소설은 후에 이탈리아 감독 루치아노 비스콘티에 의해 같은 이름의 영화로도 만들어졌다.

‘베네치아에서의 죽음’은 에로스적 사랑과 죽음의 유혹에 대해 말하는 동시에 수륙 양성(水陸 兩性)의 도시 베네치아의 정체성을 묻는다. 이 책에서 저자 중의 한 사람인 김호영 박사(영화학)는 “삶과 죽음, 아름다움과 추함, 사랑의 고통과 희열, 이미지들의 넘침과 결핍, 부와 가난, 내국인과 외국인 등 온갖 상반되는 것들이 뒤섞여 있는 영화”라고 평가한다. 이는 베네치아 정체성의 물음에 대한 답이기도 하다.

저자들이 기억하는 베네치아는 18세기에 머물러 있다. 그때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된 베네치아에는 건물을 지을 땅이 없다. 카니발이 열릴 때면 바다에 띄운 뗏목 위에 극장을 짓는다.

건축가 알도 로시는 1979년 건축비엔날레 행사를 위한 극장 설계를 의뢰받고는 엉뚱한 단서를 달았다. 행사가 끝나면 자신의 건축물을 해체시켜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유는 ‘한 도시의 풍경을 이루던 기억이 상실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로시의 ‘세계의 극장’은 그의 제안대로 ‘자살하는 건축’이라는 별칭만 남기고 해체됐다.

페르낭 브로델이 저서 ‘베네치아’에서 말했듯이 로시도 “베네치아가 과거로 돌아가지 않고 변화하지도 않으며…숲 속의 잠자는 공주이기를” 바랐는지 모른다.

이진영기자 ecolee@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