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이 우리나라를 근대화했다는 말입니까? 동아일보가 어떻게 그런 기사를 실을 수 있습니까?”
“동아일보나 제가 그런 견해에 동의한다는 것이 아니고 그에 관한 학술적 논의를 하는 자리가 마련된다는 소식을 전한 겁니다. 식민지 근대화론이 잘못됐다면 토론을 통해 시비를 가려야 하지 않겠습니까?”
“당신 어느 나라 사람이야…!”
미국 스탠퍼드대 신기욱 교수(사회학)가 5일 성균관대 동아시아학술원이 주최한 ‘미국 동아시아학계 석학초청 집중강좌’에서 “일제강점기에도 식민지성과 근대성이 병존했다는 점을 인정해야 한다”는 내용의 강연을 한다는 기사(본보 9월 1일자 A19면)가 게재된 날, 기자는 흥분한 독자들의 전화를 여러 통 받아야 했다.
기자는 단순 사실을 전한 기사에도 흥분하는 독자들이 많은 것을 알고는 강연장에서 너무 격렬한 논쟁이 벌어지지 않을까 염려했다. 그러나 5일 성균관대 600주년기념관의 강연장은 너무나 차분했다. 강연장은 오로지 식민지 근대화론자들의 장이었다. 식민지 근대화론 그 자체로는 논의가 진지하게 진행됐지만 이 입장에 반대해왔던 학자들도, 격한 어조로 항의했던 독자들도 강연장에서는 찾아볼 수 없었다. 식민지 근대화론의 대표적 논객 중 한 사람인 이영훈 교수(서울대·경제사)는 식민지 근대화론의 전개과정을 장황하게 설명하는 ‘여유’를 보이기까지 했다.
이에 반대하는 ‘식민지 수탈론’의 입장에 있는 한 학자에게 나중에 전화로 불참 이유를 묻자 그는 “논문 발표가 아닌 강연 형태인 데다 논쟁을 다시 할 만큼 새로운 주장이 나온 것도 아니어서 나설 필요를 못 느꼈다”고 말했다.
그의 말도 수긍할 수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상대를 존중하며 대화를 통해 합리적 결론을 찾아가지 않고 각자 자기주장만 펼친다면 학문적 성과는 나오지 않을 것이다.
김형찬기자 khc@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