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정부가 부동산시장을 안정시킬 목적으로 쏟아낸 정책은 대략 24건에 이른다. 주택분야의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 소관만 14건에 이른다. 하지만 집값이 안정되기는커녕 계속 올랐다. 심지어 ‘정부가 안정대책을 발표하면 투자해야 할 때’라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뭐가 잘못됐기에 이런 일들이 벌어지는 것일까? 2회에 걸쳐 정부 정책의 문제점과 해법을 정리해본다.》
회사원 K씨(33)는 요즘도 아파트시세표를 볼 때마다 신이 난다. 나름대로 부동산재테크에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올해 초 서울 강남지역의 40평형대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그런데 이후 정부의 강력한 주택시장 안정 방침이 쏟아지면서 걱정이 앞섰다. 하지만 이후에도 주변의 집값이 꺾일 줄 모르고 계속 상승했고, 그는 현재 분양가보다 최소 배 이상의 수익을 기대할 정도다.
“정부의 정책에 신경 쓰지 말고 투자하라는 주변의 충고를 받고 투자했지만 그동안 걱정이 컸습니다. 하지만 요즘은 그분들께 고마울 따름입니다.”
▽정부가 집값 앙등의 주범=집값 불안을 가져온 근본 원인 가운데 40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부동(浮動)자금과 금융권의 초저금리가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2000년 이후 정부는 경기를 부추기기 위해 매번 돈을 푸는 손쉬운 방법을 썼고, 이는 항상 시차를 두고 집값 앙등으로 이어졌다.
건설산업연구원 김선덕(金善德) 소장은 “특히 외환위기 이후 금리가 떨어지면 집값이 오르는 역(逆)상관관계가 뚜렷해졌다”고 진단했다.
미국 미시간대 김응한(金應漢) 교수는 “정부가 둑을 터뜨려 홍수를 내놓고는 부랴부랴 양수기를 동원해 물을 퍼내며 생색내는 꼴”이라며 “부동산 문제와 관련해서는 경제정책 자체가 몇 해째 서민을 울리고 땅부자만 배불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진단 따로 정책 따로=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는 것도 핵심 요인. 특히 서울 강남지역은 전세대기자가 6개월 이상 밀려 있을 정도로 수요에 비해 공급이 부족하다. 이들은 대부분 투자 목적보다는 서울 강남지역의 뛰어난 교육여건과 쾌적한 생활시설 등을 찾는 사람. 재정경제부 김광림(金光琳) 차관도 “강남 집값 상승의 근본 원인 가운데 하나가 우수한 교육여건을 노린 수요자 때문”이라고 인정했다.
강남 아파트에 대한 수요를 잡기가 쉽지 않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강남 아파트의 공급의 절대량을 늘리거나 이것이 힘들면 △강남에 버금가는 거주여건을 가진 대체재의 공급을 확대하는 방법을 생각해야 한다. 수요를 분산시키는 것.
물론 아파트 또는 신도시 건설이 3∼10년의 긴 시간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정부가 정책으로 활용하기에 한계가 있다. 하지만 정부의 정책은 지나치게 거래 억제나, 수요 중에서도 투기적 수요 억제에만 집중돼 있다. 다시 말해 워낙 ‘부동산의 가치(유동성)를 훼손해 값 끌어내리기’에만 초점이 맞춰져 ‘중장기적인 수요 잡기’라고 할 수도 없는 내용들이다. 건교부가 올해 발표한 14건 가운데 공급에 관한 것은 단 2건뿐이다.
전체적인 수급불균형 때문에 발생한 문제를 투기적 수요만 틀어막는 방식으로 대응하겠다는 발상은 임시변통일 뿐이다. 이는 진통제로 증세를 잠깐 숨길 뿐 병을 계속 키우는 꼴이다. 실제로 정부의 거래억제 방안으로 발생한 거래비용 부담이 매매가에 고스란히 반영돼 집값만 끌어올리기도 했다.
▽터뜨리고 보는 정책=중앙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손발이 맞지 않는 것도 문제다.
건교부는 안전진단을 강화하는 등의 방법을 동원해 가급적 재건축을 막으려 하고 있다. 그러나 서울시는 재건축대상 아파트 기준연도를 1980년에서 1983년으로 늦추고 재건축 대상을 대폭 늘리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실현 가능성에 논란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표되는 정책도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이달 초 잇따라 발표된 ‘종합부동산세 신설’(2006년 시행 예정)과‘투기과열지구 내 재건축아파트 조합원 자격 매매 금지’(2004년 시행 예정)이다. 종합부동산세의 경우 이중과세 논란이 있고, 재건축 조합원자격 매매는 재산권 침해 소지가 커 각각 입법에 어려움이 예상되는 방법이다.
주택산업연구원 장성수(張成洙) 선임연구원은 “실현 가능성이 낮음에도 심리적인 충격을 노린 이 같은 대책이 자칫 정부 정책의 신뢰만 깎아내리는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황재성기자 jsonhng@donga.com
김창원기자 changkim@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