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를 업으로 하는 사람 입장에서 영화제란 영화계의 꽃이자 축제다. 이미 성좌(星座)에 오른 대가들의 신작이나 새파란 신인들의 야심작을 접할 수 있으며, 국내 스크린에서는 만나볼 기회가 없을 것 같던 작품들을 볼 수 있는 일생 단 한 번뿐인 기회일 수도 있다. 그러니 영화제가 많을수록 영화인으로서는 반가울 수밖에 없다. 이제 대표적인 부산과 부천, 전주 영화제뿐 아니라 비록 규모는 상대적으로 작지만 독특한 지향점을 갖고 있는 다양한 영화제들이 개최되고 있다. 굳이 칸이나 베니스를 가지 않고 국내 영화제만 충실히 섭렵해도 그해의 중요한 작품을 모두 일별할 수 있을 정도다.
그런데 이렇게 영화제가 많다보니 개별 영화제의 프로그램과 행사일정 등이 일반 관객은 물론이고 영화인들에게조차 잘 전달되지 못하고 그냥 지나치는 안타까운 상황이 벌어진다. 심지어 같은 기간에 두 개의 영화제가 동시에 진행될 때도 종종 있다. 최근 열린 두 영화제가 그런 경우다. 8월 22∼31일 열린 제3회 ‘광주 국제영화제’에 참석하다보니 8월 20∼27일 열린 제4회 ‘서울 넷 & 필름 페스티벌’에 참석할 수 없어 아쉬웠다. 게다가 두 영화제 모두 너무 좋은 프로그램과 영화들이 줄지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객들의 호응이 부족해 안타까웠다.
특히 영화제의 일환으로 개최된 각종 학술세미나의 경우 영화인조차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아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의아했다. 예를 들어, 서울 넷 & 필름 페스티벌 기간에 열린 세계적 영화학자 토머스 엘새서의 초청 강연회에는 날씨 탓도 있었겠지만 30여명의 청중만 모여 강연자는 물론 초청자들을 당황케 했다는 후문이다. 또 이인성 서울대 교수 진행으로 폐막식 날 개최된 세미나 ‘반복과 변용-현대 대중문화를 위한 문화 콘텐츠로서의 중세 기사 로망스’(한국학술진흥재단 지원)에는 10명 미만의 청중이 모여 행사 개최의 의미를 무색케 할 정도였다. 사계의 세계적 석학인 엘새서씨의 강연을 놓친 필자로서는 그가 왔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쏟아지는 폭우를 뚫고서라도 꼭 참석했을 텐데 정말 입맛이 썼다.
수많은, 그것도 고정돼 있지 않은 영화제 일정을 완벽하게 조율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일정 중복으로 한정된 관객층이 다시 분산되게 만드는 것은 인력과 자원의 낭비다. 빈약한 재원으로 충분한 홍보를 하기 어렵긴 하겠지만, 적어도 명망 있는 세미나의 경우 수많은 잠재적 영화학도들의 욕구를 정확히 파악하고 홍보한다면 의외의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 얼마 전 동국대 강당을 가득 메웠던 데이비드 보드웰의 방한 때처럼 말이다.
좋은 프로그램을 차려 놓았으니 알아서들 오겠지 하는 생각은 정말 금물이다. 그것은 그저 꿰놓지 않은 서말의 구슬과도 같은 것이다. 수많은 영화제들 속에서 특히 후발 영화제라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인력과 재원의 부족을 극복할 수 있는 창조성, 관객과 영화인을 불러 모으기 위한 묘안과 홍보에 전력을 다하는 태도를 보이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이제 영화제도 우리 사회처럼 부익부빈익빈의 양극화 상태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르겠다.
심영섭 영화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