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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이정민/이라크 派兵 ‘선택과 책임’

입력 | 2003-09-14 18:41:00


미국이 이라크 추가 파병을 요청해 오면서 노무현 정부는 새로운 진퇴양난(進退兩難)에 빠졌다.

미국 정부는 이라크의 전후 치안관리 문제가 생각보다 장기화될 것으로 판단하면서 한국을 포함한 29개 주요 우방에 추가 파병을 요청한 것이다. 4월에도 670명의 비전투 병력을 이라크에 파병하기 위한 동의안이 국회에서 어렵사리 통과된 바 있지만 한국 정부는 이번에 더욱 힘든 결정을 내려야 할 상황이다.

▼ 어떤 결정이든 후유증 클 수밖에 ▼

정부는 국민여론, 동맹 관리, 그리고 국가이익이라는 3개의 변수를 중심으로 결정을 내릴 것으로 예상된다. 다만 어떤 선택을 해도 여파와 역풍이 다양하게 형성될 것이기 때문에 이를 적극적이고도 냉정한 자세로 수용할 태세를 미리 갖추고 있어야 한다. 또 파병문제만큼은 초당적인 차원에서 결정해야 하며 여야 모두 이 문제를 내년의 4월 총선과 분리해 처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다면 한국 정부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가. 핵심은 세 가지로 압축된다.

첫째, 유엔 안전보장이사회가 새로운 평화유지군(PKF)의 구성을 결의하든 않든, 한국 정부는 보다 근본적인 입장을 정리해야 한다. 즉 안보리에서 대(對)이라크 PKF 결의안이 통과될 경우 한국 정부는 유엔의 기치 아래 전투 병력을 추가로 보낼 수 있는 명분을 강화할 수 있다. 그러나 안보리의 결의안이 여의치 않으면 한국 정부는 한미동맹의 관리 차원에서 파병문제를 결정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정부는 PKF 결의안이 채택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가정 아래 결정을 내려야 한다. 그리고 파병 문제에 대한 정부의 선택은 사태 변화에 따른 다양한 여파까지 감안해야 하며 이 선택에 대한 책임은 정부가 질 수밖에 없다. 바로 이러한 점들을 사전에 국민에게 알리고 호소해야 한다.

둘째, 전투 병력 파병에 궁극적으로 동의할 경우 준전시 상황에서 발생할 수 있는 다양한 상황을 사전에 예측하고 이에 대한 준비를 철저히 해야 한다. 예컨대 한국군 전투요원들의 임무와 역할을 아직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으나 후방에 배치되더라도 유사시에는 얼마든지 인명피해가 발생할 수 있다. 사고사 역시 심각한 문제로 대두될 수 있다.

무엇보다 사담 후세인 지지 세력과 알 카에다 같은 비정규군의 공격으로 인명피해가 발생할 경우 국내 여론이 순식간에 악화되고 ‘즉각 철수’ 주장이 정치권 안팎에서 확산될 수 있다. 결국 추가 파병을 강행할 경우 인명피해를 완전히 예방할 수 없다는 점을 충분히 인식한 뒤 최종 입장을 정리해야 하는 것이다.

셋째, 이라크 파병 문제가 비록 중대한 현안이긴 하지만 정부는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현안들도 이와 동시에 처리해야 하며, 경우에 따라선 국민여론과 배치되는 결정들을 내리게 될 수도 있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추가적인 시장개방 협상, 자유무역협정 체결 여부, 주한미군의 위상정립과 제2사단의 후방 배치 문제, 북한 핵문제와 6자회담, 극심한 노사분쟁, 핵폐기물 관리시설 결정 등 국가이익과 국민정서가 교직(交織)하고 길항(拮抗)하는 구조 속에서 어려운 선택들이 남아 있다.

물론 대화와 타협으로 접점을 찾을 수 있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할 수밖에 없지만 마지막 결단은 정부의 임무이며 국민을 설득할 수 있는 자세로 임해야 한다.

▼결정했으면 국민 설득에 온힘을 ▼

국민정서 혹은 국민여론과 국가이익의 부분적인 충돌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피할 수 없는 현실이다. 이와 관련해서는 스웨덴의 사례에서 작은 교훈을 찾을 수 있다. 지난주 피살된 스웨덴의 안나 린드 외무장관은 스웨덴의 유로화 수용 여부와 관련해 국민여론이 분열된 상황에서 ‘수용’ 입장을 적극 지지했던 대표적인 관리였다. ‘국가이익의 관철’이라는 관점에서 소신을 굽히지 않던 그의 행보가 사후에라도 결실을 봤으면 하는 바람 속에 고인의 명복을 빈다.

‘용기 있는 결정’은 결코 우리 정부에만 지워진 짐이 아니다.

이정민 연세대 국제대학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