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마포나루에 살던 노인역으로 분장한 원로배우 오현경. 사진제공 극단 실험극장
“내 나이 또래쯤 되는 역할이지요. 아니, 내가 더 많은가, 허허….”
연극 배우 오현경(67)은 나이 이야기를 하면서 껄껄 웃었다. TV에서 그가 보여주던 장난스럽고 친근한 이미지가 강하게 남아있는 탓일까. 세월을 비켜가는 듯 ‘천진한’ 웃음을 흘리는 표정은 여전했지만 머리는 호호백발이었다.
이제 그는 ‘원로’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나이가 됐지만 현역으로서의 활동은 한 치도 늦추지 않고 있다. 1994년 식도암으로 무대를 떠났던 그는 완치돼 99년 5년 만에 연기를 재개했다. 이후 ‘몸조심’을 하면서도 꾸준히 대학로에서 활동해왔다. 연극인들을 위한 ‘무료 화술강의’를 열기도 했고, 단역이나 조역도 마다하지 않고 까마득한 후배들과 함께 무대에 섰다. 지난해 10월 ‘광해유감’에서 오랜만에 주연을 맡았던 그가 1년 만에 극단 실험극장의 ‘서산에 해 지면은 달 떠온단다’(20∼28일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대극장)에서 다시 주인공을 맡았다. 이 작품에서 오현경은 이승호, 서학, 유순철 등 중견 연기자들과 함께 1930년대 서울 마포 나루터의 삶을 재현한다.
“사실주의 연극입니다만 특별한 사건이나 반전이 있는 작품은 아닙니다. 그저 서정시처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그런 연극이지요.”
‘서산에 해 지면은…’은 아내가 오래전 집을 나간 노인 성진(오현경 분)과 그의 친구 덕출(이승호 분)이 펼쳐가는 이야기. 성진은 얼굴도 모르는 어머니를 그리워하는 아들 덕이와 갈등관계에 있다. 덕출은 이런 성진 부자 사이에서 중재자 역할을 한다.
지금은 소속 극단이 없지만 오현경은 실험극장의 창단 멤버(1960년)였다. 43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실험극장은 올해만 해도 4편의 작품을 기획할 정도로 신진 극단에 못지않게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그래서 연극팬들은 실험극장의 연극에서 중견과 신진이 ‘끌고 미는’ 내실있는 앙상블을 기대한다.
“배우라면 선후배 관계가 엄격한 정통 극단에서 연기를 배우는 것도 필요합니다. 요즘 젊은 배우들은 의욕적으로 극단을 만들어 공연하는 것은 좋은데, 걔 중에는 아마추어 티를 벗지 못한 작품도 있더군요.”
오현경은 “훈련이 덜 된 배우들의 연극을 본 관객이 자칫 ‘연극은 이런 것’이라는 선입견을 갖게 될까 두렵다”며 “이 작품을 통해 번듯한 작품, 번듯한 연기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다”고 자신감을 내비쳤다. 02-764-5262
주성원기자 swon@donga.com