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 날씨가 나빠 추석에는 과일 등 제수용품 값이 비쌌다.
사과 값이 지나치게 비싸 국민생활에 불안요소로 작용했다고 치자. 정책당국은 어떻게 해야 할까.
먼저 사과 수입을 생각할 수 있다. 공급물량을 늘리는 것이다. 수요 측면에서 접근할 수도 있다. 사과의 대체재인 배와 감을 넉넉히 공급해 사과에 집중된 수요를 분산시키는 것이다.
중·장기적인 수급 불균형이 있고 한반도의 기후변화도 문제가 된다면 과수재배 면적을 늘리고 날씨에 강한 품종을 개발해야 한다. 국내 생산비가 비싸다면 인근 나라에서 우리 입맛에 맞는 사과를 생산토록 하는 방법도 생각할 수 있다.
그런데 매우 기묘한 발상을 하는 정책당국자가 있다고 하자. 그는 사과의 구매자격을 ‘차례를 지내는 장손(長孫)’으로 제한했다. 또 일선 공무원들을 동원해 과수원과 과일도매상을 찾아다니며 유통되는 모든 사과에 흠집 내는 방법을 썼다. 사과 수요는 억지로 줄어들고, 그나마 멀쩡한 사과도 사라졌다. 사과의 상품가치는 훼손됐고 당연히 값도 떨어진다.
만약 이런 공복(公僕)이 있다면 국민들은 당장 그를 해고하려 할 것이다.
그런데 우리에겐 이와 비슷한 공무원 조직이 있다. 건설교통부 등 부동산 관련 부처들이다.
며칠 전 나온 ‘9·5 주택가격 안정대책’을 보자. 골자는 △아파트 재건축 규제 △재건축조합원 지분거래금지 △양도소득세 강화 △부동산매입자 세무조사 등. 한결같이 부동산의 거래를 까다롭게 해 유동성(환금성)을 빼앗거나, 혹은 재화 자체의 가치를 훼손하는 조치들이다. 사과에 상처 내는 것과 비슷한 일이다.
원래 부동산은 유동성이 떨어지는 자산으로 ‘증권화’ 등을 통해 어떻게든 유동성을 높이려는 것이 정부정책의 중요한 축이다. 그러나 현재 정책은 반대의 길을 가고 있다. 당장 가격 인하효과는 있다. 그러나 이런 일이 해법이 될 수는 없다.
올해 정부가 내놓은 부동산대책은 대략 24건에 이르지만 거의 ‘거래억제’ 정책이다. 교과서는 가격은 오직 수급 조절을 통해 통제하라고 가르치지만 그런 접근은 많지 않다. ‘부동산 수급 조절이 워낙 쉽지 않기 때문에 택한 고육책’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가기에는 정도가 너무 심하다.
엉터리 해법도 예삿일이 아니지만 더 큰 문제가 있다. 사태의 주범은 정부라는 사실이다. 부동산 가격이 오른 근본 원인의 하나는 400조원 규모로 추정되는 부동(浮動)자금과 초저금리다. 2000년 이후 정부는 경기가 시들할 때마다 매번 돈을 푸는 손쉬운 방법을 썼고 이는 시차를 두고 집값 앙등으로 이어졌다. 정부가 둑을 터뜨려 물난리를 내고는 양수기를 동원해 생색내는 꼴이다.
재건축 아파트가 집값을 올린다며 각종 제재조치를 퍼부어 결국 공급물량을 줄여놓는 ‘거꾸로 정책’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또 정책내용이 오락가락하면서 신뢰를 잃은 것도 정책실패의 주요 요인이다.
어떤가? 흐름이 이렇다면 관련 장관 및 부처에 대한 국민소환을 한번쯤 생각해봐야 하지 않을까.
허승호기자 tigera@dong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