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바 참여정부가 들어선 지 반년이 지났음에도 특별한 문화정책이라는 것이 전혀 드러나지 않는다. 전(前) 정부의 문화정책을 그대로 계승하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아직 준비가 덜 된 것인지 아무런 언급이 없다. 새 정부가 간간이 민주당의 법통을 잇지 않는 듯한 뉘앙스를 풍기니 문화정책 역시 전 정부를 계승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도 되는 것인가.
▼ 지역 文藝공간 방치 안타까워 ▼
그렇다면 결국 이 정부가 적어도 문화정책만은 특별한 비전이 없거나 아직 준비가 안 된 것으로 단정해도 될 것 같다. 눈에 띄게 달라진 것이라고는 특정 문화단체 간부 출신들이 정부 산하 문화기관의 요직에 임명되는 정도다.
물론 시대가 변하고 정권이 바뀌면 새로운 사고를 가진 인재들이 정체된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고 참신한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자연스럽긴 하다. 그러나 인물 등용도 어디까지나 정부가 새로운 청사진을 제시한 다음 그에 걸맞은 사람을 찾아 적소에 배치하는 것이 순리이고 또 성숙한 정부다운 모습이다. 그렇지 못한 가운데 특정 이념을 가진 인물들만 골라 쓴다면 조직 갈등과 혼란을 야기할 가능성마저 없지 않다.
문화라는 것은 단기간에 효과가 나는 것이 아니다. 그 점에서 문화정책도 교육 못지않게 장기적인 안목을 갖고 확실한 목표를 세워 실천해 가야 하는 것이다.
민주화가 이룩된 뒤 전 정부에서는 좋은 문화정책을 적잖게 제시했지만 제한된 기간 내에 추진되다가 흐지부지된 것도 꽤 있다. 가령 문화예산 증액을 위시해 산업 차원에서의 접근, 정부 산하기관의 자율화, 관립 문화공간의 민간 위탁, 그리고 지방문화 육성을 위한 공간 확대와 축제문화 권장 등이 그런 예다.
현 정부는 오만과 편견을 버리고 전 정부의 좋은 문화정책을 확실하게 계승해 심화 발전시켜야 한다. 마침 현 정부는 지방분권화를 가장 중요한 국가정책의 하나로 제시한 바 있다. 모든 것이 중앙에 집중돼 있는 우리로서는 그야말로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과제다.
그런데 지방분권화는 관청을 옮긴다든가 공장과 학교를 짓는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지방화란 사람들이 뿌리내리고 만족스럽게 살 수 있는 고장을 만드는 일이며 그것은 두말할 필요 없이 안정된 직장과 함께 균등한 교육과 문화적 혜택을 줄 때 가능하다. 선진국이란 중앙과 지방의 문화격차가 적은 영국 프랑스 미국 독일 등을 가리킨다.
뮤지컬이나 발레, 오페라 한 편을 보기 위해 서울에 가야 하고 고갱의 그림 한 점 보기 위해 반드시 서울에 가야 한다면 누가 지방에서 살려고 하겠는가. 다행히 그동안 지방문화 육성을 위한 인프라는 대충 깔아놓은 상태다. 이제 웬만한 도시에는 문예회관, 박물관 등이 건립돼 전국적으로는 수백개나 된다.
문제는 이러한 문화공간이 관청처럼 일반직 공무원의 군림 속에서 제 기능을 못하고 있다는 데에 있다. 그런 경직된 구조 속에서 예술 창조자들은 주눅이 들어 자위수단으로 노조까지 결성할 정도인 것이다. 그래서 문화공간 활성화가 시급한 것이고 그 방법은 다름 아닌 공법인화인 것이다. 그것은 이미 전 정부가 제시한 민간위탁제도로서 세종문화회관과 국립극장의 성공 사례가 있다.
▼ 공법인화로 민간에 운영 맡기자 ▼
공법인이 되면 민간 전문가들이 문화공간을 운영하므로 당장 중앙의 유능한 인재들이 지방으로 유입되고 창의성이 최대한 발휘되어 지역문화가 활기를 찾게 될 것이다. 이제 문화야말로 가장 중요한 서비스다. 지방 거주자도 격조 높은 문화 서비스를 받을 때가 된 것이다. 비전문 관리는 문화의 속성과 다면성을 모르는 데다 서비스 훈련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하루 빨리 예술과 공간관리를 아는 전문가들로 교체돼야 한다.
최근 어느 고장에서 깨어 있는 문화인들이 행정 과시용으로 건립 중인 대형 문화공간의 건립을 중지시킨 일이 있다. 이는 기존 건물이나 잘 운영하라는 경고로 주목할 만한 사건이었다. 바로 그 점에서 문화공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공법인화가 시급한 것이다. 어차피 도시화된 산업사회에서 격조 있는 문화는 문예회관이나 박물관을 중심으로 창조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유민영 연극평론가·단국대 석좌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