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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진우 칼럼]어떤 귀향

입력 | 2003-09-08 18:28:00


아버지, 고향 다녀올 채비는 하셨나요. 강원도 통천이야 금강산 바로 위이니 한 식경이면 당도하지 않겠습니까. 요즘에는 금강산 육로관광 길도 뚫렸다고 하니 뭍길로 횅하니 다녀오시지요. 가신 김에 당신께서 못내 그리워했던 원산 앞바다도 둘러보시지요. 육신은 묻어두고 떠나는 영혼여행에 무에 걸릴 게 있겠습니까. 가본들 뉘가 있어 반기랴마는 이승의 연(緣)이야 이제 부질없는 것, 가을 나들이하듯 편안한 마음으로 다녀오시지요.

어머니도 이참에 떠나시지요. 사립문 밖으로 대동강 물이 시퍼렇게 흐르던 유년(幼年)의 세월, 살아서는 끝내 갈 수 없었던 고향땅을 찾아 선산에 술이라도 한 잔 뿌리시지요. 모든 게 달라졌다고 한들, 일가붙이 한 사람 만나지 못한다고 한들 무엇이 더 서럽겠습니까. 반백년 남녘에서 살고 거기 땅에 묻혔으면 이제 누운 곳이 고향이려니, 당신 자식들 사는 이곳이 쉴 곳이려니 생각하시면 되는 거지요. 그러니 바람 한번 쐴 겸 가벼운 마음으로 다녀오시지요.

▼진정 두려운 건 ‘마음의 거리’ ▼

실향민들은 임진각 철책에 헌화(獻花)하며 북녘 고향을 그립니다. 기왕에 가시는 길이라면 그 꽃들일랑 한데 모아 전해주시지요. 전하는 것이 곧 마음일진대 꽃잎 하나인들 어떻겠습니까.

초등학교 시절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돌아와 선잠이 들었다가 눈을 뜨니 바깥 하늘 색깔이 꼭 아침 같았지요. 허둥지둥 책가방을 들고 학교로 향하는데 매일같이 다니던 골목길이며 거리의 풍경이 왜 그렇게 낯설던지 그만 울음을 쏟고 말았지요. 아버지 어머니, 어쩜 당신들의 귀향(歸鄕) 길도 그럴지 모르겠군요. 하지만 생(生)의 길목에서 때로 부딪치던 낯섦이 어디 한두 번이던가요. ‘이북내기’인 당신들의 남녘 삶은 더욱 그러했겠지요. 그러니 행여 눈물은 보이지 마세요.

진정 가슴 아프고 두려운 것은 마음의 거리입니다. 지난번 대구 유니버시아드에 응원하러 내려왔던 북의 ‘미녀응원단’이 환영 플래카드에 실린 자기네 ‘어버이 수령’의 사진이 비에 젖었다며 울고불고 야단이었지요. 아버지 어머니, 당신들께서 혹시 그런 낯섦과 부딪칠까봐 걱정입니다. 산천도 변하고 사람마저 달라진 고향이라면 애써 찾은들 마음만 아프지 않겠습니까.

그러나 사람 사는 바탕이야 어디 가겠어요. 저번에 내려왔던 북녘 처자들이야 워낙에 그런 교육을 받은 데다 보는 눈을 의식해 부러 그런 것이려니 생각하면 도리어 측은할 지경이지요. 북녘 사람들이 죄다 그럴 리야 있겠습니까. 자주 오고가다 보면 마음의 거리도 조금씩 좁혀지겠지요.

귀성객이 썰물처럼 서울을 빠져나갈 때마다 ‘고향 없는’ 자식은 고생길 면해 좋다 하다가도 마음 한구석이 허전해지곤 했습니다. 그러니 아버지 어머니, 당신들의 심사야 오죽했겠습니까. 한 세대가 더 내려가면 허전함도 사라지겠지요. 서울에서 낳아 서울에서 자라다 보면 고향이란 개념마저 없어질 테니까요. 당신의 손자새끼들은 이미 그렇답니다.

그렇게 몇십 년이 흐르면 아버지 어머니의 고향은 가뭇없이 지워지겠지요. 그럴 때 통일은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북의 체제가 저렇듯 봉건적 세습독재로 지속된다면 남북간 마음의 거리가 얼마나 좁혀질 수 있겠습니까. 설령 어느 날 통일이 된다 한들 남북간의 이질감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동서 갈등에 남북의 반목까지 겹치는 최악의 사태가 벌어지는 것은 아닐지 실로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한가위에 무슨 얘기 오갈까 ▼

우리가 통일을 포기하지 않는다면 지금부터라도 이런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아버지 어머니, 이산(離散)의 한을 품고 돌아간 당신들께 부끄럽게도 남쪽은 지금 내부 분열, 남남(南南) 갈등으로 찢겨 있어요. 한쪽에서는 성조기를, 다른 한쪽에서는 인공기를 불태우는 극단의 대립에서 도대체 어떤 해결의 길을 찾을 수 있겠습니까. 분열을 통합으로 이끄는 리더십은 부재(不在)합니다. 우쭐함과 용렬함이 맞서 파열음을 빚고 있을 뿐이죠.

그렇지만 절망하지는 마십시오. 한가위에 모인 숱한 가족 간에 무엇이 바른 길인지 얘기들이 오가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민(民)의 힘이겠지요. 아버지 어머니, 추석날 전까지는 돌아오세요. 성묘 때 뵙지요.

전진우 논설위원실장 youngji@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